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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사순절(5-1) - "나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 박영배 목사

관리자 2018-03-15 (목) 09:28 6년전 2759  

본문) 11:47~5716:1~10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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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을 하기 전, 그 날 아침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숨진 어머니를 살리려고 1시간 넘게 인공호흡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만난 죽음이었습니다. 귓전에서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어머니는 숨을 쉬지 않으셨고 눈을 뜨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6년의 세월이 흘러 저는 한신대학교 신학과 1학년 학생이 되었는데 어느 날 교회 집사님의 남편, 교통사고로 팔이 절단된 시신 앞에 섰습니다. 목사님을 따라 염하는 자리에서 두 번째 죽음을 대했습니다. 목사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정성껏 시신을 닦았고 그 후 구역질 때문에 꼬박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죽음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입니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그 하나요, 시신을 염하고 헛구역질을 하는 그 느낌이 또 하나입니다. 여러분에게 죽음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

 

 

2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는 죽이자고 하는 사람이 있고, 죽임당할 것을 알면서도 죽음의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신 분이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여서 자신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인 반면 죽임을 당하는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으로 나아가면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대속적인 죽음을 준비하고 실행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죽음 이전의 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정직하게 말하면 반드시 닥쳐올 죽음에 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무지하고, 죽음 너머의 세계를 몰라서 죽음 이전의 삶을 무의미하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회피하는 시대,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시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죽음을 모르는 시대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많은 죽음이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들려옵니다. 그러나 다 스쳐지나가는 소식입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일어난 친구 아버지의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소식도 바로바로 듣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죽음은 홍수와 같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에 무관심합니다. 반대로 사람의 수명이 늘어가면서 더 살고 싶어서 애를 태웁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잊혀진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는 다르게 예수님에게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예수님이 사시는 이유였습니다. 이 땅에 오신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죽음은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자산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죽음 이야기를 빼면 앙꼬(팥소) 없는 찐빵처럼 진짜를 알고 싶어서 까고 또 까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는 양파같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에게 죽음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라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죽음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죽음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3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 부르면서,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서, 짐승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이 죽음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새생명의 기쁨과 영생의 소망을 선물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나의 죽음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 이야기가 담긴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지금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송명희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저는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이기에, 우리들의 이름도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속에, 생명을 구원하는 이야기 속에 함께 어울려 기억되고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나라에 2200명의 주민이 사는 땅이 하나 있습니다. 그 땅에 교회가 11개인데 90% 이상의 사람들이 교회를 다닙니다. 그래서 주일날 점심에는 밥을 파는 식당을 찾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어디인지 아십니까?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라는 섬입니다. 염전과 소금으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아주 오래 전 그 땅에 문준경이라는 한 여인이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은 엄청난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도 문준경 전도사처럼 예수님!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남기는 일! 이 일을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행동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

어떻게 하면 문준경 전도사님의 뒤를 따라, 예수님의 길을 따라 나설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레위기 말씀에 보면 속죄 제사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속죄제물이 되신 분입니다. 온 인류를 위한 단 한 번의 속죄제물!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고,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렸습니다. 1950년 문준경 전도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예수님이라는 씨앗을 뿌려서 증도라는 섬에 복음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베드로전서 25절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징검다리가 되는 사람,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출애굽기 196절이 증언합니다.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될지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동일합니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인데 죽음이 나를 어찌하겠습니까? 죽음이 나를 어쩌지 못하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적어도 우리들에게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되면 안 됩니다. 우리들에게 죽음은 끝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몸을 빼앗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면 빼앗김이 아니라 돌아감입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몸만 그럴까요? 우리의 생명도 돌아감입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단절이 아니라 생명이 연속되는 출발점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출발하시겠습니까? 우리의 몸은 청년의 때를 가장 정점으로 태어나서부터 청년의 때까지 상향곡선이고 중년의 때부터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향곡선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의 인생과 우리 신앙의 인생은 다릅니다. 몸의 인생은 포물선을 그리지만 신앙의 인생은 죽음을 정점으로 하는 상향곡선이어야 합니다. 죽음의 문을 넘어서기 직전, 인생의 마지막 시기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문익환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신학 교수이신 목사님, 통일운동가였던 목사님, 민족통일의 지도자였던 목사님! 문 목사님은, 인생의 마지막 시기인 죽음을 정점으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민족의 제단에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셨습니다.

 

이제 다시 질문을 합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준비되고 있습니까? 오늘도 죽음을 향해 진지한 한걸음, 거룩하고 아름다운 한걸음을 걸어가셨습니까? 죽음은 회피의 대상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아름답고 거룩한 출발점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죽음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어떻게 살고, 내일은 어떻게 살 것인지 성실하게 질문하고 성실하게 답변하는 것이 죽음을 자알 준비하는 가장 진지한 모습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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