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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일(1-2) - " 사랑과 평화로 완성되는 구원 " 이병일 목사 >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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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성탄일(1-2) - " 사랑과 평화로 완성되는 구원 " 이병일 목사

관리자 2018-12-22 (토) 17:54 5년전 2062  

본문) 요한복음 3:16-21, 미가서 5:2-5, 요일 4:7-12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해마다 성탄절이면 세상에 울려 퍼지는 말입니다. 구약성서의 예언이나 신약성서의 예수탄생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하여 ‘그럭저럭, 그냥저냥 살다가 가면 돼지’ 하면서 자포자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안에 예수님의 평화가 있다면, 우리 안에 예수님이 가져다준 평화가 옳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가 예수님이 보여주신 평화의 길을 따라서 행동을 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밖에서 몰려오는 어떤 조건도 우리는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민족, 식민지 백성, 유다의 여러 족속 중에서 가장 작은 족속 에브라다, 그 중에서도 베들레헴 시골의 어린여자에게서 태어났습니다(미가 5:2). 방조차 없어서 마구간에 있는 아기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은 세리와 고리대금업자들처럼 천대받았던 목동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에서는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라고 하면서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되는 소식을 전하여 줍니다. 기쁜 소식은 복음인데, 로마시대에는 황제가 태어나거나 등극하는 소식을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은 작고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평화를 주실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미가 5:5) 

 

오늘은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인데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우리는 고백합니다.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요한복음 3:16-21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16절)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고”(17절)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영생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영생과 구원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19절) 사람이고,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는”(20절) 사람입니다. 자기가 행한 악한 일이 드러날 까봐 진실을 감추고 더 악한 일로 자기의 행위를 숨기려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은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고 빛으로 나아오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의 행위가 진실하기 때문에 숨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21절) 많은 교회에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요한복음 3:16절을 인용하였는데, 그 뒤에 나오는 구절을 읽으면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더 깊게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구원과 영생의 조건인 믿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행위가 진실 되고 떳떳하기 때문에 빛으로 나아오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인 구원과 영생의 전제조건은 예수님을 믿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과 영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7-12에서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됩니다. 

 

또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빛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세상에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모시고 그 아기가 내 속에서 우리 가운데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평화는 내 속에 모신 아기 예수를 키우듯이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평화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빛을 싫어하는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사랑이 없어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삼는 세상에서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며 살 때에 아기 예수님이 자라서 다시는 십자가에 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는 더 이상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과정과 노력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바로 이러한 일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일이고, 그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아기로 이 땅에 오신 날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아기 예수님을 내 마음에 내 몸에 모시는 일입니다. 특히 연약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모시는 의미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롬베르트 노벤 (Lambert Noben)의 시에서 그 의미를 이렇게 헤아리고 있습니다.


“내가 벌거벗고 태어난 것은 네가 자신을 포기해야 함을 알려주기 위함이며 

내가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네가 나를 유일한 부로 여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며

내가 구유에 태어난 것은 네가 모든 환경이 거룩하다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약하게 태어난 것은 네가 나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고 

내가 사랑으로 태어난 것은 네가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고 

내가 밤에 태어난 것은 네가 어떤 상황에서도 빛을 비추는 나를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네가 하나님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며 

내가 박해 중에 태어난 것은 네가 어려움을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이고 

내가 단순하게 태어난 것은 네가 복잡한 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인사를 진정으로 “Merry Christmas!” “Feilz Navidad!”라고 하기 위해서,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할 일은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추구하는 구원자, 해방자로서의 예수님을 따르게 될 때에 세상은 점점 더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인 영생과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되고,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완성됩니다. 그 완성의 구체적인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평화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억하고 기뻐하는 오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평화를 이룹시다. 

 

정호승 님의 시 “봄길”을 읽으며 묵상합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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