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겔37:15-23,엡2:11-22,마12:22-32
1) 여신도주일
오늘은 총회가 정한 여신도회주일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장로교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였을 때 조선야소교장로회 총회가 1월 셋째주일을 여신도회주일로 정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지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신도들은 교회의 궂은일들을 도맡아하며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여신도들의 헌신적인 섬김 위에 우리 교회가 이렇게 건재할 수 있었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섬겨주셔서 우리 교회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희생과 헌신의 섬김이 생명문화 곧 살림문화를 이루어가는 기본입니다. 예수님께서 앞서가셨고 우리 여신도들이 따라가며 만들어낸 이 살림문화를 더욱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에스겔서 37장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에스겔은 많은 환상을 보았고 그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특이한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에스겔은 37장에서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고나서 이스라엘의 남북이 통일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를 하도록 하나님께 지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막대기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유다 및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이라고 쓰고 다른 하나는 에브라임 막대기 곧 요셉 및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쓰고 그 막대기를 하나가 되게 연결하여 에스겔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퍼포먼스를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거든 분열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통일되어 하나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아어서 하나님은 포로된 이스라엘이 석방되어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과 그들이 이스라엘에서 하나가 되어 한 임금의 다스림을 받아 정결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민족인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어 서로 갈등하는 잘못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점을 이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처음부터 남북 간의 관계가 지역감정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그것이 결국은 많은 분쟁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국력이 소진되어 둘 다 망하게 된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게 이스라엘의 분단 역사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남북분단으로 많은 갈등이 야기되고 국력을 소진하고 있는 상항에서 또 동서갈등도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 강대국들은 우리가 통일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남북이 분열된 상태로 있어서 북은 중국이나 러시아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고 우리 남한은 미국이나 일본 등에게 많은 이권을 넘겨주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분단을 극복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른 나라들에게 눈치보고 끌려 다니며 많은 이권들을 양보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무엇보다도 민족을 하나로 만드는 화해와 통일을 반드시 이루어내도록 해야 합니다.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대로 “하나가 되게”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셨다
복음서 말씀 마태복음 12장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도중에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을 통해서 가난하고 병든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먹을 것을 나누어 주시고 병을 고치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는데 그 중에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장애 가운데 가장 큰 장애는 눈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거기서 더해 말도 할 수 없는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중(二重)의 장애를 고침 받았으니 그 사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하며 놀라워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예언자들에 의해 예언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이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보고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하며 예수님의 능력을 깎아내리며 가짜 뉴스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를 알아차리신 예수님께서 ‘귀신이 귀신을 쫓아낸다면 그 귀신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하시며 자신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한 것이라’고 하시며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하시며 자신의 사역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중복장애를 가진 사람을 고쳐주신 것을 보고도 왜곡하고 폄하하는 바리새인들의 비뚤어진 마음을 향해 일침을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비틀어져 있으면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은 것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못 보고 못 듣고 하는 장애인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축하해주었겠습니까?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왜곡된 시선으로 보고 비난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갈릴리 민중들과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바리새인들의 분리술책(分離術策)을 꿰뚫어 보시고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말로 엄하게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의 도래(到來)를 가로막는 바리새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좋게 보지 않고 계속해서 분열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교회가 사회통합을 이루는 쪽으로 가지 않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가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룬 평화
서신서 말씀 에베소서는 바울 사도가 감옥에서 쓴 편지로 2장에 있는 말씀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말해주는데 오늘 본문 말씀 11절 이하에서는 하나님의 구원 밖에 있었던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말씀해줍니다.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과거에는 하나님의 구원과는 관계없었던 이방(異邦) 외인(外人)들이어서 하나님 없이 살아 구원의 소망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흘리신 피로 하나님 앞에서 속죄함을 얻어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고, 유대인들과도 평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서로 원수 되었던 것들을 십자가로 소멸시키시고 중간에 가로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이제는 서로 한 성령 안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 모두 똑같은 하나님의 가족(=권속:眷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이 말씀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엄청난 차별이 존재했던 상황에서 이 말은 대단히 충격적인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돼지처럼 차별하고 무시했는데 모두 하나가 되었다는 말은 적어도 유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방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의 일부가 된다는 말은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이 모든 차별과 장벽이 무너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바로 죄로 막혔던 담을 허물어 하나님과 평화하게 하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차별과 혐오의 담장이 무너지고 평화를 이루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희생이 없이는 평화가 없다는 진리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보아야합니다.
5) 맺음
하나님의 뜻은 분열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세 본문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도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고, 교회도 하나 되어야 하고 우리 사회도 통합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는 차별 갈등을 만들어 내는 분열주의를 배격하고 예수님처럼 자신을 자기희생과 자기 비움의 자세로 하나를 만드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으는 교회가 됩시다. ‘분단을 넘어 통일로, 분열을 넘어 일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