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 18:13~17, 고전 12:1-11, 막 3:7-19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의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우시고, 권능을 나눠 주신 이야기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많은 이적과 기사로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치유한 이후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오랜 시간 귀신과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던 백성들을 해방시킨 거룩한 사역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백성들은 예수님께 주목했고, 예수님이 가는 곳맏아 구름떼처럼 몰려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작은 배를 미리 준비하여 여차하면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자신을 드러내고, 인기를 얻으려는 행동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거룩한 과정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또한 제자들을 부르신 대목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예수님과 같은 놀라운 능력과 권능을 나눠 주셨음을 증거합니다. 자신이 직접 택하고 부르신 12명에게 자신과 같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를 통해 그들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거룩한 도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사실 이적과 기적이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인기를 얻는 것은 그 희소성 때문입니다.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더 많은 주목과 인기를 얻는다는 것이죠. 특별히 그것이 귀신을 쫓아낸다던가, 병을 고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택하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복음도 전하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권능은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권능을 제자들과 나누고자 했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인간들과는 완전 다른 것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인간들은 자신의 출세와 영화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부각시키고, 선전하는데 집중하지만, 예수님은 오직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확장하는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믿음의 본을 보여주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오늘 구약의 증언에서는 모세의 리더쉽을 통해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의 말씀은 모세가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중간 지도자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나눠주는 대목입니다. 사실 권한이라는 것은 집중되면 집중될수록 더 절대적인 힘을 갖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한 논란도 이런 측면입니다.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쏠려 있으니 부정부패의 가능성은 커지고, 절대 권력에 대한 견제는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통령에게 과도록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대통령이 잘못된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바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하자는 의견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모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들의 재판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증거합니다. 출애굽 직후의 이스라엘에 공동체에는 제대로 된 제도도 없었고, 제대로 된 체계의 정비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더군다나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하여 이동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일종의 과도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권력은 모세에게 집중되었고, 모든 판단과 결정도 모세에게만 의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모세 외에는 딱히 사람들이 인정하고 수긍할만한 존재가 없었던 것도 현실이었습니다. 이 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모세에게 권력을 나누라 제안했던 것이 바로 천부장 제도입니다. 백성들 중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등의 중간 지도자를 세워 그들에게 모세의 권한을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사실 권한을 나눈다는 것은 모험입니다. 더더군다나 지금의 이스라엘과 같은 과도기, 혼란의 상황에서 권력을 분산을 큰 위험을 야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모세는 자신의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장인 이드로의 조언에 따라 중간 지도자를 세우기도 결정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주목할 것은 그 중간 지도자를 세우는 기준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기준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 표현하며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 이는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할 사람, 하나님께 거룩하게 쓰임 받는 자의 기본 조건을 보여주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능력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임을 믿고 고백하는 자요,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동행하심을 느끼고,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시선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죠.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 자세를 갖습니다. 동시에 진실하다는 것은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시비비를 판단해야 하는 중간 지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자세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 깨끗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진실의 가치 위에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은 바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이익을 미워한다는 것은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만 충실할 뿐 그것은 사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그 어떤 편견과 사익에도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자를 택하여 중간 지도자로 세웠고, 택함 받은 자들은 그 뜻에 맞게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사람으로서 바르게 행동하고, 결정함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모세는 그들과 더불어 더욱 하나님께 집중하며 출애굽의 대업을 성취해 나갔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모세에게 집중됐던 권력의 분산은 이스라엘의 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가 되고, 성장과 발전의 계기가 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거룩한 신앙의 원칙과 전통은 오늘 서신서의 말씀을 통해 초대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과 있음을 발견합니다. 오늘 서신서의 이야기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울의 증거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모든 성도는 구원 받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예수를 주라 고백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우리들의 판단과 결단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의 개입과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가 주라 고백하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성령께서 우리를 한 믿음의 길로 인도하셨을 뿐 아니라 각양각색의 은사를 허락하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의 요구나 판단, 결정에 따라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우리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로 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양한 은사를 통해 성도는 교회 안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오늘 바울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교회 공동체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사용하는 거룩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그 은사를 허락하신 주체가 성령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성령은 하나님 뜻 안에서 각기 다른 은사와 다른 역할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는 그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하나님의 복음을 세상을 드러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 안에서 움직이고 역사하는 성령께서 교회 공동체의 성장을 주관하고, 동행하셨으니, 교회 공동체의 일원인 성도는 그 뜻대로 주신 은사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독보적인 것, 나 혼자만의 것이 더 대접받고, 더 큰 가치를 얻는 것이 현실입니다. 독점적인 기술이나 지식,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 큰 돈을 벌고, 큰 권력을 얻고,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 거룩한 능력을, 그 거룩한 힘을 나누라 말씀합니다. 나누면 커지고, 나누면 행복하고, 나누면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독점과 사유화에 집중하는 세상의 원리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만들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내려 놓을 때 더 많은 것으로 채워지고, 가진 것을 나눌 때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누리고, 치유를 받으며, 각기 다른 자리, 다른 역할, 다른 능력을 행할 때 교회는 더욱 풍성해 진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은 가르쳐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몸 된 공동체인 교회는 따로 또 같이, 같이 또 따로 움직이는 생물입니다. 각 자의 자리에서 각 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건강한 교회요, 하나님 뜻에 합당한 공동체입니다. 모두가 드러나는 일만 할 수 없고, 모두가 주목받는 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먹는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치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세 본문을 통해 주시는 거룩한 통찰은 “나눔을 통한 강화”입니다. 모세가 그 리더쉽을 나눔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체계화하고, 조직화했듯이, 예수께서 그 권능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심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확장되고, 전파되었듯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각기 다른 은사로 교회를 섬김으로 교회 공동체가 더 강건하고, 건강해 졌듯이, 하나님 몸 된 교회도 이 거룩한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권력을 나누고, 권한을 나누고, 능력을 나누는 것이 우리에게 불이익이 되고, 뺄셈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은 나눔이 뺄셈이 아닌 덧셈이 된다는 놀라운 신비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때문에 한 하나님을 믿고, 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가 각기 다른 자리, 다른 역할을 통해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강화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성도 된 우리들의 본분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거룩한 하나님의 섭리 늘 가슴에 품고, 따로 또 같이, 뺄셈이 덧셈이 되는 놀라운 신비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여 가는 거룩한 주의 자녀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