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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성탄절(2-2) - " 새 백성, 새 나라, 새 출발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0-01-03 (금) 09:36 4년전 1911  

본문) 사62:1-7/ 롬11;13-24/ 막1;1-11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두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주의 에너지의 양은 항상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새벽예배를 드리는 3층 예배실은 전기난방을 하지만 기름 난방기를 보조로 사용합니다. 기름 난방기는 석유를 쓰는데 그 기름에너지를 연소시키면 뜨거운 열에너지로 바뀌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기름에너지가 없어지는 게 아니고 열에너지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에너지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건물 밖으로 새나가 찬 공기를 자꾸 덥혀서 지금 지구 온도가 상승시키고 있는 것이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에너지의 총량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바뀌는데 시간이 갈수록 “무질서의 도度(엔트로피 Entropy)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석유에너지를 연소시키면 열에너지로 바뀌는데 반대로 열에너지를 석유에너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변화하는데 무질서한 방향으로 나쁜 쪽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질서 도度(엔트로피)가 자꾸 높아집니다. 여러분이 앉은 나무의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이 의자가 자꾸 낡아지고 썩고 무질서하고 나쁜 방향으로 변합니다. 그러다 결국 부서지고 못쓰게 됩니다. 이 원리에 따라 이 우주가 현 상태로 계속 진행된다면 언젠가는 모든 에너지가 쓸모없는 거대한 쓰레기처럼 변화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19세기 중반에 엔트로피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데 기여했던 당대의 석학들은 우주 종말의 비관론에 휩싸여 우울해 했었다고 합니다. 

 

새 해 첫 주일입니다. 우리는 새해와 함께 우리 삶에 아름답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소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우리에게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낡아지고 무질서한 파괴와 죽음의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우리는 이 낡아지고 무질서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죽음과 절망의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새 생명과 소망과 아름다운 질서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이 혼돈과 죽음의 문화가 새 창조와 생명의 문화로 바뀔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을까요?

 

회개의 세례로 새롭게(막1:1-11)


복음서의 말씀은 “참 회개”를 통해 우리가 무질서와 혼돈과 죽음의 세상으로부터 새로운 구원과 소망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특히 오늘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그의 탄생이 아니라 그의 세례사건을 통해 시작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요한과 예수님의 세례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새로운 세상, 새 하나님의 나라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앞서서 준비한 사람입니다. 이제 때는 찼고 예수께서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광야에서 거주하며 스스로 참회의 삶을 살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살아온 반역과 불의와 모든 죄악의 삶을 철저하게 포기하고 단절하는 회개의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요구하며 매우 구체적인 지침을 열거합니다.(3:10-14) 1) 옷이나 먹을 것에 여유가 있으면 없는 자에게 나누어 줄 것, 2) 세리들은 부과된 것 외에 거두지 않을 것, 3) 군인들은 힘으로 강탈하거나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급료를 족한 줄로 여길 것, 등입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자신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욕망을 단호하게 포기하고 나보다 가난하고 억눌리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이웃을 돕고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포기하는 것, 이기심을 버리는 것, 내가 죽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는 참 생명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라고 하십니다. 그런 자의 마음에 생명의 주님은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신의 공생애를 세례와 함께 시작하십니다. 지난 30년 동안의 나사렛생활을 뒤로하고 이제는 한 가정의 자녀로서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아들로, 한 가문을 책임지는 맏아들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온 인류의 구원의 사명을 책임지는 맏아들로서의 새로운 사역을 세례로부터 출발하신 것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우주에는 소위 열역학 1,2법칙이 있지만 또한 그것과 대조되는 또 다른 새로운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은 낯선 용어지만 “신트로피(Syntropy)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1941년에 루이지 판타피에(Luigi Fantappie)가 처음 사용했는데 우주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시간이 갈수록 무질서, 분해, 부패, 혼돈, 죽음을 향해 가는 엔트로피법칙과는 정 반대로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질서, 응집, 조화, 번성, 생명을 향해 나가는 현상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엔트로피와 대조되는 신트로피 법칙이라 했습니다. 그는 신트로피의 법칙을 생명의 현상을 설명하는 생명의 법칙이라 했습니다. 예를 들면 물질세계는 시간이 갈수록 무질서, 분해, 부패, 고통, 죽음을 향해 가는데 생명이 있는 식물들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질서가 생기고, 서로 연합하고 조화를 이루어 보다 풍성한 생명을 향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태양에너지를 받으면서도 무질서와 붕괴를 향해 가는 물질세계와는 상반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생명의 현상”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생명이 있는 식물들은 태양에너지를 받아 오히려 그 에너지를 사용하여 싹을 내고 이파리를 내며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어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들을 돕고 살리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물질은 날이 갈수록 낡고 노쇠하고 무질서해지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으면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모든 환난을 이기고 자라고 뻗어나가고 열매를 맺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 그분은 낡고 무질서해지고 무너지고 죽어가는 이 세상을 살리실 생명의 주이십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그 생명의 주이신 예수께서 임하십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은 영생(조에)을 얻습니다. 그 영생, 생명을 가진 자는 세상을 이깁니다. 죄를 이깁니다. 마귀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며 모든 일에 승리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무너지거나 절망하지 않고 그 모든 일을 통해 더 성숙해지고 풍성해지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 세례로 새롭게!(사62:1-7)

 

우리가 새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 존재, 세상을 이기는 새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위에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받아 붕괴와 무질서의 엔트로피의 법칙을 극복하고 오히려 응집, 조화, 번성, 생명의 방향으로 가듯이 예수 생명을 받은 새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거룩한 영적 에너지를 받아 죄와 사망의 세력을 이기며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이 회개의 물세례를 베풀었다면 예수님은 성령의 불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막1:8) 회개의 빈자리는 새로운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청소는 되어있는데 비어 있으면 더 악한 것이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사야 본문은 ‘여호와의 종’이 오셔서 장차 예루살렘에 행하실 놀라운 일들을 증언합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을 회복할 자로서 지칭하는 “나”(사62:1)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요 장차오실 여호와의 종, 메시야를 지칭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 분이 그의 능력으로 꿈과 같은 일,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이스라엘에게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이 회복되어 모든 이방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2절) 이스라엘은 포로 된 자,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신부(4절 ‘쁄라’)로 불려지고, 무너진 황무지는 기쁨이 넘치는 땅(4절 ‘헵시바’)으로 불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 놀라운 예언은 먼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성전을 재건함으로 성취됩니다. 상상이 안 되는 일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사망의 굴레에 매어있던 이스라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서 귀환하라는 칙령이 선포됩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일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죄와 사망의 포로 되었던 자들이 놓임을 받게 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어둠의 노예였던 자들에게서 악한 귀신들이 쫓겨났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모든 세상의 권세들이 소멸되고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기쁨의 땅,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일들이 지금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통해 계속됩니다. 오직 성령의 권능을 통해서!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오!(엡5:18)

 

요한의 물세례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불세례를 준비하는 세례입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씻는 세례, 비우는 세례입니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 참 보혜사이신 예수가 오셔야 합니다. 예수생명이 충만하게 채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시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며 사망을 이기는 백성이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그의 권능을 주실 때 지금 이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여호와의 종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행하셔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고 진정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십니다. 타락한 정치가 할 수 없는 일을 예수께서 친히 행하십니다. 

 

서로를 섬김으로 새롭게!(롬11:13-24)

 

마지막으로 우리는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서로를 섬기는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새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살았던 사도 바울에게 항상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의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이었습니다. 그는 오늘 로마서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야기 합니다. 그 첫째는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거부함으로 하나님이 그 구원의 은총을 이방으로 옮기셨다고 말합니다.(20절) 마치 오랫동안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왔던 참 감람나무의 가지들을 꺾고 거기에 야생의 돌 감람나무를 접붙이듯 예수의 복음이 그동안 전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따라 살았던 이방인들을 통해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17절) 하나님은 예수를 거절하는 불신앙의 이스라엘을 버리셨고 이를 통해 이방을 살리는 기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이십니다. 둘째로 이번에는 구원의 열매인 이방의 교회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고 하십니다.(14-15절) 이스라엘이 예수를 거절함으로 복음이 이방으로 와서 열매를 맺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복음으로 이방이 열매를 맺고 영광스럽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이 이를 시기하게 함으로 이를 통해 그들을 구원해 내신다고 하십니다.(14절)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은 한 편만의 구원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하시고, 서로를 통해 복음이 뻗어가게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을 인하여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있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 없이 살았던 돌 감람나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증거 되고 꽃이 피게 하시고 마침내 예수를 거역했던 이스라엘까지도 또다시 복음의 열매를 맺도록 인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대상이요 마침내 때가 되면 그들을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이방은 서로 대적할 대상이 아니고 상호 협력하여 함께 복음을 꽃피워가야 할 대상입니다. 돌 감람나무 이방사람은 참 감람나무 이스라엘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잘렸고 그 자리에 이방인인 돌 감람나무가 접붙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로 인하여 복음의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방이 복음으로 영광스럽고 풍성해짐을 보고 이스라엘도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와 다른 한 편의 구원을 반대하고 대적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제한하는 자들을 경계하십니다. “그러므로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20절 하)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지만 내가 매일 만나는 모든 예수들로 인해 성화되고 거룩해집니다. 원수로 인해 참 사랑을 배우고 연약한 자들을 통해 섬김과 희생을 배웁니다. 내게 아픔을 주는 사람을 통해 거룩한 인내를 배웁니다. 그들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들입니다. 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서로를 정죄하고 혐오하며 배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사랑으로 품고 서로를 사랑으로 세우며 내 모든 이웃들을 통해 거룩해지고 성장하며 온전해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계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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