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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1-1) - " 내가 기뻐하는 금식 " / 황인갑 목사 >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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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사순절(1-1) - " 내가 기뻐하는 금식 " / 황인갑 목사

관리자 2019-03-08 (금) 09:09 5년전 2192  

본문) 마 6:16-18, 58:1-9, 고후 7:2-13

사순절 첫째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하여 40일간을 금식과 기도로 거룩하게 지내는 절기입니다. 기독교는 축제의 종교이면서 또한 통과의례처럼 우리에게 사순절의 고난의 시간이 지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인생이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있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 같습니다.

 

사순절의 전통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시행되었고 과거에는 금식을 강조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구제와 경건으로 바뀌어졌다. 마태복음에서는 금식에 대하여 외식함으로 하지 말라고 슬픈 기색을 하지 말라고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너는 금식할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오히려 얼굴을 씻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보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본문은 잘못된 금식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목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는 금식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금식을 강조하는 교회나 금식기도원에서는 금식 자체가 이러한 능력과 효과가 나타난다고 본문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밥을 굶는 것이 아니라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주린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것이며 네 공의가 네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네가 부를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순절의 기간을 형식적으로 보내지 말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남에게 자랑하듯이 보이려고 하지 말고 외식하지 말고 그 근본 뜻을 깨달아 금식은 육신의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며 남의 고통을 내가 담당하는 것이 바로 금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신앙생활의 방법보다는 신앙생활의 행위자체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예식이나 예배자체보다는 주님이 원하시는 귀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육체를 학대하듯 금식하고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내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몸이 피곤하도록 기도하고 심방하고 성경을 읽고 하는 행위자체만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 이웃을 돌아보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사는 것이 곧 금식하는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교리에 매몰되어 버려 성경에 숨겨진 깊은 뜻을 잊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신앙의 의식에 너무 빠져버려서 사순절의 깊은 뜻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순절의 금식은 나 개인적인 금식으로 고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신 수난의 뜻을 깨닫고 이웃과 함께 사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비우고 나를 낮추는 것입니다.

 

미가서6: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의 본문은 고린도교회의 회개를 주님이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순절에 나 자신을 회개하는 근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순절은 회개의 기간입니다.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고 나를 죽이고 하는 것이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은 그래서 금식한다는 것은 내 육신의 욕망을 제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금식을 통하여 나 자신의 방종과 세상적인 육체적인 정욕을 금하고 주님을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마음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도자와 수도자의 일상속에 금식은 경건한 행위에 꼭 필요한 수도방법이었습니다. 불교나 여타종교에서도 자기를 괴롭게 함으로써 자신을 수련하는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두를 잡고 면벽을 몇십년을 하거나 금식을 40일씩 해도 근본적인 나 자신의 변화가 없이는 소용이 없습니다. 금식은 하나의 수단이지 그것이 목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금식 그 자체가 자랑거리라 될 수가 없습니다. 금식을 통하여 신앙생활의 안위로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금식은 더욱 주님께로 가기 위한 수단이요 방편일 뿐입니다. 금식을 통하여 더욱 주님의 귀한 뜻과 말씀을 깨닫는 통로일뿐입니다.

 

금식하고 나서 죄짓고 혈기가 그대로 있고 이기주의적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것입니다. 금식은 훈장이 아닙니다. 저도 과거에 많이 금식하고 아침금식을 몇 년동안 해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행동이요 내몸만 학대하는 금욕주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지는 이처럼 위험하고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다른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게 되는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렸습니다. 너무 배불렀습니다. 그래서 내가 배고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남이 배고픈지를 알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한국에 와서 대기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제치하의 기독교는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고 수는 적었지만 민족의 아픔과 함께 하였고 민족운동의 산실은 교회였고 기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교회가 정권의 시녀가 되었고 권력에 기생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이기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영혼구원이라는 허울좋은 말속에 민족도 백성도 안중에 없고 교회주의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순절의 교회가 아닙니다. 기복주의의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금식은 고난입니다. 사순절은 고난입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는 고난위에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이제 교회에서 회개하라는 외침은 강단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시대에 편승하고 돈이 생기는 곳은 좋은 자리가 있는곳은 불나방처럼 쫒아다니는 천박한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대의 화살촉이 되지 못하고 역사를 이끌고 갈 동력을 상실하고 갈길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예와 아니오를 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교회 안일주의와 내세주의에 역사를 거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금식에 관하여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의 40일 금식후에 주님이 당하신 시험에서도 돌이 떡이 되게 하는 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것도 거절하고 있습니다. 천하영광을 주겠다면서 내게 절하라는 마귀의 시험에도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는 육신의 금식과 함께 마음의 금식 영적인 금식을 통하여 나 자신을 성찰하고 금식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며 구제와 경건한 마음으로 참회의 시간을 가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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