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23:1-12, 전9:11-18, 고후 11-30
지난 주간에 우리는 5년마다 치루는 대통령 선거를 했습니다. 결과에 따라 웃는 분들도 있고, 웃지 못하고 마음 속에 실망과 좌절을 겪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경험으로 보면 세상 모든 일들이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 성경에 비추어 생각해 보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본문은 세상 일들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1) 먼저 복음서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기본적인 삶의 자세는 언제나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낮은 자세로 섬기는 섬김이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3장은 예수님께서 그 당시의 율볍의 전문가들인 바라새인들을 심하게 책망하시는 내용입니다. 얼마나 심하게 책망하시는지 심지어는 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이러한 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사탄의 자식이라는 말로 가장 큰 모욕이요 수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볍의 전문가인 바리새인들을 향해 그들은 독사의 자식이요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권세에 기대어 사람들을 섬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법이라는 이름으로 백성들을 통제하고 생업에 매여 율볍의 규정을 제대로 다 지키지 못하는 일반 서민들을 법의 이름으로 억압하고 죄인이라고 무시하면서 자신들만 대접받으려 하고, 자신들을 높이며 살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인 울볍은 그 기본정신이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연약한 자들을 돕기 위해 세워진 법입니다. 십꼐명에 있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규정들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이 모든 내용들이 약자 보호법입니다.
그런데 바리세ㅐ인들은 하나님이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신 율볍의 규정들 외에 수십개의 또 다른 규정들을 만들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법은 만민에게 평등해야 하고 법은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법을 정 반대로 적용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법은 어떻게 시행되고 있습니까? 우리 사회가 공정과 상식이 진정한 의미에서 이루어 지는 법치 국가가 되려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기보다 힘든 사람,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로 살도록 법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왜 법률 전문가들인 율법학자들을 심하게 책망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섬김이 없었씁니다.
2)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두 번재 본문인 구약의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많은 부조리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만큼 공정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전도서 9장 11절은 그 사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다시 해 아레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뱅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애개 임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 현실의 부조리함에 너무 개탄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세상이 그렇다고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해 아래 있는 세상, 곧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그렇게 부조리하게 되어 있다고 성경이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이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해 아래에서 되는 일들입니다.
계속해서 성경 말씀을 새겨볼까요? 전도서 9장 18절입니다. “지혜가 무기보다 나느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뜨리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일은 아닙니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때로는 악이 선을 이기며 죄인이 의인보다 더 크게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서 되는 일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3) 자,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경 세 번째 본문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의로우밋을 믿고 주님의 뜻을 따라 헌신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세 번째 본문은 고린도 후서 11장의 말씀입니다. 이 본문의 내옹은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를 다니면서 겪어야 했던 많은 고난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많은 고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23절부터 27절까지 있는 말슴입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갖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며 유대인들에게 사십이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산하고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그저 성경에 잇는 말씀을 듣고 있지만 사도 바울처럼 이러한 고난을 지금 우리가 당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가 참고 인내하면서 견뎌내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복음 전도자로 살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부조리하고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떠나 사는 세상에서 오직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 많은 고통을 참고 견디며 이기고 살았습니다.
왜요? 그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끝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승리할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새 바울은 그 모든 고난의 경험을 말한 다움에 12장에서 그거 복음 전도자로 나서기 전에 자신이 체험한 낙원에 대한 간등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확실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이 부조리하고 악한 세상을 넘어 하나님의 정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새상이 부조리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도 바울처럼 믿음오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세상이 악하고 부조리할수록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보여 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정의를 믿어야 합니다. 오늘 부조리한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의 은혜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그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오늘도 내일도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과 함께!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기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