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암 9:7-15, 롬 8:12-17, 막 3:20-35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합니다. 우리 모두 이 질병이 하루 속히 극복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고 회복하도록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선택된 복음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막 3:35)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참된 가족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이 본문의 맥락은 예수의 제자단과 적대자들 사이의 논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서 본문은 예수께서 지상에서 전개하신 사역의 주된 내용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것은 즉 병 고침 사역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병들면 곧 귀신 들린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샤머니즘 전통에서도 병든 이들을 고치기 위한 ‘굿’이 있습니다. 예수의 적대자들은 예수가 병든 자들을 고치고 낫게 하는 행위들이 사탄과 결탁한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치병 사역은 일종의 주술적인 행위이고, 예수는 이러한 마술적인 행동을 통해 군중들을 현혹시킨다고 비난합니다. 지금 예수의 카리스마적인 능력이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족들이 나서서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막아보려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까지 동원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오해와 비난의 대상이 되셨던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적대자들을 향해 적극 반박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인다.”(막 3:29). 예수님은 자신의 귀신축출 사역은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미리 보여준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그것은 해방운동이요 성령 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거역하는 사람은 참된 가족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안에서 자매요 형제입니다. 예수님은 친족을 혈연적인 측면에서만 국한 시키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모두 친족이요 가족임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 유대교인들은 인간이 당하는 모든 질병이나 불행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믿었습니다. 이러한 유대교적 신앙관이 은연 중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신앙인들은 세상만사를 모두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천재지변도 하나님의 심판이고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만사를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면 인간은 면책특권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세상이 잘못되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지 인간이 책임질 일이 아니게 됩니다.
웨더헤드(Leslie D. Weatherhead)라는 신학자는 『하나님의 뜻』(The Will of God, Abingdon, 1972)이란 책에서 ‘하나님의 본래적인 뜻’과 ‘상황적인 뜻’과 ‘궁극적인 뜻’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본래적인 뜻은 인간들에 의해서 또는 악한 상황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패배한 것 같은 그 상황을 역이용하셔서 자신의 궁극적인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말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함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신학자가 “페북의 성경 공해”라는 글을 올려놓아서 읽어보았더니 “본문을 읽고 묵상한 내용이나 메시지를 페북에 그냥 올리지 마세요. 성경이 괴로워합니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나 혼자 감동 먹은 내용을 성령의 특별한 은총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고 “성경을 함부로 남에게 가르치거나 배우려고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말이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나 신학자가 아니어도 성경 말씀을 잘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올곧이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연구하고 해석되어 공유한 성경 이해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무시한 채 성경을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자의적이고 주관적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괴로워하시겠습니까? 지금 한국 개신교회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는 신성모독적인 발언도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형국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구약시대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당대인들에게 선포한 사람들입니다. 본문으로 선택된 구약성경 말씀은 예언자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아모스는 주전 8세기 북 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여로보암 2세 때 북 왕국 수도 사마리아와 성소 베델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당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종교인들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였습니다. 아모스는 사람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징벌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뜻과 악한 세력의 뜻은 결코 함께 할 수 없음을 선포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가히 ‘갈등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대 간, 이념 간, 진영 간,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이 심화 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지금의 갈등이 한국 사회가 보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역사발전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면 감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현 갈등 상황을 부추기고 그 중심 세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대다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모스와 같은 심정으로 정의를 외치고 공정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주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징벌을 통해 궁극적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부패한 사회를 고치기 위해 심판과 징벌을 내리십니다. 이 심판은 웨더헤드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상황적인 뜻입니다. 심판과 징벌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 선택된 사람들, 즉 하나님 자녀들의 회복을 선포합니다. 아모스는 다른 범죄한 나라들이 무너지고 멸망하더라도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 않는다”(암 9:8)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한 “야곱의 집”은 단순히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자녀 삼으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자녀 삼으신 것이 아니라 자녀 삼으셔서 의롭게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조건이 인간의 행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오늘 서신서 본문에서 설명합니다. 바울은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롬 8: 12, 14)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양자 됨의 영”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증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입니다. 상속자는 조상이 물려준 것을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영예도 물려 받지만 빚도 물려받습니다. 바울은 “빚진 자”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죽을 것이지만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사는 사람은 살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종살이의 영, 노예의 영”이 아니라 자유의 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자유의 영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새해가 되면 덕담을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다. 때로 우리는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난이나 아픔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쓴 약이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듯이 때로는 고난이 도리어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받은 고난’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이르는 길임을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들어 낸 세상은 과연 하나님의 뜻에 얼마만큼 부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질서와 세상 질서는 정반대의 길로 향하여 그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고난과 시련을 더 많이 감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때로 손해 보고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의 영을 받은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며, 열방이 심판을 받고 멸망 당할지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 선택한 성경 말씀이 주신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