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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주현절(1-1) - " 하늘 음악에 맞춰 춤춘다 " / 이순태 목사

관리자 2020-01-07 (화) 19:21 4년전 2200  

본문) 겔 3:16-21, 행 4:1-4, 13-21, 마 4:12-25


1. ① 주후 18세기 왈츠가 유럽에서 점차 인기를 얻었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대부분 그것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리듬, 그리고 상대방과의 가까운 신체적 접촉을 보면서 매우 선정적이고 외설스러운 춤이라고 평가를 하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법으로 금지하기도 하였다. 이런 반응은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사추세츠에서 나온 한 ‘예법서’에 의하면 “왈츠는 성품을 아주 지나치게 느슨하게 만드는 춤이라서 결혼을 하지 않은 숙녀들은 전적으로 멀리해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왈츠에 반대하는 자들 중에는 종교지도자나 도덕주의자들 뿐 아니라, 무용 강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왈츠는 그 스텝이 간단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쉽게 배울 수 있어서 무용 강사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왈츠가 널리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다. 익숙해서 당연한 것으로 살아가는데, 갑자기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니라며 새로운 말씀이 주어질 때,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경계심이나 저항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익숙한 것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런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세우신다.

  ②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셨다. 그러면 파수꾼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여 깨우치는 것이다. 즉 백성에게 하늘 음악을 들려주고 하늘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바꾸도록 독려하는 자가 바로 파수꾼이다.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못한 하늘 음악을 틀어주면서 그에 맞춰 스텝을 밟으라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어색해 하고 반발을 한다. 때로는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런 것이 무슨 음악이냐고! 그렇더라도 파수꾼은 상대가 누구든, 반응이 어떠하든 하늘 음악을 틀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파수꾼의 의무다. 


2. 세례 요한이 반대자들에게 붙들리자,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때 예수님이 선포하신 내용은 무엇인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선포는 예수님 사역의 핵심 내용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① 하나는 ‘회개’이다/ 회개로 번역되는 단어들이 성경에 몇 개 나오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히브리어로 ‘나함’과 ‘슈브’이다. ‘나함’은 ‘뉘우치다, 슬퍼하다’는 뜻이며, ‘슈브’는 ‘돌아가다’라는 뜻이다. 이 두 단어를 종합하면, 회개란 자기 죄를 슬퍼하고 뉘우치며,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에는 이 두 요소가 함께 있어야 한다. 현재 내 삶의 방식을 뉘우치고, 슬퍼하는 ‘나함’만 가지고는 안된다. 진정한 회개는 주님께 돌아가는 구체적인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누가복음 15:11절 이하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챙겨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다 탕진해 버린다. 거지가 되어서야 그는 자기 죄를 알고 뉘우친다. 이것이 ‘나함’이다. 그러나 그 ‘나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슈브’ 즉 돌아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작은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그래서 온전한 회개가 된다. 회개에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돌아가는 것, 즉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회개하라! 외치시면서 구체적으로 삶을 바꾸기를 요구하셨다. 

  ② 다른 하나는, ‘천국’ 즉 ‘하늘 나라’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천국이란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나온다.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은 이방인 특히 헬라인에게 복음을 설명할 목적으로 기록된 것인데, 헬라인에게 하늘은 신화에 나오는 많은 신들이 사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하늘 나라! 하면 많은 신들의 나라처럼 생각할 수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기하였다. 반면에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기록된 책인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는 것을 꺼리기에,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하늘 나라, 즉 천국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든, 천국이든 그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다. 즉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만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면서 순종할 때,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자 이땅에 오신 것이다. 

  ③ 그런데 예수님이 전하시는 천국 복음은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을 거론하였지만, 정작 하늘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에는 몇 개의 음악들이 있었다. 

  ♠ 사두개파가 전하는 음악이 있었다/ 사두개파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돈을 누렸던 종교적 귀족들이었다. 그들이 즐겨 듣는 성전 음악은 낮은 곳으로 오셔서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의 것과는 전혀 달랐다.

  ♠ 바리새파가 전하는 음악이 있었다/ 바리새파들은 주전 2세기경 성전을 독차지한 사두개파로부터 쫓겨난 레위 출신의 제사장과 학자들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율법의 해석과 세부 규칙에 대한 제정, 율법 학습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전한 율법주의적인 음악은 율법 이전에 은혜를 강조하신 예수님의 것과는 달랐다. 바리새파가 요구하는 춤은 너무 힘들고 지키기 어려운 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춤은 왈츠와 비슷해서 백성들이 접근하기가 쉬웠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30). 

  ♠ 에세네파가 전하는 음악이 있었다/ 에세네파는 사두개파가 성전을 장악하기 시작한 주전 3세기 이후부터 예루살렘 성전은 자정 능력을 상실하였다고 비판했다. 또한 바리새파의 토라 해석과 활동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들은 점차 광야로 이동하여 공동체를 이루면서 생활하였는데, 세상과 분리되어 가는 이들의 음악 역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랑을 전하신 예수님의 것과는 달랐다. 

  ♠ 젤롯당이 전하는 음악이 있었다/ 젤롯당은 로마 제국의 지배에 반발한 무장 저항 세력으로서, 이스라엘 무장 투쟁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무장 투쟁은 칼이 아니라 사랑을 전하는 예수님의 춤과는 달랐다. 

  ④ 예수님은 세상에서 좌절한 자들에게 꿈과 소망을 제공하셨다. 그분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셔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자들을 사랑으로 안아주셨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기존의 방식에 익숙한 자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서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을 받아 저런 일을 한다고 폄하하였다. 또한 예수님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몰아붙였다. 예수님은 이런 비난을 들으시면서도 아버지가 주시는 음악소리를 듣기 위해 한적한 장소를 찾으셨다. 배신의 밤에도 아버지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 인적이 끊긴 동산으로 가셨다.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곡조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적대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엿보았고, 그분과 맞섰고,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고, 결국에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나서야 그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젠 그 흐름이, 그 춤이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하늘 음악이 다시 울려 퍼진 것이다. 


3. ①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면서 동시에 하신 일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시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홀로 일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불러 함께 일하셨다. 그분은 멋진 프로그램을 찾으신 것 아니다. 조직이나 제도를 찾으신 것 아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람을 찾으셨다. 마태복음 4:18절 이하를 보니,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 순종했다.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 하면서, 그동안 귀하게 여긴 것들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표현하셨다. 낚시꾼이 아니다. 어부이다. 여러분, 어부와 낚시꾼은 다르다. 낚시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취미로 고기를 잡으러 가지만, 어부에게는 어부의 정신이 있다. 어부는 고기가 잡히는 시간이면 깊은 밤에도, 새벽에도 바다로 향한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도 날씨 탓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어부다. 

  ② 그런데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은 아직 천국 음악에 제대로 발을 맞추지 못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든 것이 끝났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하늘 음악을 모르는 자들은 예수님에게 그러했듯이 성령받은 제자들을 비아냥거렸다. 저것들 술 취했군~. 그러나 그들에 맞서 베드로는 설교를 했고 3천명이 그 춤에 동참했다. 

  그런데 제자들이 추던 춤은 논쟁을 유발시켰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자기들이 지시한 곡조에 맞춰 춤을 추지 않고 자기들 나름대로 춤을 춘다고 비판하였다. 더 나아가 반대자들은 예수님 제자들을 검열하고 투옥하여, 그 춤을 잠재우려 하였다.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히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귀에 생생하게 하늘 음악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4. 한 음악가가 아주 아름다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음악은 사람들을 사로 잡아서 황홀한 춤을 추게 만들었다. 그런데 음악을 전혀 듣지 못하는 귀먹은 사내가 지나가다가 사람들의 열정적인 춤을 부고서 그들이 미친 게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들은 바에 의해 그리스도인을 평가한다. 그러나 주님께 귀를 막는다면 어찌 하늘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우리들을 이상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들의 칭찬을 들으려 하지 말라! 하늘의 음악소리에 귀 기울여 춤추라! 그리스도와의 사랑에 빠진다면 지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사로 잡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는 신앙생활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편할 대로 예배 참석하고,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여유가 있으면, 심심하면, 문제가 있으면 그때서야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다. 어부는 고기잡이를 위해 생명을 건다. 그래야 어부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 천국 복음, 하늘 음악 틀어 주님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 바로 파수꾼인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2020년 하늘 음악 바로 듣고 바른 스텝을 밟는 한 해가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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