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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주현절(3-2) - " 종교개혁500주년,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참 교회 " / 김주한 목사

관리자 2018-01-18 (목) 16:09 6년전 3027  

본문 - 【이사야 42:5~9, 요한복음 1:1~5】                            이 란은 여신도회 특별요청에 의한 것임!

 

김 주 한 목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장)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본 교단 102회 총회는 “종교개혁 500주년,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를 표어로 정하였습니다. 이번 총회 주제는 한 해 동안 전국의 모든 기장교회가 보다 새롭고 성숙한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기로 다짐하겠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오늘 특별히 여신도회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으로 세워가는 참 교회’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오늘 주어진 두 군데 성경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본문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를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5절은 마치 창세기 1장을 읽는 것처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야훼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정의, 평화, 생명사건’의 새로운 일을 만들어 가신다는 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6절) 이러한 새로운 생명사건을 창조하는 데 있어 그 동력은 5절 후반부에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신다”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말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마르’는 단순한 대화나 안부인사 차원의 말이 아니라 ‘위력적인 행위’를 가리킵니다. ‘아마르’는 인간의 말과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즉 사람의 이성이나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가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종을 부르시고’ 그 종으로 하여금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 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7절)주도록 섭리하십니다. 야훼 하나님의 정체성은 바로 ‘말씀’을 통해 새 일을 창조해 가시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1장에서 그 ‘말씀’(‘로고스’)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 ‘말씀’ 없이는 세상에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말씀’에게서 생명이 창조되었고, 세상의 어둠의 세력을 정복하고 승리하는 ‘빛’이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이 ‘말씀’은 악한 세력과 대적하고 정의와 평화, 생명을 창조해 내는 ‘발광체’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아마르’(말씀)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로고스’(말씀)는 의미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즉 ‘말씀’이 생명을 창조해내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일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이 교회에 위탁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그 말씀이 교회에 맡겨져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본문에 등장하는 종에게 의로운 일이 맡겨졌다면, 그리고 요한복음 1장에서 어둠을 밝히는 ‘빛’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라면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말씀’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세워나가고 성도의 본분과 사명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참 좋은 곳입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웠고, 예수님의 구속사건을 알았으며, 성령의 능력과 은밀한 작용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복음의 보물’을 맡기셔서 성도들이 이 세상 살아갈 동안 교회의 도움을 받아 ‘믿음의 목표’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를 도우시려고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도움을 받아 우리 모두가 구원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우리 모두에게 ‘진리의 기둥이요 터전’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이러저런 비난과 비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도, 교회 안의 성도들도 한국교회를 향한 나름대로 생각과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들을 듣고 있으면 마치 한국사회에서 교회가 무슨 애물단지처럼 취급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왜 교회가 이런 말을 듣고 있습니까? 교회가 본시 그런 곳이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겠는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교회를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말한 것과 같은 그런 곳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의 본질과 드러난 현상을 구분해 보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참된 교회란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는 교회’로 정의했습니다. 특히 존 칼빈은 ‘가르치는 교회’(teaching church)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가르침이란 성경 말씀의 교육이었습니다. 칼빈은 제네바교회에서 설교를 통해 부지런히 성도들을 교육하였습니다. 칼빈은 하나님 말씀, 즉 성경은 ‘말씀으로 된 실’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미로를 헤맬 때 자신의 허리에 묶여 있는 성경의 실을 감으면서 한 발자국씩 벗어나는 것이 생명의 지혜요 살 수 있는 길입니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말씀으로만’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며 그 말씀을 통해 생명의 지혜와 능력을 공급받는 것이야말로 성도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직무요 의무는 무엇이겠습니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 속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지난 세기 영적인 각성을 통해 교회 부흥이 일어났던 것도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부터였습니다. 미국 대각성운동을 이끌었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집회는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한국교회도 1907년 성령부흥대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부흥사경회가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혹과 근심과 불안, 시험을 물리치는 최상의 무기는 생명을 창조하시고 새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 가르침이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학교’를 떠나서 구원의 진리를 배울 수 없습니다. 교회라는 학교는 우리가 어릴 때에는 젖을 먹여 키우고, 성인이 되면 매를 들고 가르치고 키우는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성도의 어머니로서 교회’를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키우고 돌보았던 교회가 요즘 기력이 쇠한 것처럼 보인다 해서 자녀로서 성장한 우리가 교회를 향한 자녀된 도리와 본분을 다 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교회가 새로운 생명의 동력공장이 되게 하는 것도, 교회를 욕되게 하는 것도 모두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교회 역사에서 어둠을 밝히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온 몸으로 증언했던 한 여성 전도자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줍니다. 바로 문준경 전도사입니다. 문준경은 1891년 전남 신안의 조그마한 섬에서 태어나 17세 때 신랑 얼굴도 모른 채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니 결혼생활이 평탄할리 없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문준경은 목포로 이사하여 삯바느질을 하며 겨우 생활을 연명해 나갔습니다. 그 때에 예수를 믿으면 삶의 기쁨과 감사가 넘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결교의 유명한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님(당시 전도사)이 초가집 한간을 얻어 막 개척을 시작한 목포 북교동 성결교회를 찾았습니다. 이성봉 목사의 설교를 듣고 문준경은 새로운 세상을 체험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학습과 세례를 받고 개인전도와 축호전도에 열성을 보이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집사 직분을 받고는 하나님께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겠다고 다짐하고는 서울을 오가며 신학을 공부했고 마침내 전도사가 되어 신안군 각 섬들을 돌아다니며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이 섬 저 섬 나룻배를 타고 돌아다니며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녀는 섬 주민들의 부탁으로 짐꾼 노릇, 집배원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문 전도사님은 얼마나 섬 주위 돌짝밭을 걸어 다녔던지 일 년에 고무신을 아홉 켤레나 바꿔 신었다고 합니다. 문 전도사님의 기도는 정신병자, 중풍병자들도 고치고 해서 섬 여의사란 별명까지 들을 정도였습니다. 이 때 좌익계의 활동이 이 작은 섬까지 뻗쳤습니다. 문 전도사님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의해 핍박을 받다 총탄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59세였습니다. 전남 신안 증도에 가면 문 전도사님을 기리는 순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를 우리는 문 전도사님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어찌 문준경 전도사님뿐이겠습니까? 사실 한국교회만 보더라도 70% 이상이 여신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늘 이만큼 성장해 온 배경에는 여신도들의 기도와 헌신이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 초창기 시절 선교사들이 입국해서 전도를 해야겠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여간 애를 먹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들을 도와 전도활동을 했던 같이 했던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일명 전도부인(Bible Women)이었습니다. 전도부인들은 대개 남편에게 버림받고 시댁으로부터 차별 받으면서 제대로 대접받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초창기 전도부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사람들은 자기 이름도 없이 사람들로부터 ‘섭섭이, 금쥐, 정씨 부인’ 이렇게 불렸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예수님을 만나 한 인격체로 훌륭하게 사역하여 한국교회 초창기 여성 지도자들로 우뚝 섰습니다. 

 

21세기 오늘의 시대를 흔히 사람들은 ‘문화의 세기, 생명의 세기, 여성의 세기’라고 표현합니다. 미래학자로 명성을 날렸던 앨빈 토플러 박사는 일찍이 ‘21세기는 여성이 사회 중심에 서는 시대’라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요즘 지식정보화시대에 ‘창의력과 부드러운 공감능력, 섬세한 유연성’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중요한 사역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힘없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섬기며 그들에게 참된 위로자가 되어 주는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여성의 지도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교회는 조직이나 행정, 인사 등이 남성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참 교회’라는 말은 단순한 표어나 구호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 할 동안 계속해서 추구해 나가야 할 소중한 목표입니다. 교회에서 여성들이 제대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바꾸는 일도 참 교회를 세워가는 중요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회 구성이나 교회 주요 논의구조에 여성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일입니다. 교회개혁이란 거창한 구호나 목소리를 크게 내 지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 개혁이란 나 자신부터 출발합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요엘 2:13)는 저 요엘 선지자의 외침처럼 개혁의 대상을 밖에서 찾지 말고 나 자신,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찾고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참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입니다. 개혁하면 좀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개혁이란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나쁜 상황을 보다 더 좋게 바꾼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본질을 생각하고 근본을 생각하고 거기에다 내 기준을 맞추고 개선해 나가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듯이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길이 안전하고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자신 뿐만 아니라 교회를 새롭게 일구어가고 복음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일에 힘써 노력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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