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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4-1) - " 회개하고 깨어 있으라 " - 순교자기념주일 / 홍철화 목사 >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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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사순절(4-1) - " 회개하고 깨어 있으라 " - 순교자기념주일 / 홍철화 목사

관리자 2019-03-26 (화) 22:06 5년전 2585  

사 30:8-18, 계 3:1-6, 마 23:13-28

 

목회 현장에서 떠나 꽤 오래 된 지금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늘 실감합니다. 후배들이 시무하는 교회에 가서 녹녹하지 않은 목회현실을 봅니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터에서 목회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쉬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가 점점 복잡해지고 세분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이 그야말로 돈에 미친 모습입니다. 이런 현장을 <돈교>의 세상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돈교의 세상은 권력과 재력과 매력에 도취하여 그 길만이 살길인 듯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과거 이집트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게 했던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떠오릅니다. 지금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그 노예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도 모르는 가운데 그날그날을 살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지금 이 모습을 보시고 사람들을 향하여 어서 거기에서 나오라. 그 노예생활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그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허덕입니다. 그렇게 많은 주식을 가진 대기업의 주인들과 가족들이 보통 사람들이 셀 수조차 없는 지폐와 주식을 소유하고도 더 못 가져서 안달인 모습은 처절하고 가련하게 보입니다. 그 현실을 뚜렷이 보고 느끼면서도 동시대의 사람들 역시 그것을 따라가려고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스카이 캐슬’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정말 실감하고 공감하면서 가슴을 쳤을 것 같습니다. 

 

1. 사실을 예언하지 말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백성입니까?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 그는 그 명령을 순종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를 향하여 복을 받은 사람이라시면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고 선민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 온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나그네의 삶으로 떠돌다가 이집트의 긴긴 노예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말이 450 년이지 얼마나 길고 긴 고난의 세월이었습니까? 하나님은 그 노예생활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거기서 빼내십니다. 그렇게 힘들고 괴로운 생활을 하고 거기에 젖어들어 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그들을 해방시켜 광야에서 40 년 동안 철저하게 훈련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주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사사들이 다스리는 세상을 거쳤습니다. 그 후 그들이 주변 국가들과 같은 왕국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 왕국이 북 이스라엘 남 유다로 나누어져 참으로 불행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견뎌왔던 것입니다. 강대국의 틈에서 결국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게 되고 세계에 흩터져 온갖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역사를 말하는 걸까요? 이사야 30 장 8 절 이하에서 ‘... 유다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를 백성 앞에 있는 서판에 새기고 책에 기록하여서 오고 오는 날에 영원한 증거가 되게 하여라.’얼마나 가슴 아픈 지적인가 알게 하는 구절입니다. 그들이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의 선민이었고, 그 어려운 과정을 다 겪으면서 약속의 백성으로 지내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이 백성은 반역하는 백성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손으로서, 주님의 율법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자손이다.’이스라엘이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이제 더 이상 나빠질 수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최악의 상태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들이 예언자들을 향하여, ‘우리에게 사실을 말하지 마시오.  우리에게 격려하는 말이나 해 주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삼박자 축복에 대한 말이나 듣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출세 성공하는 그런 비법이나 알려 주시오!’ 이런 상황입니다. 때문에  예언자를 통해 그 백성들에게 망한다고 외칩니다. 죄 때문에 산산히 부서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을 보는 예언자가 외칩니다. ‘너희는 회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15 절) 하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고 도망가겠다’고 합니다. 진정으로 살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타락의 밑바닥까지 가버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드십니다. 18 절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신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복되다.’라고 하십니다. 

  

2. 회개하라. 깨어나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 교회는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대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당시 소아세아에 있었던 교회로 지금은 거의 터만 남아있는 형편입니다. 계시록에서 이 교회를 소개한 내용을 보면 칭찬과 책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는 칭찬 일색입니다. 반대로 어떤 교회는 책망 일색입니다. 

 

누구나 교회에서 목회할 때, 심혈을 기우려 헌신 봉사하여 좋은 결실을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음을 경험합니다. 그 이유는 현장이 각각 다르고 또 사역하는 사람의 방식이 같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성과가 나타나면 자만하지 말 것이며, 비록 성과가 없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역자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충성할 뿐입니다.

 

사대 교회는 몇 사람의 흠 없는 신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멸해 가는 교회였습니다. 때문에 ‘살았다 하나 죽은 교회’라고 한 것입니다. 사대라는 지역은 두아디라에서 남동남으로 약 30 마일 되는 지점에 있으며, 트몰러스 산 북쪽 끝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과거에는 비옥한 헤르머스 계곡을 지배하는 도시로 옛날 라디아 왕국의 서울이었습니다. B.C. 560 년 경에는 번창하였고, 페르샤의 고레스 왕에게 정복된 후 300 년은 무명의 도시로 존속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 시대를 지나 로마의 속령이 되면서부터 다소 재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주후 17년에 지진으로 전멸되었으나 디베리우스 황제의 호의로 재건되어 이 도시가 ‘살아납니다’그러나 이 도시가 사치와 음란으로 소문이 나 기독교 신앙 면에서 보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상황을 생각하고서 본문을 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이 사순절 시기에 오늘의 교회가 어떤지 생각하면서 회개하고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전에 하던 타성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의 현실을 비관하여 ‘이럴 수가 있나?’탄식하고 비난합니다. 성토하고 정죄합니다. 이런 태도가 좋은 것이겠습니까? 끈임 없는 개혁을 원하고 변혁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결국 변하고 바꿔져야 할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나 만 잘하면 점점 세상이 바꿔질 것입니다. 나부터 잘 합시다. 나 자신부터 먼저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3. 참으로 중요한 것

 

마태 23:13- ‘화 있을진저!’ 이렇게 두려운 저주의 말이 거듭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외친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독한 <위선자>라고 탄식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사람을 선도하지 않고 지옥 자식들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초에 ‘새해의 기원’을 말씀 드릴 때, 복과 저주가 우리 앞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둘 중에 하나를 살아가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복을 선택하면 행복하고, 저주를 택하면 불행합니다. 자신이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자기 책임입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특수한 계층으로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으며 구별된 고위층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이들과 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결국 예수님을 반대하고 적대하는 세력에 가담하였고,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되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고 잘 한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그러니 <위선자들>입니다. 겉 다르고 속 다릅니다. 23 절 이하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선한 사람들, 신실한 사람들,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자들이라고 자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본받아서는 아니 될 위선자들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오늘 처지에서, 봉사 잘하고 새벽기도회에 나가며 십일조를 잘 바치고 주일 성수하고.... 이렇게 모범적이라고 자처하는 교인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삶에서는 시기 질투 반목 분노 적대 불화가 아직 부글거린다면 거기에 위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아직 갈등과 분쟁이 없어지지 않아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면 이런 상황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너희가 잘 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 중한 사랑이 거기 없다!’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함께 <아가페> 사랑이라고 압축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그 계명에 다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순절 시기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바라시는 참으로 중요한 아가페 사랑을 실현해야 하겠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전하시던 말씀이 절박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세상처럼 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의 자녀로 사는 것이 참 회개입니다. 그렇게 새롭게 깨어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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