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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6-1) - " 참 안식의 잔치를 베푸신 예수 " / 김진수 목사 (신학교육주일)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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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주현절(6-1) - " 참 안식의 잔치를 베푸신 예수 " / 김진수 목사 (신학교육주일)

관리자 2021-02-12 (금) 08:44 3년전 754  

본문) 창 2:1-3, 롬 14:1-12, 막 2:23-3:6


주현절 여섯 번째 주일이며 설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설’은 ‘새해의 첫 마디’란 뜻이며 ‘서럽다’ ‘낯설다’ ‘삼간다(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 늙는다고 생각하면 서럽고, 새로운 시작이라면 좀 낯설고, 첫 출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시작한다면 매사를 삼가는 날이 될 것입니다. 본래 설은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를 가리키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 기간 동안 마치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고 힘을 얻어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듯이 일과 노동에서 안식을 얻고 속되고 부정한 일은 삼가며(愼) 새 해를 준비하기 위해 거룩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본래 가졌던 명절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는 설, 추석 명절이 끝난 후에 오는 병이 생겼습니다. 의학서적에도 없는 “명절증후군” 이라는 병입니다. 명절을 쇤 후로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으로는 두통, 어지러움, 소화불량이 생기고, 심리적으로는 피로와 부담감, 우울과 무력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원인은 신체적으로는 장시간의 운전과 장거리 이동에 따른 피로, 그리고 주부들의 과로 때문이요,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명절의 본질은 안식인데 오히려 인간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을 상실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안식을 회복시켜 주시는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오늘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이며 주현절 마지막 여섯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시고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안식의 은총(창2:1-3)


하나님은 창조를 완성하신 후 그가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인간과 함께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한 과정이 아니라 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안식하는 나라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무엇인가에 얽매어 사는 것은 불행입니다.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기쁨과 감격으로 살아야 합니다. 서로 싸우며 갈등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과 화해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본문 창2:1-3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그리고 안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1-2)” 성경에서 첫 번째로 언급하신 안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안식은 그침(창2:2, 그치고)입니다. 창조를 마치신 하나님은 그 일을 그치십니다. 더 이상 그 일에 매이지 않으시며 그 일로부터 자유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모자람도 없고 충만하며 충분합니다. 그래서 그치는 것입니다. ‘그침(종결 ceasing)’이란 말은 ‘사바트(shabbat)’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안식은 곧 그침이기 때문입니다. ‘그침’의 반대는 ‘지나침’입니다. 우리는 항상 지나쳐서 문제입니다. 만족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한 이유는 욕심이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그칠 수 있어야 행복합니다. 부족하지 않는데도 돈 때문에 밤이 되어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TV를 필요한 만큼만 보고 끌 수 있어야 합니다. 적당히 먹고 수저를 놓아야 합니다. 적당히 한잔하고 일어설 수 있어야 탈이 없습니다. 


안식은 쉼(출31:17,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다 마치신 후에 쉬셨습니다. 일을 다 마쳐야 비로소 ‘쉬는 것(to rest)’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방학숙제를 다 마쳐야 쉴 수 있습니다. 숙제하다 말고 놀면 숙제생각 때문에 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만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다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으며, 참 쉼을 통해 우리는 엿새 동안의 일을 감당할 여분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에는 평일을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없고 안식일과 관련되어 “안식 후 첫(둘째, 여섯째) 날”로 불립니다. 왜냐하면 안식과 쉼 없이는 온전히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거룩입니다(창2:3, 거룩하게 하셨으니). 안식은 보다 가치 있고 소중한 일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살아왔던 삶, 의미 없이 반복했던 삶을 거부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삶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신 가장 소중하고 영광스런 분에게로 돌이키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하나님의 선하신 명령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룩은 바른 위치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서 어긋난 것이 죄라면 거룩은 항상 모든 일에 주의 말씀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순간 우리가 서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게 되고 안식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의 말씀 아래 거할 때 참 안식은 찾아옵니다.


안식은 축제(3절, 복되게 하사)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한 분이신가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또한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축하함으로서 축하받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예배를 통해 찬양할 때 빛을 발하며 우리의 아름다움은 서로를 높일 때 서로 존귀한 자로 존재합니다. 또한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장 아름다운 축복임을 아는 사람은 안식의 은총을 받으며,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복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비가운데 용서 받은 거룩한 백성임을 깨닫고 하나님이 임하신 가장 영광스런 자리에 함께 서있는 모든 성도들이 이 땅에서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아 서로 섬기고 사랑함으로 안식의 기쁨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안식의 나라요 기쁨의 잔치가 열리는 나라입니다.


파괴된 안식의 은총(롬14:1-12) 


서신서의 말씀 롬14:1-12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의 은총이 어떻게 파괴되고 무너졌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왜곡하고 변질시켰습니다. 그들은 안식의 계명은 지켰지만 참 안식은 누리지 못했고 안식의 형식은 지켰으나 안식의 본질은 상실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을 시간적으로는 “안식일”에, 공간적으로는 “성전”에서 거행되는 제사에 국한시키고 우리가 “선제적으로 율법을 지키고 행함”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참 안식의 은총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성전제사를 드리고, 주의 계명을 문자적으로 지킬 때 참 안식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날과 모든 공간과 모든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고 함께하며 성령의 권능으로 그의 계명과 말씀 안에 순종함으로 누리는 안식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남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많은 로마교회 교인들이 고기를 먹어야 하느냐, 채소를 먹어야 하느냐의 문제로(1-4절), 또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또 다른 사람들은 모든 날을 동일하게 여기는 문제(5절)로 서로를 비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참 안식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은 우리 힘으로 능력으로 결코 성취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인간의 한계를 알려주고 우리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그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실 분이 오셔야만 가능한 일임을 가르쳐주는 “몽학선생”일 뿐입니다. 보십시오! 참 안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곳마다 안식의 삶이 이루어지고 안식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날과 모든 음식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죄인은 거룩하게 되고 모든 율법은 우리를 위해 우리를 자유케 하는 법이 되었습니다. 신랑이 오기 전까지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신랑이 도착하여 혼인잔치가 시작되면 마음껏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신랑과 함께 먹고 마시고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붙들고 있으면 서로 비난하고 싸움만 일어납니다. 이제 신랑이 왔습니다. 신랑과 함께 하고 그분 안에 거하고 그가 주시는 성령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율법을 성취하고 참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안식을 회복하신 예수(막2:23-3:6)


예수님은 파괴된 안식을 회복하시고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복음서 막2:23-3:6은 안식일에 손으로 이삭을 잘라먹은 제자들을 향해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왕 이야기를 들려주심으로 참 안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치유해 주심으로 진정한 안식을 성취하신 사건을 보여주셨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손으로 이삭을 잘라먹는 것은 율법이 허락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안식일 법을 들어 제자들을 비난하고 그 제자들을 금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예수를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의 예를 들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은총의 날임을 가르치십니다.(27절)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우리가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 날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참 안식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고 참 안식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시고 회복하신 안식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안식이 지켜야 할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권리라고 하십니다. 유대인의 삶의 교본인 미쉬나에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한 600개의 세부규정이 있습니다.(이천보이상 금지, 두 글자 이상 쓰는 것 금지, 고쳐 쓰기 위해 지우는 것 금지, 병 고치는 것 금지, 물건 옮기는 것 금지, 부러진 팔 다리 펴는 것까지 금했는데 그것은 너무나 무거운 의무라서 그것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 목동, 가난한 자는 평생 그 율법대로 살 수 없지요! 그러나 참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권리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주님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안식,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 받을 수 있는 안식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제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입니다. 해방입니다. 참 안식을 누립니다. 병든 자는 치유를, 죄인들은 죄에서 자유를, 귀신들린 자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해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을 규정을 문자적으로 지켜서 안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안식을 주시는 분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안식을 얻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11:28)” 지금 내게 찾아오시고 나를 만나시고 지금 내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한 분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안에 안식이 있고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가 안식입니다. 이제부터는 안식일을 지켜서가 아니라 안식을 주시는 분, 예수만나야 안식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안식은 율법대로 살아야 얻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안식을 먼저 얻어야 율법대로 살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모든 창조를 다 마칠 수 있었고 그 다음에 쉬셨습니다. 그러나 여섯째 날에 창조된 인간은 창조되자마자 하나님과 함께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아담은 먼저 하나님과의 안식에 들어감으로 그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안식은 사람의 수고와 행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과 더불어 참 안식을 누린 후에야 비로소 모든 일을 완전하게 이룰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완전한 삶을 사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안식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그와 동행함으로 그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창조의 마지막 날인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주간의 첫날(일요일, 부활의 날)을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안식을 누림으로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은 아직도 안식일이 마지막 날(제 7일)이지만 교회는 안식이 첫 날입니다. 안식이 먼저입니다. 먼저 구원받고 은혜 받고 성령 받고 능력 받고 그리고 한 주간을 살아갑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율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곡된 안식, 파괴된 안식을 회복하시고 참 안식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잔치와 축제를 상실한 세상에 참 안식의 잔치를 회복하시고 새 잔치를 열어주셨습니다. 율법의 주인이요 안식을 주시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피곤한 삶에서 새 잔치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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