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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주현절(7-2) - " 고백 " / 황인갑 목사

관리자 2023-02-17 (금) 12:10 1년전 326  

본문) 16:13-20, 19:1-6, 벧전 2:4-10

 

기독교는 예수를 주로 고백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앙고백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어볼 때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신앙고백은 중요합니다. 이단들은 박태선, 이만희, 문선명, 안상홍, 장길자, 정명석을 주라고 고백합니다. 고백이란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백이라는 말과 함께 자백 결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도 모두가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고백 후에 주님이 그에게 천국열쇠를 주었고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단들을 보면 자기 동굴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바꾸지 않습니다.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에 빠진 사람은 다시 돌아오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단으로 빠져갑니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은 파멸됩니다. 그래서 잘못된 신앙고백은 이처럼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짝사랑으로 인해 그 고백을 받아주지 않으면 극단적인 행동을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처럼 반사회적이고 비합리적이면 안됩니다. 신앙에는 신비가 있지만 신비주의로 빠져들면 안됩니다. 객관성과 사회적인 상식을 반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인중에 잘못된 신앙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앞세웁니다. 자기 아들도 남편도 원치 않는데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겠다고 합니다. 꿈과 자기 확신을 이야기합니다.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잘못된 믿음위에 세워진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신앙, 가정, 사회에서 잘못된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그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고백은 수정되어야 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의 독선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히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큰 교회는 좋고 작은 교회는 나쁘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와 안좋은 교회를 크기와 규모와 예산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교회 이름도 제일, 중앙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교회를 세상의 기준에서 판단하고 목사를 규정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에 나도 모르게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 청빙에도 기준을 제시합니다. 나이와 학력과 성별을 제한합니다. 과거에 큰 교회 시무한 사람을 선호하고 외국에서 학위를 하거나 목회를 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우리가 무속이라고 모두 나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만 무속도 상당히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면을 볼 때 의아해합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비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고백에 기인한 것입니다. 인민사원 자살이나 구원파 오대양 집단자살은 모두가 잘못된 신앙고백 때문에 빚어진 비극입니다.

 

임보라목사는 성소수자를 위해 생을 바친 분입니다. 이것이 그의 고백이었습니다. 잘못된 성서해석 때문에 기초한 확신 때문에 우리 사회와 교회는 양극화되어 있습니다. 함부로 이단으로 규정하여 마녀사냥합니다. 약자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생을 포기합니다. 사회적, 교회적 타살입니다.

 

성경말씀은 모두 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고백의 말씀입니다. 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얻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고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표현한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는 산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었다.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신앙고백문이 있습니다. 이 고백문도 시대에 따라서 바꾸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 따라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성서번역도 현대에 많이 바꾸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모든 것을 다 세세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교단마다 고백문이 다 다릅니다. 각 교회마다 표어가 다릅니다. 사람마다 다 각각 주를 고백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그래서 남의 고백을 그대로 하기보다는 자기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성서에 기록된 말씀을 통한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도시교회와 농촌교회의 고백이 다를 것입니다. 부모가 신앙생활을 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고백이 아니라 교단의 고백이 아니라 나의 신앙고백이 형성될 때 그 신앙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리적인 신앙고백이나 남의 고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무너지게 됩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책 속에는 저자의 길만이 있기 때문에 그 책을 읽으면서 자기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책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길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고백도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고백이 아니라 내가 고뇌하고 찾아낸 고백이 진정한 신앙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생물학적인 부활은 현대인들에게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전 교리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기장의 신앙고백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1. 우리는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복음의 자유를 확인한다. 2. 우리는 전 세계 장로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건전한 교리를 수립함과 동시에 신앙 양심의 자유를 확보한다. 3. 우리는 노예적인 의존사상을 배격하고 자립자조의 정신을 함양한다. 4. 그러나 우리는 편협한 고립주의를 경계하고 전 세계 성도들과 협력, 병진하려는 세계교회 정신에 철저하려 한다.”

 

그래서 기장은 끊임없이 약자와 함께 해 왔고 신학과 신앙의 자유를 주장해 왔습니다. 그래서 강자가 교권으로 개인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노예적이고 편협하고 고립되는 것을 지양합니다.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결실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백은 새로워져야 하고 깊이가 있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독교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잘못되거나 위선된 고백은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위에 우리 교회가 바로서야 하겠습니다. 성서에 기초하고 정의, 평화, 인권을 강조하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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