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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2-1) - " 새 시대의 비전 " / 이훈삼 목사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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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주현절(2-1) - " 새 시대의 비전 " / 이훈삼 목사

관리자 2018-01-12 (금) 09:09 6년전 2610  

본문 : 12:22~32, 37:15~23, 2:11~22

제목 : 새 시대의 비전

 

 

1. 주님이 선포한 새 시대

 

1) 이 땅에 생명이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1:1~5)는 그냥 한 사람의 예언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초대 교회는 예수를 이런 정도의 분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렇게까지 초대교회가 핍박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이 목숨 바칠 각오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주님이 선언하고 행동을 통해 보여주신 비전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이 이질적일수록 기존 질서와의 마찰은 불꽃을 튈 수밖에 없었다. 오늘 마태가 전한 복음은 예수님이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2) 눈 멀고 말 못하는 환자를 주님이 깨끗하게 치유해 주셨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의 삶은 마치 우리가 깜깜한 밤길을 걷는 것처럼 불안 그 자체다. 게다가 말까지 못하는 이중 장애의 삶은 상상하기 어려울정도로 고단하다. 아무리 해석해도 이유를 알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서 사람들은 악마의 저주라고 생각했다. 실로 그것은 가히 그 사람을 악마가 지배한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괴로운 삶이었다. 사랑의 주님이 이 사람을 그냥 지나치실 리가 없다. 주님은 아주 간단히 그의 인생을 옥죄고 있는 고통의 근원을 치유해 주셨다. 정말 놀라운 역사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기적은 흔한 능력이 아니다.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정말 악마처럼 비인간적인 바리새인들은 한 사람의 회복된 삶보다 예수에 대한 비난과 공격에 더 앞장섰다.

 

3) 예수의 놀라운 능력은 그가 바로 악마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 가능하며 결국 예수는 선한 능력으로 세상을 구원할 분이 아니라, 악마의 힘으로 세상을 파멸시킬 존재라는 주장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독설에 주님은 마찬가지로 아주 간단히 대답하신다. 내가 악마의 힘으로 악마를 제어하였다면 악마 집단 안에 내분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러면 악마의 나라는 황폐하게 될 것인데 악마가 그리 하겠는가? 주님이 보여주신 치유의 힘은 악마가 아니라 성령의 권능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기적적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앞 못 보고 말 못하고 인간을 고난에 빠트리는 악마의 세상을 폐기하고 치유하여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새로운 시대(Eon)가 도래했음을 선언한 것이다.

 

4) 2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겹겹이 쌓인 고난의 현실에서 숨이 막히는 절망을 호흡하고 있었다. 고통이 깊을수록, 악마적 현실이 피부에 닿을수록, 낮의 해가 가려지고 어둠의 현실이 지속될수록,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스스로 메시아라 주장하여 솔깃했지만 결국 그들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런데 갈릴리 전 변방 나사렛 시골 출신의 예수라는 청년에게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선언과 함께 실제로 그것이 우리 시대에 동터오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시대를 본 사람들은 성별과 직업에 관계없이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후예다.

 

 

2. 예언자 에스겔의 환상 : 둘이 하나가 되리라!

 

1) 영원히 찬란할 것 같았던 다윗-솔로몬 왕국이 불과 400년 후에 패망한 것은 솔로몬 사후에 발생한 남북 분단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스라엘은 남과 북의 불필요한 경쟁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기력을 다 잃어 버렸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온전히 대응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도성과 그의 백성의 궤멸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분단의 폐해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광범위한 것인지는 70년 이상 분단의 세월을 살고 있는 우리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역사의 질곡과 개인 삶의 근저에 박혀 있는 분단의 가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눈물로 부른다. 오늘 에스겔의 환상은 당대의 통일 노래라고 할 수 있다.

 

2) 에스겔 시대 이스라엘의 현실은 마치 마른 뼈들과 같았다. 살았다고 할 수 없는 흉측한 해골과 뼈들이 가득 찬 골짜기, 여기는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해도 생명 동산이 될 수 없고 죽음의 골짜기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먼저 에스겔에게 이 마른 뼈들이 다시 일어나 생명을 얻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그 다음에 이들이 열어갈 새로운 역사는 더 이상 남과 북이 분열되어 죽고 죽이는 구습의 세월이 아니라, 둘이 하나 되는 세상, 둘이 본래부터 둘이 아니라 하나인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셨다. 남과 북이 분열되기 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온 겨레가 하나 되어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동고동락하던 찬란한 영광을 다시 꿈꾸는 것이다. 이제 분열의 답답한 역사는 더 이상 존속되어서는 안 된다. 정말 하나님의 기운이 불면, 마른 뼈가 일어나고 분단과 증오의 역사를 종식시키며, 온 겨레가 한 형제자매로 거듭나는 새로운 역사를 여는 것이다.

 

3) 우리는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오랜 갈등과 대결을 지낸 이후,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서 손을 맞잡고 평화와 통일을 공동으로 선언하며 민족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약속을 가슴 벅차게 지켜보았었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의 분위기는 10년 이상 지속되지 못했고, 금강산이 닫히고 개성 공단이 폐쇄되는 등 지난 10년 동안에는 분단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하는 작업들만 경험하였다. 한국교회가 평화를 위해 아무리 교류와 협력을 외쳐도 거대한 벽 앞에서 가로막힐 뿐이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의 어둠을 걷어주시고 남과 북이 새롭게 열어갈 새 시대를 맞이하게 하셨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있지만, 하나 됨에 대한 확신과 서로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불어 넣어주시는 에스겔의 환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4) 이 꿈이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꿈이 없는 사람은 결코 현실을 갱신할 수 없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꿈을 꾸고 꿈을 간직한 삶은 포기하지 않는다. 예수님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싸인 고난의 현실 가운데서도 구원의 꿈을 접지 않았기 때문에 메시아를 만났고 구원을 경험하였다. 에스겔은 분단의 상처와 고통을 싸안고 괴로워하면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비전을 놓지 않았다. 그 비전이 먼 훗날 아무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메시아 대망을 간직하게 하였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이 비전을 내려주시기 바란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 분열을 넘어 하나 되어 누리는 행복의 꿈을 주시기 바란다. 그 속에 새로운 미래가 잉태되는 것이다.

 

 

3. 교회-하나 되는 꿈의 실현체

 

1) 교회는 분열로 고통 받는 세상을 평화의 세계로 만드는 사명을 받은 공동체다. 세상은 죄로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포기하시거나 싫어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이면서 까지 사랑하신 것이 바로 이 세상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신 것도 세상을 위함이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이 세상을 위함이다. 이토록 사랑하신 세상을 주님은 마지막으로 교회에 위탁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의 부탁을 사명으로 고백하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모임이다.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은 하나 되게 하라는 것이다. 분열의 고통을 넘어 하나 되게 하는 사명을 수행하려는 교회는 그 자신부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교회 스스로 분열하면서 세상을 하나 되게 하겠다는 것은 망상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세상을 이어 줌으로써 화목하게 하신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여기에 닻을 내리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히 나설 수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 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에 힘입어 주님 앞에 용서받게 되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이 신앙을 고백하면서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다. 오늘 이런 그리스도의 교회가 분쟁에 휩싸이고 있다. ‘나는 죄인입니다!’하는 고백은 사라지고 인간의 의가 넘친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자기기만이 교회를 휘감고 있다. 그곳에는 십자가의 은총으로 세워지는 교회는 가능하지 않다. 끊임없이 자기 성()을 쌓아 서로 간에 담들만 높이 올라갈 뿐이다. 이런 교회에 어떤 은혜가 있고 새 시대를 향한 비전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바로 이 담을 헐어버리시겠다고 하신다.

 

3) 한국교회가 도처에서 무너지고 있다. 개체 교회도 기장 교단도 한국교회도 무너지는 소리가 굉음처럼 들린다. 스스로 일어설 기력마저 상실하여 지금 교회는 거의 중환자에 가깝다. 이런 몸으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은 우스운 주장이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말라비틀어지고 생명을 잃어 널브러져있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비전의 기운이 불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 전체로 확산되어야 한다. 우린 어찌할 것인가?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복음의 원래 음성에 영혼의 귀를 모으는 것이다. 죄로 하나님과 분열된 인간, 죄로 인간과 인간이 분열되어 서로 죽이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 거룩한 희생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평하게 하시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하나 되게 하셨다. 그리고 이후로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속하고 계신다. 우리 교회가 바로 이 지점의 신앙고백에 다시 서야 한다. 비뚤어진 몸을 추스르고 본래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2천 년 전 교회의 원형을 되찾기 위해 피땀을 흘려야 한다. 우리들의 미래 비전은 바로 그 과거의 회복 속에 놓여 있다. 2018,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해는 진정 구원의 비전을 새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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