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호 11:1-4,8-9, 고전 1:26-31, 마 2:13-23
1) 2023년 새해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에 생명, 평화, 정의의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라기는 새해에는 모든 교우들이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하나님나라 운동의 사역자들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2022년 한 해도 모두 힘겹게들 사셨습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19로 인해서 3년이 다되도록 전 국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대인접촉이 힘들어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국민들이 백신접종을 받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감염된 경험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면역항체들이 생겼다고 정부당국에서도 판단하고 마스크 착용의무도 곧 해제할 것으로 보여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는 그동안 집회를 자유롭게 하지 못해 많은 제약을 받으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 이제는 다시 교회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옛날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동안 모두가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창조질서를 훼손한 결과 코로나 사태와 같은 재앙을 만났다는 사실을 전 인류가 학습했으니 이제는 다른 생활방식 곧 조금 불편하게 살더라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것이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가야합니다. 지금껏 경제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환경 우선이라는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새해에는 교회의 모든 사역에도 이러한 생각을 갖고 펼쳐가야 하겠습니다.
2) 아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된 대로 탄생하신 소식을 들은 헤롯은 자신이 병들어 죽기 직전인데도 권좌에 대한 욕심 때문에 무모한 유아 살상을 자행합니다. 헤롯은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도 자녀들도 죽이는 무자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그가 죽기 5일 전에도 자신의 아들인 안티파테르를 처형해 죽이기까지 한 극악무도한 왕이었던 헤롯은 예수님이 나신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 지경의 두 살 아래의 유아들을 모조리 죽이도록 한 명령을 내립니다. 헤롯은 그렇게 하면 모든 후환(後患)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엄청난 살상극이 펼쳐졌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예레미야 31장 15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라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미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통해 애굽으로 피하도록 현몽(現夢)하셨습니다. 헤롯은 자신이 넉넉잡아 두 살 아래 아이들을 죽이면 후환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헤롯의 무모한 칼날을 피하도록 예수님을 지켜주셨습니다. 마태는 이 일을 기록하며 호세아 11장 1절 말씀을 인용하여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드님을 베들레헴에서 애굽으로 불러서 지켜주신 것입니다. 헤롯이 힘으로 예수를 죽이려 했지만 결국 그것은 헛발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면 누구도 손댈 수 없습니다. 어떤 큰 힘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31절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외쳤습니다.
3)사랑의 줄로 이끄시는 하나님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숭배하던 때에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해 세운 선지자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잘 보여준 예언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꾸만 곁길로 나가고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하나님이 끝까지 이스라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오늘 본문 11장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절의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시킨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광야 40년을 지내는 동안 놀라운 기적을 베푸셔서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며 바알을 섬기며 그에게 제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팔로 안아 지켜주셨습니다.(3절) 심지어는 잘못된 이스라엘을 고쳐주셨지만 그것마저도 이스라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그래도 버리지 못하시고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시며”(4절) 또 8절에서 보는 것처럼 애타게 이스라엘을 기다리며 사랑의 호소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하려고 ‘사랑의 줄’로 이끌어주셨음을 말해줍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이 말씀의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부르는 이름이고, 스보임이나 아드마는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근처에 있는 지역들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해 주는 말씀입니다. 9절에서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은 ‘나는 너희들처럼 조석변개(朝夕變改)하는 존재가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너희들은 나에게 은혜를 받고서도 배반하고 우상 앞에 머리 조아리고 하지만 나는 그래도 너희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해준 줄 너희가 아느냐?’하고 하나님이 제게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잘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고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엉뚱한 짓했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를 향해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너를 버리겠느냐?”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고요! 이를 우리는 은혜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다른 말이 없습니다. 은혜입니다.
4)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고린도교회를 세우셨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고린도교인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이 남다른 지혜가 있었거나, 문벌이 좋았거나, 강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닌 힘없고 나약하며 세상적으로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었으나 은혜로 저들을 선택하셔서 오히려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 곧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가진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를 두고“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31절의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씀은 곧 사람의 공(功)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로 너희를 구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 믿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느 누구의 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사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바울이 인간적으로 자신의 공을 내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거부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고전3:5)고 강하게 반문하며 자신들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이 다 하셨음을 강조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
바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내세웁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9절에서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누구도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의 공로를 주장할 수 없도록 약하고 힘없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오지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 말씀입니다.
자신의 공이 크게 보이면 하나님의 은혜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이 작아지고 한없이 낮아지면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와 하나님의 은혜는 반비례(反比例)합니다. 바울은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자기는 죄인의 괴수요 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5) 맺음
2022년 지난 한 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위기에서 구하셨듯이 그리고 이스라엘을 많은 허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셨듯이 그리고 아무 자격도 없는 무지랭이 같은 우리를 오직 은혜로 구원하시고 지금껏 인도하셨습니다. 감사합시다.
그리고 2023년 새해에는 이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고 은혜 갚는 삶을 살아갑시다. 신앙생활은 바로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삶입니다. 자랑하지 말고 겸손하게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