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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주현절(3-1) - " 기억할 것과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 " / 이병일 목사

관리자 2026-01-21 (수) 17:09 30일전 105  

본문) 이사야 43:18-21; 44:21-23; 시편 19편; 사도행전 16:25-34; 마태복음 9:9-17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회고하면서, 특히 역사적 사건 중에서 잊혀져서는 안 될 일들이 많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마음속에 새겨두겠다는 말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역사적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해방정부는 역사 선생인 함석헌에게 자랑스러운 조선역사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는데, 정말로 자랑스러운 역사가 없어서 고난의 역사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을 집필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민족이 오늘날까지 겪는 고난에는 뜻이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 뜻은 이 고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 그 일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담당하려는 사람들의 해방의 몸짓에 있다. 젊은 혼들아, 일어나라. 이 고난의 짐을 지자, 위대한 사명을 믿으면서 거룩한 사랑에 불타면서 죄악으로 더럽혀진 이 지구를 메고 순교자의 걸음으로 고난의 연옥을 걷자. 그 불길에 이 살이 다 타고 이 뼈가 녹아서 다하는 날 생명은 새로운 성장을 할 것이다. 진리는 새로운 광명을 더할 것이다. 역사는 새로운 단계에 오를 것이다.”(함석헌)


요즘 어르신들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압도적인 1등 대답이 치매입니다. 치매 현상은 나이가 들면서 심해져서 자식도, 형제도 알아보지 못하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게 합니다. 그리고 특정 시기의 기억만을 간직하게 합니다. 기억은 삶을 영속시키는 도구이기는 하지만 삶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아픈 기억을 가지고 평생을 사는 사람들, 그것은 잊으려고 하면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망각이 일어납니다. 그래야만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망각은 삶을 리셋(Reset)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져옵니다. 그런 점에서 망각은 삶의 필수 요소이기도 합니다.

우리 뇌는 외부로부터의 여러 가지 형태의 자극을 오감의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입니다. 이때 잠시 잠깐 뇌 속의 감각기억에 머물다 대게는 사라집니다. 이들 중 정보의 문턱을 넘어선 몇몇 정보는 몇 초에서 몇 분 동안 한시적으로 단기기억에 저장합니다. 이 단기기억 정보는 반복 학습 과정을 통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장기기억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이 장기기억 속의 정보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게 됩니다.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에 접근하지 못하는 현상을 '망각(forgetting)'이라 합니다.

기억과 관련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기억이 시간 감각의 핵심을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습니다. 열 살짜리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느끼고, 쉰 살의 남자는 50분의 1로 느낍니다. 마치 재미없는 일은 기억조차 단순하게 구성되지만, 흥미롭거나 생생하거나 불안했던 일에 대한 기억은 복잡하고 자세하게 기록되는 이치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 속에서 이런 경험들은 마치 일상적인 일처럼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하루나 일주일 혹은 한 달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알맹이 없이 기억 속에 섞여 들어갑니다. 결국 한 해의 기억이 공허해지고 사라져 버립니다.

이처럼 기억은 사실과 전혀 다르게 구성되기도 합니다. 기억은 모든 현상에 대해 비디오카메라처럼 시간적 순서대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가장 좋거나 싫은 것 혹은 가장 먼저 일어나거나 가장 최근의 일처럼 가장 강렬했던 순간을 먼저 기억하게 됩니다. ‘섬광전구의 기억(flashbulb memory)’처럼 평생 잊히지 않는 사건에 대한 기억도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 뇌 속의 기억은 재생될 때마다 새롭게 재구성됩니다. 기억 속 사건을 꺼내어 볼 때, 현재의 상황이 반영된 새로운 기억으로 재탄생되어 다시 저장됩니다.

망각에 대하여 최근에 등장한 디지털 치매증후군은 스스로의 뇌를 사용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디지털기기에 의존하게 된 현대인들의 기억력 감퇴 현상입니다. 매일 걸려 오던 회사 전화번호는 물론 몇 년째 사용하고 있는 집 전화번호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 증후군의 주요 원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각종 디지털 관련 IT기기의 급속한 생활화에 따른 뇌의 정보처리 과정의 왜곡입니다. 반복학습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장기기억으로 이전되지 못하고, 결국 필요할 때 기억으로부터의 인출 역시  불가능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정보의 양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다시 기억을 회상할 수 있을 정도의 기억 강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뇌는 애써 기억하려는 노력 대신 그냥 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다 저장되어 있는데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이 디지털 치매증후군은 기억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치매와는 달리 기억이 잠시 나지 않게 되는 건망증과 유사한 경우로 질병이라 하기에는 가벼운 기억장애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나이 들어감에 따른 뇌의 노화현상인 치매와는 달리 20~30대 청년층에 더 빈번하다는 사실 또한 깊이 새겨야 합니다. 통상 성인들이 40대 이후부터는 뇌 무게가 10년에 2%씩 감소하면서 뇌 기능 전체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 디지털 치매증후군을 경험하게 된다면 뇌의 기억기능은 훨씬 가파르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자꾸 뇌를 귀찮게 할수록 뇌는 더 건강해집니다. 하지만 뇌 속의 기억을 전적으로 믿지는 말아야 합니다. 망각의 늪에서 벗어나긴 더욱 어렵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잊고 어떤 것은 기억합니다. 잊으려 애써도 잊혀 지지 않는 일도 있고, 기억해야 할 것이 쉽게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시간에 따라서 저절로 일어나는 기억과 망각도 있고, 의도적으로 기억하고 잊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억하지 말아야 할까요? 무엇을 잊어야 하고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까요? 같은 일도 어떤 때는 기억하라고 하고, 어떤 때는 기억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 하늘말씀으로 읽은 두 개의 이사야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고, 나머지는 식민지 백성으로 살 때에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43장에서는 기억하지 말라고 하고, 44장에서는 기억하라고 합니다.

43:18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19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20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44:21 야곱아, 이런 일들을 기억하여 두어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종이다. 내가 너를 지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 22 내가 너의 죄를, 짙은 구름을 거두듯 없애 버렸으며, 너의 죄를 안개처럼 사라지게 하였으니,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 23 주님께서 이런 일을 하셨으니, 하늘아, 기쁘게 노래하여라. 땅의 깊은 곳들아, 함성을 올려라. 산들아, 숲아,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모든 나무들아, 소리를 높여 노래하여라. 주님께서 야곱을 구원하심으로써,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써, 영광을 나타내셨다.

두 본문을 잘 살펴보면 기억할 일이든 기억하지 말아야 할 일이든 하느님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구원과 해방을 위해서는 하느님과 사람의 근본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고, 사람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 기억과 망각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픈 기억도 때로는 미래의 기쁨을 위해서 잊을 필요가 있고, 다시는 자기가 아프거나 남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마음 깊이 새겨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기억을 하든 망각을 하든 그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지속하고, 더불어 사람들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구원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기억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일입니다. 우리의 기억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몸과 마음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뫔기억’이라고 합니다. 뇌에 기억하는 것보다도 확실한 것은 몸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감정과 학습경험의 결과는 뇌의 신경세포망에 고스란히 저장됩니다. 뿐만아니라 몸에도 자극을 주어서 몸의 각 지체에 영향을 주고 기억하게 합니다. 이것을 습관이라고도 하고, 꾸준한 수련을 통해 얻은 몸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자전거를 배운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자전거에 올라타면 바로 탈 수 있습니다. 고통 경험과 고통 기억은 몸에 비문처럼 남아있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 강렬한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우리 몸과 마음에 예수님이 살아 있게 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머리로 고민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상적인 행동이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되도록 마음에 새기고 몸이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9편 기자는 자기의 삶을 돌아보면서 야훼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찰의 화두를 찾습니다. “주님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님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준다.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주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견고히 서 있으며, 주님의 법규는 참되어서 한결같이 바르다.” 우리가 말씀을 읽는 가장 큰 목적은 자기를 돌아보기 위함이고, 가르침을 묵상하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를 성찰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가족과 이웃을 보고 주변을 보고 역사를 보고 정치를 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연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우주에 숨겨진 하느님의 지식을 깨닫는 일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듭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상하고, 자연과 사회의 사건들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 일은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고 애쓰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 노력을 얼마나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행동하게 되는 죄가 있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로 저지르는 죄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때에 우리는 겸손해지고 하느님의 도움을 기다리게 됩니다. 사람의 자유로운 노력과 하느님의 섭리가 만나는 자리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이 있습니다. 나의 삶과 공동체의 활동을 돌아보기 위해 적절한 화두입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평가와 계획, 결산과 예산, 보냄과 맞이함의 시간에 나와 교회 공동체를 돌아봅시다.

교회 공동체에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진행할 때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재미와 의미입니다. 자발적으로 모이는 공동체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즐겁게 모일 수 있을 때, 서로의 얼굴만 보아도 저절로 웃음이 나올 때 그 속에 하느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의미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의미가 때때로 의무적으로 다가오면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재미를 동반한 의미는 한결 가벼운 짐이고 기꺼이 그 짐을 지기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신앙생활이나 선교활동에서 재미만 있고 의미가 없다면 공동체의 내부적인 자기만족에 그칠 것입니다. 또 의미만 있고 재미가 없다면, 억지로 하는 일 속에서 쉽게 지쳐버려서 영영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수록 한 사람과 한 사람이 합하여 두 사람 세 사람이 되어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아 준다면 훨씬 가벼운 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교우들의 함께 마음과 의지를 모아 기도한다면 더 행복할 것입니다.

재미와 의미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의미 있는 찾아서 하면서, 그 일을 즐기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무지 좋은 사람도 노력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일을 즐기는 사람이 더 낫다고 합니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편에 있는 공자의 말씀입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보다는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之者).”


말씀이나 교훈을 몸과 마음에 새긴 사람을 동양에서는 군자라고 하는데, 군자는 기본적으로 인·의·예·지의 덕목을 완전하게 구현한 사람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의 정신을 함양하고 실천할 것을 강조합니다. 군자는 인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먼저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가지고, 점차 그 범위를 확장시켜 실행해야 합니다. 일종의 점진적 사랑입니다. 군자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유학 사상가들의 이상 사회라 할 수 있는 대동사회를 만드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말 중에서 군자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은, 아마 “소인은 과오나 잘못의 원인을 모두 남에게 찾는데, 군자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라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어떻게 잘해 줄 수 있는가를 적극적으로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항상 겸허합니다. 결코 자기를 내 세우지 않습니다. 자기가 나서야 할 때에도 먼저 남을 내세웁니다. 아울러, 남이 나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자신도 결코 남에게 하지 않습니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이렇습니다.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 군자는 아주 대범하나, 소인은 근심할 일이 많다. / 군자는 한 군데에만 쓰이는 그릇(인물)이 아니다. / 군자는 화목하게 지내고 부화뇌동하지 않으나, 소인은 부화뇌동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 군자는 타인의 장점을 잘 이루어 주고 단점을 조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이와 반대로 행동한다. / 군자는 엄숙하며 남과 다투지 않고, 단체 내에서도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잘 다투며, 당파를 만든다.”

또한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의 조건은 이렇습니다. 첫째, 부지불온(不知不穩)입니다. 남의 칭찬과 비난에 연연하지 않는 독립형 인간입니다. 군자는 동지와 함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같은 뜻을 가진 자들과 함께 인생을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군자는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 주이주비(周而不比)입니다. 두루 남과 함께하고 편당을 짓지 않는 친화형 인간입니다. 조직 내에서 끼리끼리 편을 가르고 상대방을 헐뜯으며 자신들의 사적이익만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새겨야 할 말입니다. 셋째, 눌언민행(訥言敏行)입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실천형 인간입니다. 조직을 위해 실천하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입니다. 넷째,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 화는 ‘함께’를 뜻하고 동은 ‘똑같음’입니다. 함께하되 똑같아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소인은 오로지 같음만 추구하고 화합하지 않는 인간입니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화’야말로 군자의 기본 정신입니다.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나 어른들이나 누구든지 사람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변화합니다. 그 변화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언제나 긍정적인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또한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더불어 함께 자라기를 바랍니다. 지나치면 줄이고, 모자라면 보태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의 사건을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기 위해서 잊을 건 잊고 기억할 것은 기억합시다. 우리가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과 지금 이 순간 모두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삶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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