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11:2~15, 사 44:1~8, 행 5:27~42
오늘은 주현절 넷째주일입니다. 주현절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깊어갈수록, 말씀을 통해서 예수의 그리스도요 메시아이심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근간이 되는 약속의 말씀을 탄탄하게 다집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를 통해서 펼치실 하나님의 계획과 세계를 알고, 믿고 따라가야 함을 다짐하고 결단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간으로 하여, ‘나는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구체적으로 그의 삶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중에도, 우리 나라는 분명 방역에 선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엄중한 때에, 신천지, 사랑제일교회, BTJ, IEM, TCS로 이어지는 집단 감염의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중에 “진정, 나는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어떠한 정체성과 책임감과 무게감을 갖고 살아가야할지 매우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혹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갖고 있으나 전혀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지는 않는지, 교회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만 머물면서 대(代) 사회적인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서 살지는 않는지 돌이켜 봐야 할 때입니다.
주현절 넷째 주일을 맞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상관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분명하게 알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증인으로써 묵묵하고, 바르게 감당해 나갔던 믿음의 선진들을 만납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믿음의 선진들을 소개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내게 주시는 위로요, 격려요, 친절한 길 안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재확인하고, 그분과 상관있는 그리스도인들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더 나아가서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길을 본받아 걸어가는 신앙의 여정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서에서 첫 번째 믿음의 선진이요, 증인을 만납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 예수를 기다리는 자의 자세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주시는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 예수를 기다린다는 것은 곧,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의 평생 소원이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바로 메시아를 만나는 곳입니다. 요한은 그 믿음과 소망을 붙들고 약속하신 이가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마냥 기다리기만 하지 않습니다.
1. 우리가 잘 알 듯이, 물세례를 통해서 회개 운동을 전개하면서 기다립니다. 지금의 상태로는 도저히 메시아를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씻어내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실질적으로 메시아 맞이 운동을 펼쳤던 셈입니다.
2. 예수님께서 요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짚어보면, 추가로 요한의 기다림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세파에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의 근간으로 삼는 이는 절대로 세상의 흐름에 좌우되지 않는 법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의지라기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붙드심 때문이요, 그것이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2) 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아닌, 참 선지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고,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면 전하고, 하나님께서 멈추라 하시면 멈추는 참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그 어떤 위협과 유혹에 현혹되거나 타협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신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을 거뜬히 이겨내신 것과 같습니다.
3) 요한은 메시아 예수가 오실 약속이 이뤄질 것을 예고하고 준비한 자입니다. 메시아 예수가 어떤 분인이 세상에 일러줄 수 있는 책임과 무게와 신뢰가 있는 자였습니다. 헤롯이 그토록 미워할 만큼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4) 요한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였습니다. 왜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아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 예수님이 오시는 것은 성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아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 오심을 준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인정받은 요한은 땅의 세상만 바라보지 않고, 하늘의 계획과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간 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소원 성취한 행복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도록 요한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부여된 자신의 사명대로 함께 메시아를 기다리자는 공동체 운동을 펼쳤습니다. 마침내 약속대로, 메시아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펼치셨습니다. 이전의 낡은 세상은 철저히 가렸고, 감췄고, 묶어서 제한했고, 가두었으며, 병들게 했고, 절망하며 좌절시켰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성취로 오신 메시아 예수님은 보게 하셨고, 듣게 하셨습니다. 걷게도 하셨고, 치유하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려내셨고 회복시키셨습니다. 무엇보다 영, 육, 혼의 갈급함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떤 말씀을 그토록 확실하게 붙들었을까요? 반대로,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과 섭리를 어떻게 예고하셨나요?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 그 근간이 되는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로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공동묘지 분위기 속에서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하는 오늘 구약의 말씀은 분명 위로와 격려와 희망의 말씀이 되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이 약속의 말씀은, 오늘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주시는 말씀이요, 그 안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생명안에 거하는 것임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어가야 할 행보의 지침과 울타리가 되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장 복되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십니다. 왜 이 소식이 기쁘고 복된 소식일까요?
오늘 여기에서 살아가는 현장이 하나님께서 전해주시는 복음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1. 두렵습니다. 날마다 걱정과 염려의 연속입니다. 안전한 내일이 보장된 삶이란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지, 공격을 당할지 모릅니다.
2. 목마릅니다. 갈증에 바닷물을 마시듯, 타는 목마름의 연속입니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3. 말랐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생명도 움트지 않습니다. 메마른 땅에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4. 영이 없습니다. 거룩한 영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저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삽니다. 갈등과 고통 뿐입니다.
5. 오늘만 삽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준비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손과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안타깝지만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 헤어나올 수 없는 난관 속에서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면, 그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당신의 백성들을 맨 처음에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에 구원하실 참 왕이시오, 신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독생자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죽음의 권세까지 이기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의 모든 두려움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이신 메시아 예수로 인생의 목마름을 해소해 주시고,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그분은 지금의 세대 뿐만 아니라, 후대까지 복을 부어 주십니다.
이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선명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겁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성취의 현장에서 살아간 증인된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로하여금, 신앙을 계승하는 자로 바로 서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님과 하루하루를 동고동락하며 살았던 베드로와 사도들에 관련한 말씀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증인되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에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그곳에서 제자들은 가장 함축된 신앙의 고백을 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무리 예수를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고 핍박한다고 할지라도, 제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섭리를 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요, 당신의 영과 복을 자손과 후손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을 회개 시키시고,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살리신 것이라고, 그래서 다시 한번 구원 받을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을 두려워하고, 목마르고, 메마른 땅에 살며 거룩한 영을 거부하고, 복음에 귀를 막은 자들이 제자들을 채찍질하고 능욕했습니다. 하지만 증인된 제자들은 이 모든 일을 감내합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갖은 협박에 굴하지 않고 가열차게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며, 제자로서의 사명과 삶을 충실하게 살아 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지금 여기에서 어떠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그에 따른 삶의 자세"를 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섭리를 믿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에 따라 메시아 예수의 오심, 그분의 죽으심, 부활하심, 승천하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이라는 공간에 세례 요한과 같은 메시아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과 삶으로 채워야 합니다. 동시에 메시아 예수와 함께 했으며, 그의 증인으로 살았던 제자들의 신앙과 삶을 제대로 바르게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숙제로 알고, 그 숙제를 성실하게 완수해 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