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43:18-21, 44:21-23, 행 16:25-34, 마 9:9-17
바울과 실라가 있던 곳의 감옥의 문이 열렸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그래서 감옥 문이 열린다는 것도 평상시에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삶의 연속성이 깨졌습니다.
똑같은 일들이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참 평범하고 때로는 지루하고 무료하게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다가 문득 새로운 일, 낯선 일에 맞닥뜨리게 되면 그 새로움에 대처하느라 분주해집니다. 새로운 일이 좋은 일이면 평상시와는 다르게 기쁨이 넘칩니다. 반면 슬프고 어려운 일이 갑자기 몰려오면 대책을 마련하느라 우왕좌왕 합니다.
감옥 문이 열리는 순간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는 해방이지만 가둬두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시작됩니다. 구원과 심판의 시간이 맞닿아 있습니다.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구원이고 누군가에게는 심판입니다. 단순화시킨다면 바울과 실라에게는 구원의 시간이고, 간수에게는 심판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구원과 심판의 순간을 맞이한 이후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건이 시작됩니다.
갇혀있던 죄수에게는 해방의 순간, 구원의 시간입니다. 동시에 죄수를 감시하던 간수는 칼을 빼서 자결을 하려고 합니다. 갇혀있던 이는 감시하던 이가 죽으려는 것을 보고는 말립니다. 심판과 구원의 자리가 뒤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이 전복(顚覆)의 시간에 심판은 사라지고 구원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일상을 뒤흔드는 지진, 언제나 그래야만 하는 닫혀 있는 감옥문을 깨뜨려 열어젖힌 지진 때문에 조렸던 가슴을 풀어놓게 합니다.
새 창조를 일으키는 하나님께서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성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연속성이 깨진 인간의 역사 한 가운데로 구원의 빛을 침투시키십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구원은 인간의 행위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긍휼하심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 없는 긍휼하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의도와 행위로는 구원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나는 잘 믿는다. 나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 나는 주의 말씀에 따라 사랑을 베풀고 있다.’라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함이 필요치 않다.> 이 말씀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9:12-13)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을까? 아니면 엘리야가 다시 오신 것일까? 병든 자를 고치는 기적을 일으키신 그 분입니다. 하나님의 새 일, 새 창조로서의 구원은 축제를 불러일으킵니다. 침상에 누웠던 중풍병자가 일어서서 걷고, 죄인은 용서 받습니다. 구원은 기쁨으로 이어지고 기쁨에 겨운 새로운 삶을 이어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만나게 된 사람들은 이제까지 연속되던 삶이 깨지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벌입니다.
마태의 집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세리와 죄인들이 한 식탁에서 밥을 먹습니다.
이 광경은 율법에 따라 경건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이들을 향해 죄인이라고 낙인찍고 그들을 멀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된다.”(마9:17)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원을 맞이하는 이는 과거로부터 단절되고 새롭게 시작하여야 한다는 선포입니다.
고전15장에서 바울은 <(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래서 (31)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에서 비롯된 새 창조의 역사 안으로 가기 위해 매일매일 반복되는,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을 끊어버리는 단절의 시간을 겪어내야 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포로로 잡혀가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흘렸던 눈물을 잊어라.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게 하겠다. 너희는 꼭 기억해라. 내가 너를 창조하였다. 내가 너를 잊지 않는다. 빼곡한 구름 같은 너의 반역을 내가 제거하겠다. 너의 그 많은 죄를 안개를 거둬들이듯이 닦아주겠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으니 나에게로 돌아오라.”
길이 뚫린 광야, 강이 흐르는 사막.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광경입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비롯된 은혜로 새 삶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주께서 새롭게 열어놓으신 그 길을 기쁨으로 걷기 위해서는 어제까지 했던 그 일을 끊어야 합니다. 조금 전까지 했던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신념과 이성과 감성에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는 사건이 벌어져야만 합니다. 아직 버릴 수 없는 것이 있고,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지금도 우리를 흔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시고 긍휼하신 구원의 빛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심판과 구원을 지금 맞바꾸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상을 전복시킴으로써 구원의 길을 내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첫걸음을 걷습니다. 어제의 그 걸음이 아닙니다. 갓난아기가 첫 발걸음을 떼는 것을 보는 듯, 그 떨리는 걸음을 우리가 걸어야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가로막고 있는 광야와 사막에 이미 길이 나있고,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쳇바퀴를 멈추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비롯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놓으신 그 낯선 길을 따라 걸어가십시오.
감옥에 갇힌 듯 육체도 정신도 세속적 관습과 관념에 묶여 있던 우리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온 삶의 행태를 흔들어댑니다. 무너지십시오. 그리고 새롭게 세워지십시오.
심판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회복된 삶의 주인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