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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1-1) - " 시험 받으신 하나님 " / 김진수 목사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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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주현절(1-1) - " 시험 받으신 하나님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1-01-08 (금) 11:11 3년전 1181  

본문) 출 17:1-7, 히 4:14-5:10, 마 4:1-11 


아프리카의 북동부에 있는 에티오피아 하마르족은 지금도 성인식을 성대하게 치른다고 합니다. 남성은 성인식을 통과해야만 어른으로 인정받고 가정을 꾸릴 자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인식을 통해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표로 이름을 갖게 되고 결혼할 수 있는 지격을 얻게 됩니다. 하마르족은 성인식에서 ‘채찍의식’과 ‘소등타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채찍의식’은 성인식을 하는 소년의 친척 여성들이 회초리에 맞으며 성인식의 성공을 기원하는 절차입니다. 성인식을 통과했으나 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회초리를 드는데 이 의식에서는 때리고 맞는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때리는 남자는 힘껏 회초리를 휘두를수록 상대 여성을 존경하는 걸로 여기며 회초리를 맞는 여성은 큰 고통을 인내할수록 더 많은 축복을 기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 아프게 맞을수록 소년이 남자로서 성숙하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마르족 여인들의 등에는 갈라지고 찢긴 상처들이 가득합니다. 한 남자가 그 부족사회의 장성한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회초리로 상징되는 고통과 아픔을 함께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상징입니까? 이제 성인식을 하는 남자는 소의 등을 뛰어넘는 ‘소등타기’를 통해 자신의 힘을 증명해야 합니다. ‘소등타기’는 며칠 전부터 준비합니다. 들판에서 열한 마리의 소들을 데려와 줄을 세우고 성인식 소년을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맨몸으로 그 열한 마리의 소등을 밟고 넘어가는 것을 3번 반복해야 합니다. 단 한번이라도 넘어지거나 땅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온 마을의 기업인 소를 키우고 모든 가축을 다스릴 힘과 능력을 테스트해서 합격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인 하마르족의 성인식은 한 사람을 성인으로 키워내는 마을 전체에 대한 시험(test), 그리고 한 개인에 대한 시험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2021년 주현절입니다. 주현절 첫 주일에 하나님은 코로나 재난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잘 감당하라는 본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에게 시험받으신 하나님(출17: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주셔서 광야 40년 동안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지를 시험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신8:2)” 그런데 이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만 시험받은 것 아닙니다. 오늘 구약본문 출17:1-7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도 그의 백성들에게 시험을 당하셨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걸핏하면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10가지 재앙과 죽음에서 건지신 일, 홍해를 가르신 일과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일을 보십시오! 마라에서 쓴 물을 달게 하여 마시게 하시고, 먹을 것 없는 신광야에서는 하늘의 만나를 내리셔서 먹게 하시고, 메추라기로 배불리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조그만 문제만 생기면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했고 그의 종 모세를 대적했고 지금은 물이 없다며 모세에게 돌 던지려 하고(4절)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계신가 하였음이더라”(7절) 지금 당장 물을 내주시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계산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가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과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과, 어려운 일 당할 때마다 도우시고 풍성하게 하심을 다 잊고, 틈만 나면. 불평, 원망, 불신, 야유를 퍼붓습니다. 그리고 뭐라구요? 우리가 원하는 것 주면 하나님이 있는 거고 안주면 없는 거라고? 해도해도 정도껏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당장에 진노의 불에 태운다 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강해설교자 아더 핑크는 이 구절을 강해하면서 “여호와의 인내를 시험”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진면목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이 완악하고 오만한 시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시거나 분노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모세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호렙산 반석 앞에 서서 지팡이로 그 반석을 치게 하셔서 친히 그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해주셨습니다.(5-6절) 참으로 얻어맞고 저주를 받아야 할 대상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때리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대신 호렙산 반석을 치게 하셨고 시험하는 그의 백성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줄 샘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스라엘뿐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가 받을 저주와 징벌을 호렙산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고전10:4)에게 내려치심으로 그 반석에서 흘러나온 생명의 물과 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한 선배목사님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태도를 “뻔뻔함”으로 표현했습니다. “떳떳하게” 나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갓난아이는 엄마 앞에 뻔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똥, 오줌을 싸고, 한밤에 곤한 엄마를 깨우도록 울어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한없는 은혜, 상상할 수 없는 용서를 절절하게 받아야 철 들도록 자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하나님의 용서요 사랑입니다. 이 충격을 받아야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길 힘을 얻지 않겠습니까? 역설적이지만 인간의 죄악과 불순종과 거듭된 악행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나타내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죄가 클수록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게 되고, 인간의 절망이 클수록 하나님의 권능이 더 큰 빛을 발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누리십시오! 그 능력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시험을 순종하신 예수님(히4:14-5:10)


마귀의 유혹(temptation)은 이겨야 하고 이길 수 없으면 피해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test)은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라고 주십니다. 시험은 회피해도 안 되고 시험을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도 안 됩니다. 그 시험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인 히4:14-5:10은 예수님도 시험 당하셨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주님도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온전히 감당하심으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낳으신 아들이시나(5:5)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우리와 같이 시험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거룩한 제사장이 되셔서(5:6) 자신의 죄를 위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의 혈통을 가진 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형편을 알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실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담당해야 할 모든 의무를 온전히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고난과 시험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동참하시고 대신하는 대제사장이 되셨을 뿐 아니라 친히 시험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또한 인간의 몸으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시험과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시험과 고난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고 거룩하게 하며 우리의 교만을 꺾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합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꿈, 많은 사람을 살려내고 높임 받고 절 받는 꿈을 가슴에 품었습니다.(창37:7,9) 그러나 그 꿈을 가슴에 품자 고난이 밀려왔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시위대장의 감옥으로 들어가는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고난과 시련이 요셉을 바로 왕 앞에 서게 하였고 칠년의 풍년 다음에 찾아 올 칠년의 흉년을 예고함으로 애굽을 국가적인 재난에서 건져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고난이 하나님의 꿈을 성취하게 했고 그의 가문을 애굽으로 불러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의 가는 길을 돌이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게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의 욕망 대신 하나님의 거룩한 길을 가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마4:1-11)


복음서 마4:1-11은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신 후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말씀입니다.(1절)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를 먼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성숙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시험(Temptation)은 우리를 넘어뜨리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도록 우리를 미혹하는 시험입니다.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는 먼저 금식하신 예수님께 ‘먹을 것’으로 유혹했습니다. ‘떡’은 금식한 사람에게 얼마나 시급하게 필요한 것입니까? 사람들은 ‘가장 본질적인 것’과 ‘가장 시급한 것’ 사이에서 주저하지 않고 당장 시급한 것을 먼저 선택합니다. ‘먹고’, ‘자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매우 시급한 일들입니다.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목전에 당장 필요한 일들에 몰두하다보면 어느새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에 매이게 되고 그 일에 빠져 정작 우리의 삶에 가장 본질적인 일들은 항상 뒤로 밀리거나 외면당하게 됩니다. 결혼을 앞두어보세요! 얼마나 급하게 서둘러야 할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지 정말 기도할 시간, 말씀 볼 시간 없습니다. 어느새 예배다운 예배 드려보지 못하고 몇 년이 금방 흘러갑니다. 우리는 시급한 일에 몰두하기 전 먼저 본질적인 일에 우선해야 합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선언하며 새 해를 시작해야 합니다.


마귀는 다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신적 권능을 지니신 예수님께 그 능력을 겸손과 섬김으로 사용하는 대신 자신을 과시하고 나타내는데 사용하라고 유혹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성전 높은 곳, 그 꼭대기에 예수를 세우고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는 능력을 보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교회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하나님의 큰 능력을 과시하는 일에 몰두하지는 않았는지를 뒤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큰 교회, 기적 같은 성장을 이룬 능력을 과시하다 정작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고 낮아져 세상을 섬기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요? 교인 수의 감소와 교회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를 상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다시 처음의 자리, 교회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모든 영광, 자랑, 과시, 다 던져버리고 낮아지는 교회 겸손히 섬기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함으로 새로운 한해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귀는 마지막으로 고난의 길, 좁은 길, 십자가의 길 대신 마귀에게 한 번 절하고 십자가 없는 승리, 고난 없는 영광을 얻으라고 시험했습니다. 눈감고 딱 한 번만 마귀에게 절하면 굳이 십자가의 고난 없이 눈에 보이는 천하만국을 다 넘겨주겠다는 유혹에 안 넘어 갈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쉬운 길, 편한 길 걷고 싶어 합니다. 고난 없는 길, 희생 없는 대박의 길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좁은 길, 좁은 문 그 끝에 자리합니다. 십자가의 죽음 그 너머에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편안한 길, 쉽고, 어려운 길을 갑시다. 나의 희생이 따르고, 땀 흘리고 해산의 수고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갈 수 없는 힘든 길을 기쁨으로 걸어갑시다.


시험을 넘어서 오는 찬송과 환희


출애굽기 17장 5-6절은 장로들과 함께 호렙 산의 반석 위에 선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로 그 반석을 내리치면 물이 흘러나오고, 백성들이 마실 것이라는 미래사건을 예시할 뿐,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편 105편 41절은 출애굽기본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말씀합니다.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축들이 풍족하게 마시고도 남은 물이 강줄기를 이루듯이 흘러넘쳤다고 증언합니다. 시험을 믿음으로 이기고 극복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물 없는 광야에서 마른 땅에 강같이 흐르는 풍성한 생수를 솟아나게 하십니다. 겨우 목을 축일만큼이 아닙니다. 강처럼 흘러 마시고 씻고 그 속에 들어가 잠길 만큼 풍성케 하십니다. 마시고 또 마셔도 부족함 없는 물을 주십니다. 잠시 먹고 그치는 물이 아니라 광야 40년 동안 마르지 않고 흐르는 물을 주신 것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오늘은 새해 두 번 째 주일이며 주현절 첫 주일입니다. 우리교회는 오늘 청지기 임명주일로 지킵니다. 성도님들 각자에게 우리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 맡겨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명 잘 감당하시기 위해서는 시험을 이겨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에 깊이 새기셔야 합니다. 사람을 통해 오는 시험은 끝까지 사랑을 나타냄으로, 하나님이 주신 시험은 회피하지 말고 끝까지 순종함으로, 무엇보다 마귀가 주는 시험은 이기고 승리함으로 복되고 아름다운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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