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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7-1) - " 말씀을 부적 삼지 말라 " / 3.1절 기념주일 / 송종근 목사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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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7-1) - " 말씀을 부적 삼지 말라 " / 3.1절 기념주일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5-02-19 (수) 17:35 1개월전 128  

본문) 9:57~62, 1:1~9, 고전 10:1~13

 

오늘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조금 아리송합니다. 따르겠다, 제자가 되겠다 결단한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반응이 긍정의 신호인지, 부정의 신호인지 알 듯, 모를 듯 애매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반응을 보이셨을까? 오늘 복음서에 등장한 인물들을 살피며 우리 스스로도 돌아보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57절에 등장하는 첫 번째 주인공은 예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나이다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를 최측근에서 수행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예수님의 반응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입니다. ‘따르겠다고백하는 데, ‘머리 둘 곳이 없다말씀 한다는 것은 마치 오지 말라는 뜻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 자신의 결단을 내세우는 그의 다짐이 부질없다는 지적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의 여정이 영광스럽고,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여정이 아니라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표현으로 드러나 듯 예측할 수도 없고, 불확실한 과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따르고자 작정한 이에게 과연 이만한 결단, 이만한 준비를 되었는가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오히려 역으로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제안했음을 59절을 보여줍니다. 그러자 돌아온 반응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긍정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먼저 자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배려해 달라는 조건이 붙었음을 목격합니다. 그러자 돌아온 예수님의 반응은 죽은 자의 일은 죽은 자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경조사보다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인 것이죠.

세 번째 주인공은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선언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자신의 결단을 고백하면서, 가족과의 작별 인사할 시간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돌아온 예수님의 반응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결단했으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오늘 복음서의 상황을 들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매우 까탈스럽고 배려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사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요청은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충분히 납득 가능하고, 용납할 만한 요청이라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들의 요청을 거부할 만큼 예수님께 주어진 상황이나 여건이 급박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드러난 예수님의 태도는 그들의 요청에 대해 완곡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이 먼저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제자의 삶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예수님 마음에 흡족한 사람입니까?

이에 대한 힌트를 저는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모세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택함받은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당부이자 명령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이미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룩한 결과물에 근거해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신 명령의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을 건너 하나님이 주는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누가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호수아가 행동해야 하는 근거로 오늘 성경은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는 여정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성취하고, 정복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곧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하며 성취했던 승리와 기쁨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며 출애굽했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심이 드러났으니, 여호수아도 그 하나님을 믿고 모세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허위가 아닌 진실이었음을 모세가 이미 보여주었으니,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된 여호수아가 할 일은 약속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신뢰와 용기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세의 시종이었던 여호수아가 겪고 있는 중압감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모세에 비해 객관적인 능력이나 조건, 환경, 자질이 부족한 여호수아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모세의 성공은 모세의 자질로 이룩한 모세의 업적이 아니라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한 결과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작스런 중책을 맡아 막막하고 두려운 여호수아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며 그가 모세와 같은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면 여호수아도 모세와 같은 승리와 성취가 주어질 것이라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반복적으로 모세, 모세, 모세를 언급합니다. 모세에 대한 반복된 호명은 여호수아를 향한 강한 당부이기도 합니다. 모세를 하나님처럼 믿고 의지했던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의지하듯,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감당하라 당부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묵상하고,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한 모든 사명을 감당했다는 점입니다. 이를 오늘 성경은 강조합니다. 모세가 자신의 능력이나 지식, 지혜로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고 수행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의지하여 그 가르침대로 행하였더니 자연스레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약속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같은 사명을 부여받은 여호수아가 모세와 같이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면 여호수아도 모세와 같은 성취를 이룰 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당부하고 격려하며 여호수아가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동행하여 그에게 주어진 사명의 성취를 이루게 할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서게 될 것임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책임지신다는 약속이자 보증입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거룩한 약속이요 보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는 사는 존재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며 살아가는 존재이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예수님을 따른다 결단했던 사람들을 향한 성경의 대답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직접 챙기시고, 책임질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름받고, 부름에 응답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서신서에 등장하는 바울의 권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인데, 고린도는 지역적 특성상 무역과 사업이 매우 발달하여, 다양한 계층과 민족이 모이는 도시였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그 가운데 세워진 고린도 교회는 이런 지역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과거 우상숭배의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기독교 신앙과 혼용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어렵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길에 들어선 성도들이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하기위해 오늘 말씀을 통해 출애굽 시대의 이야기를 본보기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출애굽의 여정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여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 구원의 여정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출애굽하고,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여정에 들어섰지만, 그 과정에서 우상숭배와 음행, 불순종, 원망의 죄에 빠져 광야에서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출애굽의 여정에서 드러난 이스라엘의 실패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어렵게 구원의 길로 들어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출애굽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을 통해 바울은 출애굽의 실패 사례가 본보기라는 점을 지적하며, 구원의 길에 어렵게 들어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출애굽 여정 중에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입니다. 그들이 구원의 길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구원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몰라서 멸망으로 들어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계명을 지키지 않았던 그들의 불순종이 그들을 멸망의 나락으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제시해 주셨지만, 그 약속의 주인공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자기 욕망대로 살다가 결국 멸망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천하지 않은 이들이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예수를 따르겠다 나선 사람들을 향해 모호한 대답으로 일관한 예수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느냐 아니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면 생명이고, 성취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눈 앞에 구원의 길을 두고도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출애굽의 실패를 반복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로 결단한 사람들을 향해 애매모호한 태도와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으로 일관하며 그들의 결단, 그들의 행동을 촉구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최근 탄핵정국을 맞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헌법 수호를 맹세하고 다짐했던 지도자가 자신의 다짐을 실천하지 않고 만든 결과가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은 적극적인 하나님 말씀의 실천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부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능력은 간직한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행동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은 책장 한켠 붙여 두거나, 문지방 위에 붙여두는 부적이 아니라 내 가슴에 새겨, 삶으로 지키고 행동할 때 주어지는 생명입니다. 그렇게 지키고 실천할 때 말씀은 우리를 약속의 성취자로 만들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입니다. 무속이 판치고, 거짓이 난무하는 오늘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지켜 행동함으로 세상을 바꾸고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거룩한 주의 자녀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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