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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주현절(6-2) - " 열려 있는 내일 " / 설주일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6-02-13 (금) 09:26 7일전 78  

본문) 6:2~9, 12:7~12, 14:1~12

 

이번 주간동안 우리나라 고유의 설날을 맞이합니다. 2026년이 시작되었나 했는데 이리저리 하다 보니 크게 변한 것도, 달라진 것도 없는데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났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오늘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으니 반갑고 고맙기도 합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은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자유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와 형제들이 증언하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기다리던 메시야를 따르며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전파자가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은 특정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여러 말보다 이름을 말하면 명확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됩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가서 전해야 할 말씀을 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그 전하는 말씀을 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야겠기에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고 내 이름은 여호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전능하신 분, 무거운 짐을 벗겨주실 분, 압박하는 자를 심판하셔서 고통당하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 당신이 선택한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셔서 삶의 터전으로 삼게 하시는 그 분이 모세를 당신의 사자로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도 알리지 않으셨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당신을 세상에 드러내시겠다는 의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종의 신분으로 노역에 시달리는 야곱의 후손들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전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마음이 상하고, 가혹한 노역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힘든 상황에서는 누구의 어떤 소리도 듣거나 바라볼 여유가 없는 것을 우리들도 경험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며 고난을 겪고 있는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기억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69절을 함께 읽으면서 애굽에서 노역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우리가 그렇게 어렵고 고통스러웠을 때, 나는 어떻게 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싶었으나, 백성들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용으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세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자 미가엘은 그 용과 함께하는 세력을 하늘에서 몰아냅니다. 사탄의 세력은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하늘에는 승리의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나고 모든 반역과 전쟁은 그쳤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 요한은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던 세력이 땅으로 쫓겨 온 후엔, 사람들을 회유하고 억압하면서, 이기심과 탐욕과 집착에 빠지게 합니다. 악한 세력은 강성하고 정의와 평화는 무기력해 보입니다. 그래서일까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늘 악한 세력이 이기는 듯이 보입니다.

 

헤롯은 세례자 요한이 선포하는 회개를 할 마음이 없습니다. 온다는 천국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헤롯과 한 패거리인 사람들은, 헤롯의 제수였다가 아내가 된 헤로디아가 요구하고 헤롯이 승인한 세례요한의 목을 자르는 일에 동조하였습니다. 정의나 생명존중은 자신들의 안위를 보전하기 위한 장식품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세례요한이 그렇게 불의한 세력에게 생명을 잃은 후에,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기다리던 메시아일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예수께로 갑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나아가는 구원의 경계에서 모세는 애굽으로 가고, 하늘의 용은 그 세력을 잃고 쫓겨납니다. 그리고 악의 세력에게 저항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로 모여옵니다.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변하지 않습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거부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악의 세력은 팽창하며, 연약한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이유로 여전히 허리를 펴지 못합니다. 지금도 가장 강력한 국가의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는, 주저하지 않고 온 세계를 향해 제 욕심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어떤 희망을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숨죽여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위로하시며 홍해의 물길을 마른 땅처럼 열어주셨습니다. 깊은 한숨과 절망 가운데로 만나와 같고, 바위에서 솟는 생수와 같은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십니다.

세상에는 구원을 선포하시는 말씀을 듣고, 의지하며 한걸음씩 내일의 소망을 향해 걸음을 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어 소망의 문을 열고 나아갑시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말씀을 듣는 귀는 열어놓을 수 있을 만큼만 어렵기 바랍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고개를 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수 있을 만큼만 고통스럽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지만, 어제와 또 어제와 또 어제가 쌓인 위에서 내일로 나아가는 날이 오늘입니다. 지금 여기가 세상의 중심일 뿐 아니라 영원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계와 생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오늘의 수고와 애씀은 내일을 향해 열려있습니다. 지나온 시간들과 경험들은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오늘을 지나 내일로 가는 지반을 이루는 든든한 재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사는 오늘이 평화롭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에서 바라보는 미래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도 빠르게 변합니다. 세상은 정의의 편이라기보다는 불의의 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판단인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라는 말씀은 우리가 꿈꾸는 것을 모른척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기대하게 합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이루어질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늘에서 반역하다 쫓겨난 용의 그 어두운 세력이 힘을 쓰고 있습니다. 땅으로 내려온 용의 세력이 부추기는 탐욕과 불의는 우리를 어둠으로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모세의 부름을 듣고 광야로 나온 사람들을 구원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하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나아갑니다. 어린양의 피와 생명의 말씀을 간직한 우리들에게 이기심과 탐욕과 집착하게 하는 어둠의 세력의 영향력은 미미해질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죽은 후에 선생님을 잃은 제자들이 예수께로 와서 주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했던 아쉬움, 우리들이 의지하였으나 힘을 잃어버린 것, 우리들이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나 사라져버린 그것들로부터 돌아서서 구원의 주께로 나아가 새롭게 시작합시다.

 

우리는 다 끝나지 않은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시간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가 언제일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지나간 억압과 어둠을 딛고 자유롭고 밝은 미래를 바라봅시다. 우리 모두가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구원으로 열려 있는 내일을 향해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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