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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8-2) - " 이제 선택 합시다 " / 전완기 목사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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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8-2) - " 이제 선택 합시다 " / 전완기 목사

관리자 2025-03-01 (토) 14:02 1개월전 89  

본문) 14:25~35, 삼하 24:18-25, 4:32-5:11

 

주현절 여덟째주일을 맞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심을 감사하는 절기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는 35일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기념하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특별한 것은 3월의 시작은 우리 초중고 대학생 자녀들이 한 학년씩 진급하면서 새로운 학교나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기대가되고 설레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걱정이나 근심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이 어떤 자세로 임하게 하시는지 함께 묵상하며 나가시길 원합니다.

 

복음서 (14:25~35)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주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돌아가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향해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사람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한번 관계를 맺는 것뿐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신의 부모와 아내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미워하라는 말씀을 주셨는데요. 이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품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회적 상황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면 가족들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처럼, 박해와 고난을 받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복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모든 것보다 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지만 이 땅을 포기하고 감수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군가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미리 비용을 계산해 보고 결단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두 가지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려고 할 때, 그것을 완성할 비용이 자신에게 있는지를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지 않고 기초만 놓은 채 완성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들이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완성하지 못했다고 비웃을 것이다.” 이 망대는 개인의 집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망대로 보이며, 곡식과 농기구를 복원하는 정교한 건축물이었습니다.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건축을 시작하고 완성하지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낭패를 겪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분명히 알고 숙고한 뒤 헌신을 결단해야 합니다. “, 어떤 왕이 다른 왕과 싸우러 갈 때, 자신이 가진 1만 명의 군대로 2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적을 당해낼 수 있을지 먼저 앉아 헤아려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만약 상대할 수 없다면, 적군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중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 비유는 망대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왕이 무모하게 전쟁을 벌여 허무하게 패배하지 않으려면 미리 전력을 따져 봐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제자의 삶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결단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소유에 대한 집착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땅에도 걸음에도 쓸모가 없어서 밖에 내버린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은 들어라.” 당시 소금은 사회 주변에 마른 웅덩이에서 채취되었습니다. 석고가루나 다른 불순물과 섞여 있는 덩어리는 소금처럼 보이지만 짠맛이 전혀 없는 찌꺼기만 남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소금은 가축의 거름을 말려 만든 연료가 더 잘 타게 하기 위해 소금을 뿌렸습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거나 그 기능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제자로서의 결단과 헌신이 없는 제자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구약 (삼하 24:18-25)

사무엘하는 다윗의 왕권 일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부터 그의 왕권 전반에 걸쳐 스물 넉장을 할애하여 다윗의 통치를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24장은 그 의미가 특별합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로 인한 범죄로 3일이 채 못 되어 이스라엘 안에서 7만명이 죽습니다. 그것은 분명 다윗이 교만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스라엘의 큰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려 했었다는 것을 24:1절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기에 핑계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시켜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일으키게 하였고, 그 결과 3일도 못되어 7만명이란 숫자가 죽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치려고 손을 드니 하나님은 이미 7만이란 숫자가 죽었는지라 이제는 족하다하면서 여호와의 사자에게 멈추라고 하십니다. 그 여호와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서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원래가 여부스가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왕궁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라우라 타작마당으로 갔으며 그 곳에서 여호와의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다시 한번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백성을 더 이상 치지 마시고 자기와 자기 집안에 재앙을 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다윗에게로 보내시어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합니다. 화목제사 드릴 것을 값주고 사겠다는 다윗에게 아라우나는 기꺼이 그냥 드리겠다고 했지만 다윗은 값없이는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리지 않겠다고 하며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게 됩니다.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화목제가 끝나자 역대상에 보면 하늘에서부터 불이 내려 제사를 받으셨음에 대한 응답이 나타났고 비로서 여호와께서 천사에게 명령하시어 칼을 칼집에 꽂게 하셨습니다.

 

서신서 (4:32-5:11)

성령이 충만했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개인 재산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모든 물건을 공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사도들은 큰 능력을 행하며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큰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집이나 땅이 있는 사람은 교회 공동체가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팔아서 돈을 마련하여 사도들에게 가져갔습니다. 사도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재정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는 동안은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구브로에서 태어난 레위지파 유대인 요셉은 사도들로부터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렸습니다. 바나바는 자신이 갖고 있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회원이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공동기금으로 바치기 위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팔았습니다. 부부는 땅을 판 값에 일부를 자신들의 소유로 챙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게는 그 돈이 땅을 판 값의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주님의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은 거룩한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한 행동은 성령을 거역하고 교회에 거룩성과 공동체성을 깨뜨리는 행위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여, 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이고 땅값의 일부를 몰래 감추었습니까? 그 땅은 팔기 전에도 당신 것이지 않았습니까? 또 팔린 뒤에도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습니까? 당신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도들이 재산을 팔아내어 놓은 것은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인 구제이자 섬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라니아는 자신의 소유인 땅을 팔지 않을 수도 있었고, 땅을 판값에 일부만 내어 놓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바나바와 같이 칭찬을 듣고 좋은 평판을 듣기를 원했고, 거짓말을 해서까지 자기 의를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아나니아는 베드로 사도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일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두려워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관습에 따라 24시간 안에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렀고 특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은 지체 없이 시체를 매장했습니다. 교회의 청년들은 일어나서 아나니아의 시체를 싸서 메고 나가 장래를 치렀습니다. 3시간쯤 지난 뒤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가 그 동안의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죽은 일이 그들의 거짓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고, 삽비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땅을 판 값이 이것뿐입니까?” 삽비라는 사실대로 말할 기회를 얻었지만, 남편과 마찬가지로 그것뿐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당신들은 왜 서로 공모해서 주의 영을 시험하려고 합니까? 보시오. 당신의 남편을 장사한 사람들의 발이 막 문에 다다랐으니, 그들이 또 당신을 메고 나갈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곧 삽비라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져 숨졌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삽비라가 죽은 것을 보고 그 시체를 메어다가 남편 곁에 장사했습니다. 온 교회와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이 사건은 교회 공동체가 성령이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공동체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며, 성령을 받아 한 몸을 이룬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거룩한 사랑의 공동체로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는 믿음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중에 우리에게 불리하고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므로 말미암아 넘어지고 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큰 사고나 감당하지 못할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그로인해 낙심하기도 합니다. 결국 다시 죄에 넘어졌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계획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실수 하셨으므로 원망해야 할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지 못하는 나의 욕망으로 불순종한 내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그 화살을 하나님께 돌리는 죄까지 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화목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시키시기 위해 희생당하신 예수님이 없었다면 우린 아직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저주 가운데서 두려움에 떨며 살았을 것입니다. 화목케 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오늘도 그의 자녀들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희생없이 논할 수 없습니다. 희생 없는 기독교에 대해 말하지 않고 항상 내가 누릴 번영과 복만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복음에서 변질된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는 마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삶이 복된 삶이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으로 주님과 이웃을 기쁨으로 섬기는 것을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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