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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주현절(2-1) - " 함께 지어져 가는 " / 여신도회주일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1-01-15 (금) 10:04 3년전 1217  

본문) 겔37:15-23, 시40:1-11, 엡2:11-22,  마12:22-32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분열된 두 나라의 이름을 각각 쓴 나무막대기 둘을 한 손에 쥐라고 합니다. ‘네 한 손에서 둘을 하나처럼 쥐면 …… 내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으며 두 나라로 나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에스겔은 나무 막대기 두 개를 가지고 하나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쓰고 다른 하나에는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써서 서로 맞대어 한 손에 쥡니다.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할 뿐입니다. 

 

  짝은 하나 이상의 것이 하나로 여겨질 때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서로 다른 막대기는 짝이 될 수는 있지만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못을 박고 본드로 붙여도 나무조각 둘이 하나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온전한 하나일 수는 없습니다. 두 막대기의 결합은 가능하지만 통합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네 손 안에서 하나가 되듯이 내 손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한 나라가 되며 한 임금이 다스리게 하겠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 

 

  이스라엘 민족은 영토를 잃고 이방민족에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가고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고향을 떠나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삽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 영토를 회복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말라비틀어진 뼈다귀들이 힘 있는 군대로 살아나는 것을 에스겔은 보았습니다. 죽음을 넘어 부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디에나 역사하시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희망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더욱 잘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심판의 문턱에서 주님을 만난다.> 

 

  나눠지고 갈라진 세상을 하나 되게 하시는 주께서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볼 수 없습니다. 말을 못했다는 것은 듣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말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이젠 자신 안에 갇혀있지 않아도 됩니다.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죽음과 같은 어둠으로부터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빛을 받아들이니 생명의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여 왜곡되고 소외되던 세계에서 받아들이고 내놓을 수 있는 호환의 세계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 있으면서 여전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 귀신들렸다고 돌려놓았던 사람은 빛의 세계로 나왔는데, 귀신들린 사람을 소외시키던 사람들은 오히려 빛을 보지 못합니다. 참된 빛이신 주의 은혜 안에서 다시 보니, 빛을 보면서 살았다고 믿는 그들은 오히려 어둠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본인들은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를 향한 비난을 서슴지 않습니다. 

 

  귀신이 나감으로써 어둠과 소외라는 담이 허물어집니다. ‘유다의 짝 이스라엘’이라고 쓴 나무와 ‘에브라임과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쓴 나무가 주의 손에서 하나가 되어 다시는 나뉘지 않고 한 나라가 되며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아갈 소망을 갖게 되었던 에스겔의 시대처럼 예수께서 소외된 사람과 소외시킨 사람을 한 빛으로 비추십니다. 귀신에게 심판은 사람에게 구원입니다. 스스로 마른 뼈임을 자각하는 이는 에스겔을 통해 선포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을 얻었던 것처럼 생명의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반면 예수에게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던 이들,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고 하나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상태는 골짜기에 가득 찬 마른 뼈입니다. 그 뼈들은 흩어져서 도저히 서로 만날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래서 나무입니다. 에스겔이 두 나무를 포개서 한 손에 쥐어도 그 손을 펼치면 둘로 나눠져버립니다. 

 

  예수께서는 사람과 사람사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을 제거하셨습니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으로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민족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선과 악을 나누던 율법의 법조문은 폐지되고 선과 악이 예수 안에서 새로운 하나로 화평을 나눕니다. 예수께서 이루신 화평은 우리끼리, 서로 이해되고 용인되는 사람끼리 만의 화평이 아닙니다. 볼 수 없는 이와 보지 않으려는 이, 듣지 못하는 이와 듣지 않으려는 이가 하나 되는 화평. 도저히 하나로 인식되지 못할 선과 악이 이루는 화평입니다. 그렇게 가로막는 것이 제거됨으로 주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에 대한 죄와 모독,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것은 용서함을 받지만, 성령을 모독하거나 거역하면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한다.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잘 모르겠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나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말은 용서받을 수 있다. 눈을 떠라. 어둠에 잡아 놓는 율법과 교리를 벗어버려라. 그러면 내가 성령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보인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혹시 나를 모독함으로 성령까지, 아버지까지 모독하려는 악함은 용서받지 못한다.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살아나서 군대가 될 수 있지만 주께서 불어 넣으시는 생명의 기운을 거부하는 것으로 성령을 모독하면 영원토록 마른 뼈로 남아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를 치료하셔서 보게하시고 듣고 말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이가 하나님의 성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시니 하나님의 빛이 어둠에 비추고 어둠은 사라졌습니다. 어둠이 사라진 사람은 하나님의 빛을 간직한 채 살아갑니다. 성전 안에 울려 퍼지는 주의 음성을 듣고 주의 말씀을 말합니다. 

 

  요즘 예배로 모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길어지게 하는 중심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교회냐?”라고 항의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은 우리의 짝입니다. 주님의 손에서 하나로 통합되어야만 하는 짝입니다. 그들의 선과 악을 따지기 전에 우리는 그들과 짝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한 번에 쥐어진 또 다른 나임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심판과 구원을 선언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너희는 어찌 되든 나는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주님의 몸인 성전으로 지어지겠다.’는 생각은 참된 빛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를 알지 못한 사람의 생각입니다. 보지 못하는 이가 보게 된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데리고 예수께로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예수께서 병자와 죄인을 찾아가시지만 때로는 병자와 죄인을 예수께로 데리고 가는 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러 갑시다.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하시는 예수를 만나러 갑시다. 혼자만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이, 듣지 못하는 이, 말하지 못하는 이의 손을 잡고 함께 갑시다. 악한 이 선한 이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구별하지 말고 함께 예수를 만나러 갑시다. 그래서 참 된 빛 안에서 진리의 말씀 안에서 서로가 연결되어 주 안에서 한 성전으로 세워집시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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