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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주현절(1-2) - " 새 하늘, 새 시대, 새 뜻 " / 이영재 목사

관리자 2021-01-09 (토) 17:26 3년전 1237  

본문) 출 17:1~7, 히 4:14~5:10, 마 4:1~11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는 늘 그렇듯이 매년 정초에 주현절로 새해를 출발합니다. 2020년 낡은 해를 뒤로 보내고 2021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교회가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 새롭게 되는 개혁의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1.    세상의 낡은 구체제를 벗어나려면

 

구약성경 토라(오경)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정립되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애굽 땅 파라오의 압제에서 신음하던 히브리 노예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애굽 땅을 탈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탈출은 하였으나 막상 갈 곳이 없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맨 먼저 마주친 현실은 광야였습니다. 광야에 들어서자 마실 물과 먹을 빵이 없었습니다. 노예생활을 벗어 던지기는 했으나 이스라엘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남부의 흑인노예들이 남북전쟁을 겪고 링컨의 해방령에 따라 노예신분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정작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또 다시 미국이라는 체제 속에서 노예상태의 삶으로 전락했습니다. 흑인들은 도시에서 슬럼가를 형성하고 공단지역에서 노동자로 전락하였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또 다시 세상의 노예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빵도 물도 없는 극한의 환경에 처했습니다. 그들은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며 대들었습니다(17:2). 이스라엘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애굽제국을 탈출하는 과정에서도 모든 것을 모세에게 의존하였으니 광야에서 당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불평의 화살을 모세에게 쏘아댔습니다. 모세는 "당신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대드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을 시험하십니까?"라고 백성을 책망하였습니다.

백성은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생명의 주 하나님을 굳게 믿지 못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므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없습니다. 창조주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 아뢰고 물을 달라고 호소하며 믿음으로 나아갔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바위를 갈라 물을 내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기도 전에 그들은 자기들이 의지하는 지도자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지도자를 믿을 것이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비롯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굳게 믿는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물이 없으면 물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됩니다. 출애굽기 16장에는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와 먹거리 빵 문제를 해결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창조주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새와 들판의 식물도 먹여 살리시는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으신 주의 백성들을 굶겨 죽이시지 않는다고 예수께서 가르쳤습니다. 문제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 우리 죄인들의 문제입니다. 자녀된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어려움을 내려놓고 구하여 아뢰면 문제를 다 해결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출애굽의 제국체제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일으키도록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파라오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모세를 선한 임금으로 세워서 새로운 왕조를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애굽체제를 내던져 버리고 노예살이 하던 히브리인들을 그 체제로부터 탈출하게 만들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던 구체제를 벗어나서 아무런 문명의 이기도 누리지 못하는 광야로 이끌어냈습니다. 왜 그렇게 고생스러운 길을 걷게 하셨을까요?

광야를 벗어나 조금만 더 가면 가나안 땅에 도성문명을 구가하는 도시국가들이 즐비하였습니다. 여리고 도성과 벧엘 도성과 세겜 도성 등 도시국가들을 차지하고 그곳을 지배하며 왕들을 임명하여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의 왕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 도시국가들을 차지하여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께서는 물도 양식도 없는 광야로 히브리 노예들을 인도하였습니다. 그 황량한 들판 시내산 자락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미국 아메리카 남부의 농장지역에서 노예로 팔려가 고통을 당했습니다. 링컨의 해방령으로 노예신분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토지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북부의 도시지역으로 이주하여 공업노동자가 되거나 사회의 천한 직책에 종사하여 또 다른 노예체제에 종속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구체제를 벗어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여 어떤 국가도 아직 점령하지 않은 황무지 광야로 인도하여 구체제를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나라라는 새로운 체제를 이 세상에 세울 훈련의 과정을 밟도록 이끌었습니다.

이 점을 아메리카 노예들에게 적용해 보면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흑인들이 농장을 벗어나 도시공업지대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상상해 봅시다. 도시와 국가의 문명이 주는 이기를 등지고 외딴 곳에서 교회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오늘날 아프리칸 아메리칸은 아미쉬 공동체처럼 거룩한 공동체로 더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 아닙니다. 당시의 백인교회의 지도자나 신학자 중에서 어느 누구도 이러한 성서적 비전을 흑인노예들에게 제시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구체제에서 혜택을 누리면서 문명생활을 즐기면서 흑인들을 착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초탈하지 않으면 구체제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초탈하려면 창조주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만나를 먹고 바위에서 나는 물을 먹으며 매일매일 연명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용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연약했습니다. 바위에서 물을 내는 이야기는 광야생활 초기에 보도되지만, 이와 동일한 이야기가 광야생활 40년 막바지인 민수기 20장에 다시 보도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말씀을 공부하고 많은 기적을 체험했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40년 후에도 여전히 물이 없음을 불평하면서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가 원망하며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막바지에는 모세조차도 화를 내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말씀을 거역하였습니다. 이로써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으며 그의 형 아론도 므리바 사건 직후에 곧바로 사망합니다. 광야시험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창조주를 굳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시험 앞에서 이스라엘은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리면 누구나 다 구체제가 주는 안정감에 기대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삶을 택하는 법이었습니다. 이 점은 일찍이 아브람의 조카 롯이 소돔 도성을 향해 이주했을 때 드러난 바 있습니다(창13장).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한 아담의 죄로 인하여 믿음의 완전한 경지로 회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죄로 인하여 누구나 세상의 유혹 앞에서 연약할 뿐입니다.

 

2.    연약한 이스라엘: 은혜로만!

 

하나님과 우리 죄인 사이에 넘지 못할 장애물은 죄의 장벽입니다. 사람은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등지고 살아가는 죄인의 문제를 해결해 보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고 죄인의 마음 판에 율법을 친히 새겨 주시기까지 했습니다(렘31:33). 그래도 사람은 육의 욕망과 탐욕과 폭력의 유혹을 떠나지 못하고 죄의 유혹에 연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마지막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 많은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는 누구나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히브리서 4장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도움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 할 수 없음이 명명백백히 드러났으니 이제는 완전히 거꾸러져서 오로지 죄가 없이 죄인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도움을 구하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자

 

복음서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을 기념합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시내산 위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는 십계명과 계약법으로 하나님나라의 헌법을 세우시고 이스라엘과 군신의 계약을 맺었습니다(출24:1-11). 하나님의 나라를 확대하여 세상의 모든 폭력적 군주들과 왕국과 제국을 극복하여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이 판을 치던 세상에 예수를 보내신 것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대안이었습니다. 죄 많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아들과 함께 몸소 고난을 당하시는 방안이 실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의 몸을 입고 함께 죄의 현장으로 비천하고 어두운 현장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몸소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죄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의 사건입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은 마태복음서에 어록의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서 5장에서 7장까지 어록집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서 산상설교 또는 산상보훈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시내산에서 계시해 주신 율법을 예수께서는 고스란히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알기 쉽게 풀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새계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산상설교집 가운데 서두를 장식하는 말씀을 우리는 팔복이라고 부릅니다. 여덟 가지 복된 말씀인데 자세히 보면 아홉 가지, 또는 열 가지로 분류해 낼 수 있습니다. 마치 십계명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팔복의 말씀은 세상의 속된 관념을 모조리 뒤엎고 있습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나라의 복이라는 진리를 거듭 천명하십니다. 참으로 복된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한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참으로 복되다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기존체제에 잘 적응하여 사는 권력층이 아닙니다. 모두가 기존의 구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체제를 향하여 나아가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꿈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인간 권력자들이 지배하는 국가체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공동체의 체제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서양교회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도 새로운 체제를 열망하는 꿈을 저버렸습니다. 교회가 구체제의 지배자와 결탁하고 교인들이 구체제의 귀족층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배계층은 언제나 소수의 집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늘의 교회는 소수의 종교로 약해지고 사회 저층의 민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지배자들과 함께 세상권력과 혜택을 넉넉히 향유하면서 약하고 천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집단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 지배자들과 야합하여 권력을 누리고 미국의 총애를 받으며 혜택을 누렸습니다. 반공주의를 앞세워 북한을 저주하고 남한 민주주의를 지배하다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남한의 민중을 학살하는 일에 동조하거나 묵인하였습니다. 이제는 급기야 한창 새로운 체제를 향하여 발전하고 있는 촛불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가로막는 수구세력과 일부교회가 연합하여 보수대연합의 권력투쟁에 앞장 서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정면으로 가로막고 방해하는 세력이 너무나 슬프게도 한국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반공주의, 근본주의, 은사주의, 신사도주의, 성서문자주의 따위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보수우익 집단들입니다. 이들을 참되 교회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제국의 권력에 동조하는 신전종교, 우상숭배 종교 집단들입니다.

 

맺는 말

 

새 날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합니다. 소수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나라의 참된 꿈을 다시 꾸도록 주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교회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께서 방침을 주셨습니다. 교회는 좌익의 진영에도 우익의 진영에도 가담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정치 운동은 인간의 지배를 위한 권력투쟁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이 정치와 경제와 언론을 장악하며 지배권력층을 형성합니다. 공산주의를 꿈꾸던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자와 농민과 무산 대중을 대변하는 정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엘리트들은 민중의 염원을 저버리고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지만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밀려서 실패했습니다. 급기야 소비에트가 해체되고 공산주의의 꿈은 꺾였습니다.

이제 전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고 갈 바를 몰라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분쟁과 학살과 차별과 빈곤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자연계는 파괴되고 지구촌은 대 재앙의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재앙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죄인들이 폭력을 휘두르며 악하게 살아온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새해에 첫 절기로 주현절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드높이 찬양합니다.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께서 독생자 아기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게 하신 것은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 누구도 이룰 수 없었던 꿈을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세상의 모든 폭력과 전쟁을 종식시키시고 완전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죄인의 탐욕과 권력욕에 희생되어 죽어가는 모든 생명을 보존하시고 살리시고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권력자들의 폭력체제 하에서 노예처럼 고생하며 차별당하고 착취당하는 모든 연약한 자들에게 사회정의를 확립시켜 주실 것입니다.

생명, 평화, 정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일을 이루신 구세주이십니다. 우리는 그를 믿고 따르는 백성이며 교회를 받들고 있습니다.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우리 존재를 통째로 낡은 구체제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모든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참 빛으로 살고 있는 믿는 신도의 공동체입니다. 온 세계를 주장하시는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복되게 살아가는 은혜의 공동체입니다.

이 큰 구원 사건을 기념하여 교회는 매년 정초에 주현절을 지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번 한 해도 예수님을 잘 믿고 사랑하라는 그의 말씀을 잘 준행하여 복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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