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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주현절(5-1) - " 희년 사역과 해외 선교 " / 최부옥 목사

관리자 2018-02-02 (금) 12:32 6년전 3025  

주제) 희년 사역과 해외 선교 

구약/사61:1-9, 서신/행4:5-12, 복음/눅4:16-30

 

오늘 2월 첫 주일은 교단이 제정한 해외선교주일이다. 우리 교단도 해외에 제법 많은 선교 동역자들을 파송하고 있다. 그 중, 우리 교회도 현재 몇 분의 선교 동역자를 돕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하여 계속 기도해야 한다. 물질만 가면 반쪽만 간 것이다. 기도로도 협력해야 한다. 

 

본래 해외(海外)선교란 것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宣敎)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온 세상 만민의 주인이시고, 세계 만민은 모두 그의 사랑과 구원의 대상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실 때에도, 그 축복의 대상은, 그의 핏줄 후손인 이스라엘만이 아니었다. 온 세상 만민들이 그 대상이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편협하고 잘못된 율법주의에 빠지면서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담을 쌓았고, 배타주의에 빠져서 그렇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은 언제나 범(凡) 세계인들이었다. 

 

예수의 오심은 하나님의 선교의 본래적 성격의 회복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예수님의 선교를 보라! 복음서에서 선교 및 전도 활동하신 예수님은 유대인이나 주변의 이방인들이나, 아무런 차별 없이, 한없이 자유롭게 모든 사람들을 구원의 대상들로 상대하셨다. 그래서 타락한 유대교가 쳐놓은 온갖 차별의 그물망(網)을 예수께서는 거침없이 찢어 버리셨다. 종국에는 그의 십자가(十字架)의 피로 그 모든 선교의 장벽(障壁)들을 찢으며 무너뜨리셨다. 그렇게 열리게 된 곳에는 예수의 생명과 구원의 복음과 축복이 채워졌다. 우리도 바로 그 은혜를 입어서,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은혜로 구원을 누리고 산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이런 하나님의 선교의 현상에 관하여 두 가지로 정리해 준다. 

 

1) 이 모든 하나님의 선교는 성령(聖靈)이 주도하심을 전한다(사61:1,행4:8,눅4:18).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눅4:18,사61:1)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행4:8)

 

주도하시되, 당신의 일꾼들을 기름 부어 세우서 당신의 선교를 하게 하신다. 사61:1-‘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사61:1-) 이는, 직임(職任)을 부여하시고, 임명을 하신 것을 말한다.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표현은 ‘안수 받았다’,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등으로 임직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잖은가?

 

예수님도 성령 받으신 분이다. 당신이 성령을 받으신 일을 희년의 복음을 전할 메시아로 임직(任職)된 것으로 공인(公認)하셨다(4:18절). 제자들이 오순절에 집단으로 성령 받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선교를 위하여, 그리고 교회를 세우는 일꾼들로 집단적(集團的)인 세움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비극(悲劇)은 성령이해를 은사중심과 신비체험 중심으로만 이해하고, 그것으로 선한 일에 헌신하기보다는, 교만(驕慢)해지고 기복주의적인 탐욕의 사람이 되거나 신비주의 등에 빠져 사교 집단에 빠져든다는 데에 있다. 진정, 정신 차려야 한다. 성령은 선교(宣敎)하는 영이며, 낮은 곳을 향하여 일하게 하시는 은혜의 영이시다. 

 

2) 성령에 의한 이 선교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성령 사역의 특징은 희년(禧年)의 복음으로 나타난다는 데에 있다. 진정, 받게 되면 기쁘고 감격스러운 복음으로 나타난다. 왜 기쁘고 감격스러운가? 모든 빼앗긴 것들, 잃어버린 것들, 되찾아야만 할 것들, 수치 당하고 살았던 것들을, 다 되찾고 회복하게 되며, 그것도 받되, 율법 상의 배상논리에 따라서(사40:2), 빼앗긴 것의 배(倍)의 보상(報償)으로 받게 되는 것이기에, 희년의 복음이 되는 것이다. 빼앗긴 것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받는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먼저, 이사야 예언자의 선포를 보자. 당시의 예루살렘의 사정은, 출(出) 바벨론으로 인하여 본국에로의 환국(還國)이 되었음에도, 주민들은 생활상은 매우 곤경에 처했고 슬픔에서 벗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진정 근원에서 새로워질 위로와 대안이 요긴했다. 그 때, 예언자의 선포가 주어졌다. 머잖아, 주의 영을 받아 희년의 사역자로 임명(任命)받은 여호와의 종(메시아)이 나타나서, 온 이스라엘에게 희년의 복이 베풀어질 것이라는 선포였다. 

 

그 희년의 복의 물줄기가 어디로 흐르게 되는가?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포로(捕虜)된 자/ 갇힌 자/ 모든 슬픈 자와 같이, 도움과 위로와 채움이 절대 필요한 사람들을 향한다. 생각해보라. 고생한 사람이 복과 은혜를 새롭게 받게 되면, 그 동안, 잘 지내고 살던 유복(裕福)한 사람들보다도 그 체감의 느낌과 온도는 몇 배 이상의 기쁨과 환희로 나타나지 않겠는가?

 

그 보상(報償)도 두 가지 차원으로 해 주시는 것이었다(4-7절). 

1)경제적 보상이다. 손실된 것들을 거뜬하게 만회하게 해주신다. 그것도 갑절로 말이다! 

2)한없이 실추된 명예(名譽)까지도 보상해 주신다. 그 내용을 보면, 엄청나다. 보라. 그 동안 유대인은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외국인을 섬겨왔다. 그들 자존심은 정말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희년의 은총이 임하게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반전(反轉)된다. 외국인들이 유대인을 위하여, 일상의 일을 도맡아하게 된다. 양 떼를 치는 일 / 농사와 포도원지기 하는 일 등을 맡는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무엇을 하게 되나? 그들을 위한 제사장(祭司長)이 되고, 하나님과의 중재자(仲裁者) 역할하게 되며, 민족들이 제공하는 재물(財物)을 먹으며, 그들로부터 영광(榮光)을 누리는 무리가 되어 살게 된다. 실로, 그 동안의 수치와 치욕(恥辱)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그 배상(賠償)을 갑절(풍성한)로 받고 있는 모습이다! 이 일을 통하여, 그들은 이방 세계가 인정하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손’이다는 영적 지위를 누리게 된다. 하나님 자신의 언약이 파괴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확인해 주신 것이다(54:10, 55:3참조). 

 

사실 12지파들 중에서, 오직 레위지파가 제사장과 중재자 역할만을 맡았다. 일체의 경제 활동을 시행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활 대책은 남은 11지파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통하여 지원했다. 그런데, 오늘의 구약의 예언의 내용은 그런 유대인 내부적인 역할 분담의 차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 이것은 세계 질서(秩序)의 재편(再編)을 예고한 내용이다. 새로운 영적 세계 지도가 그려짐을 알리는 말씀이었다. 세계의 영적인 문제 담당은 새 이스라엘이, 그러나, 그들의 물질적 문제 해결은 남은 세계 모든 백성들이 맡도록 하나님의 세계인의 역할 재배치가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면, 그런 새 영적 지도를 그려낼 주인공인 ‘여호와의 종’은 도대체 누구인가? 바로, 나사렛 예수이시다! 그 확인을 예언 성취의 당사자이신 예수 자신이 고향 나사렛회당에 가셔서 친히 하셨다. 당신 자신이 사61:1-9을 낭독하시고, 그 성령이 당신에게 임하셨다면서, 당신이 이 세상에서 행하실 일들이 곧 희년 사역임을 온 세상에 공언(公言)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나사렛 선언(宣言)’은 메시아로서의 취임사(就任辭)였고, 나사렛 회당은 그 취임식의 현장이었다. 그 선언을 끝으로, 예수님의 희년 사역은 본격화(本格化)되기 시작했다. 그 사역이 세계에서 복음(福音)으로서 공인을 받게 된 까닭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1) 낮은 자 중심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모든 체제나 종교가 높은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 중심의 소수 종교이었다. 그러기에, 당시의 모든 종교가 결코 구원의 종교도 못되고, 세계화도 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의 희년의 복음은 모든 빼앗긴 이들(인권, 권리, 가치, 존재, 권리 등)에게 갑절의 배상을 되찾게 해주는 놀라운 역할을 맡게 해 주었다. 그러니, 어찌 이 소식이 모든 이들에게 반갑고 기쁜 소식이 되지 않을 수 있나? 

 

2) 이 희년 운동은 유대를 훌쩍 넘어 온 세상 만민을 향한 것이라는 점에서 복음이 되었다! 예수님의 유언인 행1:8은 희년 복음의 정신을 다 담고 있는 대(大) 선언이었다. 물론, 유대인들이 일차적으로 그 희년의 복음의 수혜자였다. 하지만, 그들에 국한된 복음은 결코 아니다. 동족들이 받아들이면 좋지만, 거부하면 그 준비된 혜택은 여지없이 주변의 이방인들에게로 간다. 그래서 소위 세계 선교-해외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오늘 복음서는 유대인들이 예수의 이 희년 복음을 단호히 거부했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에게서 분출된 세계 만민 중심의 희년의 복음을 지역연고나, 폐쇄적 마음이나, 질투나 불신(不信)의 마음을 가진 고향 유대인들이 결코, 수용하지 못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 그 흘러나온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누구에게로 가는가? 흐르게 된 물을 보라! 그 물은 고인 곳(낮은 곳/필요한 곳)을 찾아간다.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을 넘어, 유다와 사마리아요, 땅 끝이었다. 예수께서 구약의 엘리야 시대의 이방인 시돈의 사렙다 과부의 사례와, 엘리사 시대의 시리아 문둥병 장군인 나아만의 구원 사례를 거론하신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당신에게서 시작된 희년의 축복은 받아들이는 사람 중심으로 흘러들어가 그들을 살릴 것임을 공포하신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세계선교의 기본 토대가 된 것이다. 

 

사도행전 이야기는 예수의 희년의 복음의 운동이 예수의 부활과 성령강림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했음 전한다. 그 새로운 주역은 바로 사도들이었다. 그들을 추동하는 힘과 능력과 지혜는 모두 성령이었다. 예수와 함께 하셨던 바로 그 성령이 지금, 그의 제자들에게 집단으로 임하셔서, 힘이 배가되었다. 온 예루살렘을 뒤 짚어 놓을 만큼의 핵 폭풍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어제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서 발생했던 나면서 앉은뱅이였던 불쌍한 자에게 임하셨던 희년의 생생한 능력은 초대형 태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제도적 제재가 힘을 못 쓸 만큼, 위력적인 모습이다. 희년 복음의 제공자이신 예수는 이미 세상 모든 이들의 메시아로 등장하고 계셨던 것이다. 용서하고, 회개하며, 서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하는 치유의 영으로 온 예루살렘을 하나로 묶어가고 있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별 장벽도 이미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니 보라, 이사야 예언대로, 예수와 그의 사도들은 세계 만민의 영원(永遠)한 중재자요 제사장이 됐다! 

 

우리는 그들의 통하여, 구원의 세계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맛보며 산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다. 우리 민족들이 세계 200여 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는 데, 특이한 것은, 가는 곳마다 교회들을 세운다는 점이다. 또 세계 최대 선교사 파견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영광이 우리 민족에게 이미 이 마지막 시대에 임한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무나, 그렇게 교회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외(海外)가면, 불신자들도 교회에 나가는 형국이 됐다. 우리를 마지막 시대에 ‘제사장 국가’로 세우신 것으로 본다. 잘 살려가자.  

 

사랑하는 여러분, 희년의 복음이 우리를 이렇게 살렸다. 우리도 이제 그 희년의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이 희년의 복음을 풍성히 누리며 또 전하는 자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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