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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사순절(2-2) - "나쁜 사마리아인의 고백" / 청년주일 / 이성호 목사(포항을 사랑하는 교회)

관리자 2022-03-13 (일) 08:02 2년전 812  

본문) 5:10-20, 1:2-11, 10:17-31

 

장하준 교수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국방부에 의해 불온도서가 되었다는 소식에 경악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읽지 말라던 이 책은 강대국들의 기득권이 어떻게 보호되고 있고, 약소국을 어떻게 길들이고 있나를 여가없이 보여줍니다, 그렇게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눈을 제공해준 이 책은 그 제목에서부터 기독교의 풍자를 느낄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이 시대를 살아야 할 우리 젊은이들이 당면한 상황을 가늠케도 합니다.

 

오늘 청년주일의 세 본문을 통해서, 먼저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혹시 나는 나쁜 사마리아인에 속한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나는 나쁜 사마리아인과 친한 친구는 아닐까?” - 눈을 더 크게 뜨면, 세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자신들이 오른 사다리를 걷어차고, 다른 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으며, 세상의 부와 안정을 독차지하려는 정책을 펴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7080세대가 그같은 짓을 반복한 결과로, 이 나라가 헬조선이 되고, 지옥 같은 취업난과 주택난이 정착된 건 아닐까요.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는 부지중에 그 장본인이 돼버린 건 아닌가 하는 말씀입니다. 맛난 과실은 다 따먹고, 씨는 뿌리지 않는 괴물, 그 괴물 세대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미래 세대의 몫까지 소비해 버린 세대의 한 구성원으로써, 먼저 깊이 사죄하며 사순절 둘째 주일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그 마음에 기뻐하는 것(5:10-20)

참된 신앙이란 우리의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표현되고 구체화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관심을 갖는 문제들은 도덕과 종교의 문제인 동시에 경제와 정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발견되는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는 신앙의 힘은, 공동체적인 삶 속에 담겨있는 계시적이고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의미를 발견함으로 구현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지혜를 다루는 구약 본문 전도서는, 돈을 따르며 풍요을 따르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증해 보입니다. (5:10)입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종교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문제의 발단은, 가능한 한 더 많이 재물을 소유하려는데서 비롯됩니다. 헛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한, 소득을 늘리려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죠. (13)을 보시지요.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그런데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문제들, 곧 환경 생태계, 군비 축소, 평화 진착, 차별과 경쟁의 사회 구조 등등 역시, 경제와 정치적인 문제인 동시에 영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인생을 가리켜 16큰 불행이라 일컫습니다.

 

마지막절 20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우리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게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등장하는 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결국엔 소모품이 되어 사라질 지극히 물질적인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런데 기성세대가 이러한 삶의 빙식을 세대계승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고 있다는 데에, 더 큰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럼 둘째 본문인 야고보서를 보겠습니다.

 

2. 믿음의 시련을 기뻐하라(1:2-11)

야고보 사도는 당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의 복음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줍니다.

 

너희가 여러 시험을 당하거든야고보는 주안의 형제된 이들이 처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련이니 기쁘게 여기라!’ - 아멘.

 

야보고는 전합니다. (5)을 함께 읽으실까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 아멘. 모든 우리가 제정적인 성공을 향해 치닫는 삶을 계속 추구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삶 속에 담겨있는, 열정과 은혜를 지우는 것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돈과 성공,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인 명성, 그리고 진보주의의 위험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들, 고통받는 이들, 거부당한 이들,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십자가에 달리셨고 실패하셨으며, 옥에 갇히셨고 배신당하신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머니머니해도 돈이 제일인 문화의 위협을 받고, 사로잡혀서 이릴 갈까 저리로 갈까하는 신앙은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신앙>이지요. 야보보에 따르면 그러합니다. (8-10)입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 아멘.

 

우리의 종교적 갈망이, 타자와 정의에 대한 사랑이라는 구체성과 분리될 수는 없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함은, 공동체성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할 때 참된 신앙을 사는 줄로 믿습니다.

 

3. 선한 동기(10:17-31)

과거 예비고사, 학력고사, 그리고 수능시험 수석 합격자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해서 어려운 사람들 돕고 싶어요.” 그때의 학생들이 사회에 대한 어떤 채무의식을 느꼈던 아니든, 그래도 선한 동기는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김밥장수 할머니나 폐지 줍는 할머니의 선행에 대해서는 여러 번 들어봤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희생적 선행에 관해, 들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돈 많은 사람의 죄는 덮어주고, 어려운 사람은 억울하게 만드는 괴물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이런 세상을 만든 세대로서 우리 청년들에게 거듭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몇해 전만해도 여름 수련회청년 집회의 자주 등장하는 주제, ‘공부해서 남주자라는 슬로건을 보셨을 겁니다. “여러분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무엇보다 예수 믿는 우리 학생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 청년들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소외되고 어려움 겪는 이들을 돕는, 빛의 자녀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뜨거운 기도 가운데 결단하며, 우렁찬 찬양을 합창하던, 그 호기롭던 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서도 들려지지 않는 함성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무섭고 빠르게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작 어른이 돼서는 반대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누구라 할 것없이 저마다 신분 상승을 꾀했고 소득과 진급을 쫒았던 까닭입니다. 그렇게 이중적인 두 마음을 품은 전형적인 현대 종교인이 된 것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한 이 사건은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입니다.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만남, 그는 예수를 따르고자 나왔으나 거절당하고 있습니다. 그가 듣고 보고 배운 삶의 방식이 예수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22에 따르면 이 청년이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로 종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 청년의 실패는 누구의 잘못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마치 길가는 행인처럼 요즘 애들은 너무 이기적이야, 돈을 너무 밝히지”. “맞아 나이도 어린 것들이 아주 물질적이지..”- 마치 자신들이 젊을 때와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 되었다는 듯이 혀를 차곤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누가 이 젊은이들을 그렇게 가르쳤나요? 누가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었나요? 복음서의 나타난 젊은이와 동일하게 이 시대의 청년들은 피해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윗세대가 보이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그런 세상에 던져 놓은 장본인, 바로 나쁜 사마리안입니다. 저희가 능력주의를 복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젊은이들을 지옥같은 취업난과 생활고로 내몰았고, 그저 한해 한해 허락된 기회를 잡기에 혈안이 되도록 우리가 사다리를 걷어찼음을 시인합니다.

 

이 만큼 살아보니 아름다운 인생의 황혼을 맞는 일,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푸근한 미소가 자연스럽고, 욕심과 아집, 허위나 가식 따위에 사로잡히지 않는, 타자를 존중하며 배려하는 태도를 소유한다는 거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와는 달리 여러분은 아름다운 세상을 꼭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응원합니다. 주님을 믿고 끝까지 의지하십시오. 우리처럼 두 마음을 품지 마시고, 다음세대에게 소망있는 세상을 넘겨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대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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