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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5-2) - " 제자 공인 인증 " / 전대환 목사 >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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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사순절(5-2) - " 제자 공인 인증 " / 전대환 목사

관리자 2019-04-05 (금) 09:21 5년전 2645  

본문) 신 6:1~15, 요일 3:11~24, 요 13:31~35

■ 들어가는 이야기

 

일에 치이고 사람과 부딪치느라고 지난 한 주간도 고생 많으셨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기쁘게, 또한 희망 가운데서 다시 만나게 돼서 기쁩니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따뜻한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의 집을 찾아오신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구석구석 훈풍이 산들산들 불어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사랑하는 마음

 

인터넷에 접속해서 무슨 일을 볼 때마다 짜증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관공서나 은행 사이트에 접속하면 ‘보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연신 프로그램을 깔라고 합니다. 그리고 공인인증서를 써야 하는 것도 귀찮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개임을 증명해라, 증명서를 내 놓아라’ 그거지요. 이거, 개선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남에게 신분이나 자격을 인증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신분증’이나 ‘자격증’ 같은 ‘증’입니다.

 

우리가 다 예수님의 제자들인데, ‘당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인증하라!’ 하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서 13:34-35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하셨지요. ‘모든 사람이’는 공개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는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공적인 인정, 이게 ‘공인 인증’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로 인증되는 ‘증’ 곧 자격증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흥부 놀부 아시지요? 놀부의 심보가 아니라 흥부의 마음씨를 가지는 것, 그것이 사랑의 좋은 예입니다. 먼저 놀부 심보를 몇 가지 봅시다. 길 가는 양반 재울 듯이 붙들었다가 해 지면 내쫓기, 남의 노적에 불 지르기, 가물 때 남의 논 물꼬 트기,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시앗 싸움에 첩 편들기, 소경 의복에 똥칠하기, 배앓이 난 놈 살구 주기, 맺은 호박 덩굴 끊기, 걸인 보면 자루 찢기, 상주(喪主) 잡고 춤추기, 물동이 인 여자 입 맞추기, 옹기 장사 지게 작대기 차기, 장독대에 돌 던지기…, 등등 끝도 없습니다.

 

■ 사랑 판별법

 

그러면 흥부의 마음씨는 어떨까요? 부모에게 효도하기, 어른 존경하기, 형제간에 화목하기, 친구에게 신의 보이기, 굶는 사람에게 밥 덜어 주기, 얼어서 병든 사람에게 옷 벗어 주기, 늙은이 짐 져주기, 길에 떨어진 물건 임자 찾아 주기, 산에서 백골을 보면 깊이 파고 묻어 주기, 수절과부 보쌈하면 쫓아가서 빼어 놓기, 어진 사람 모함하면 발 벗고 나서서 발명해주기, 길 잃은 어린아이 제 부모 찾아 주기, 주막에서 병든 사람 본가에 기별하기…, 등등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예수님 말씀에 딱 맞는 삶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흥부처럼 살다가는 남 좋은 일한다고 제 실속은 못 챙기게 되겠지요. 그러니 놀부가 흥부를 좋아할 리가 있습니까? 저놈, 집안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서 흥부를 미워했지요. 결국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자본주의 관점에서 볼 때 놀부의 심정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때 흥부의 삶이 하나님 나라에 더 적합한 삶입니다. 《사랑의 기술》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에리히 프롬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이것은 성숙하지 못한 사랑이다. 그렇다면 성숙한 사랑은 무엇인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문예출판사, 2013), 100쪽.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사랑은 ‘필요에 의한 사랑’입니다. 그 반면, 하나님 나라에서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필요에 의한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도 할 수 있고, 세리들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보다 훨씬 더 잘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거래’입니다. 그런 사랑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인증 받을 수 없습니다.

 

공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를 사랑한다면 어찌 그를 위한 수고를 아끼겠으며, 누구를 충심(忠心)으로 대한다면 어찌 그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기를 게을리 하겠는가?” ― 전대환, 《공자제곱》(이야기마을, 2017), 전자책 578/858쪽.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판별할 수 있습니까? 공자님은 ‘그를 위한 수고’를 들었습니다. 생기는 것이 없어도,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도 누군가를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를 사랑한다는 증거다, 이겁니다.

   

■ 사랑 공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서 6:33-35).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이제 이해하시겠지요? 이런 사랑을 가져야 예수님의 제자로 공인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몸에 배도록 해야 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다가 금방 일어났어도, 그런 사랑을 자연스럽게 베풀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흥사단을 창립했을 때, 단원 면접을 보러 찾아온 젊은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사랑하는 공부를 해보신 일이 있나요?”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사랑은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기를 공부한 일은 없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샘이 저절로 솟는데 우물을 왜 파나요?” ― 이광수, 《도산 안창호》(범우사, 2015), 전자책 464/632쪽. 땅속에서 물이 솟아오르기는 하지만, 샘을 파지 않으면 샘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 안에 사랑을 넣어두셨지만, 그것을 끄집어내서 갈고 닦지 않으면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 맺는 이야기

 

모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자자손손 잘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신명기 6:7-8). 하나님의 계명, 한 마디로 사랑이지요. 그것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계명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머리에도 새기고, 마음에도 깊이 넣고, 문에서 써 붙이고 훈련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형제자매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17-18입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말과 혀고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이것은 ‘필요에 의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필요에 의한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익혀야 합니다.


진실하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로 인증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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