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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4-1) - " 꽃길을 걸어갑시다 " / 반승상 목사 > 대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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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대림절(4-1) - " 꽃길을 걸어갑시다 " / 반승상 목사

관리자 2018-12-21 (금) 17:19 5년전 2432  

본문) 이사야 35:1~10 / 베드로전서 1:22~2:3 / 마가복음 9:33~37

 

미술작품 한 점()이 주는 감동으로 사고(思考)의 방식이 바뀌고 그 영역이 넓혀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신학교 시절에 독일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의 작품을 만난 일이 제겐 그렇습니다. 특별히 그녀의 작품 중에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라는 매우 비통하고도 충격적인 그림을 보면서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을 배우는 내면의 변화와 성숙을 경험하였습니다.

 

성경 본문을 주제로 그린 많은 성화(聖畫)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사야 35장을 읽으면서 혹시 이 본문을 모티브로 그린 성화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 하며 찾아보았지만 애석하게도 이사야 35장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일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꼭 이사야 35장을 화폭에 옮겨보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은 독자로 하여금 화석화(化石化)된 문자가 아니요, 상상하게 하는 생동감 있는 그림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5장은 사로잡혀 간 사람들이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예언자의 생동감 있는 언어로 묘사한 본문입니다. 예언자는 포로 시절을 마치고 고토(故土)로 돌아오게 될 장래의 구원을 본문을 통해 힘 있게 선포합니다. 그때가 되면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그 동안의 슬픔과 탄식에서 벗어나 기쁨과 즐거움으로 노래하며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35:9,10) 돌아오는 그 길은 거친 광야길이 아니라 꽃이 만발하게 피어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맘껏 보게 되는 꽃길이 될 것입니다.(35:1,2) 돌아오는 그 길은 메마른 광야길이 아니라 물이 솟고 시내가 흐르는 생명이 넘치는 초원길이 될 것입니다.(35:6,7) 돌아오는 그 길은 여호와의 구속함을 받은 자들만 올 수 있는 길이기에 모든 불의와 악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떨지 않고 더 이상 못 보고, 못 듣고, 못 걷고, 말하지 못하는 삶이 아니라 힘차게 일어나 뛰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들으며 입을 열어 찬양하는 자들의 길이 될 것입니다.(35:3~6) 지금 당장은 포로 생활 중에 자유를 빼앗기고 숨죽여 신음하며 아파하고 슬퍼하고 탄식하는 시간을 견뎌낼 뿐이지만, 그때가 되면 아름다운 꽃길을 뛰고 걸으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와 그의 구속하심을 노래하며 그토록 그리던 고향 시온성,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언자는 감격적인 언어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35장은 그때 거기의 말씀이 아니라 대림절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오늘 여기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오늘이 아프고 슬프고 탄식해야 하는 견뎌내야 할 시간이라도, 우리는 오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며 끝까지 희망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다시 오실 그때에 우리도 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그의 인자와 그의 공의와 그의 구속하심을 맘껏 노래하며 영원한 시온, 새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천국잔치를 맛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21:1~8)

      

베드로전서는 소망의 서신입니다. 이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들은 신앙을 이유로 심하게 적대와 멸시를 당하는 처지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 서신은 박해의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나그네라는 말로 설명합니다.(벧전 1:1, 17, 2:11) 왜냐하면 서신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을 미래를 향하여 길을 출발한 도상(途上)의 사람들로 여겼기 때문입니다.(벧전 1:13)

 

오늘 읽은 베드로전서 본문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미래를 향하여 길을 출발한 도상(途上)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오늘 여기를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처신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모든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벧전 2:1) 세세토록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붙들라고 권면합니다.(벧전 1:23~25)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짓이 없이 진심(眞心)으로, 온 맘 다하여(全心)으로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벧전 1:22)

      

마가복음서의 말씀은 베드로전서의 말씀처럼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 삶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마가복음의 본문의 상황도 길 위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본문에 나타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과 달리 그 길에서 일어난 일은 예수님을 근심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크냐하는 쟁론이 그 길을 가는 도중에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것입니다.(9:33,34) 이는 베드로전서 본문에 기록된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에서 비롯되는 버려야 할 사람의 말이었습니다.(벧전 2:1) 그 싸움은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도상(途上)에서 나누어야 할 다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대속의 역사를 친히 그 몸으로 이루시고자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제자들의 허타한 쟁론을 보면서 적잖이 실망하셨겠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정착 다투어야(?) 할 일은 더욱 섬기기 위한 선한 싸움인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9:35) 그리고 그 섬김이란 것은 섬길 만한 위인을 섬기는 당연한 섬김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일이라고 가르칩니다.(9:36) 그리고 그 영접이야말로 무지부식(無知不識)간에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9:37)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한다는 것을 아이들의 순진무구(純眞無垢)함을 연상하며 쉬운 말로 여기지 마십시오. 요즘은 부모들이 결혼을 앞둔 자식들에게 후에 손주를 얻게 되면 돌봐주지 않을 것을 다짐받는다고까지 합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무한책임의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어린아이는 때론 어리석고 고집스러우며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섬김이란 것은 고상하고 품위 있는 윗사람에 대한 나의 겸손한 태도가 아니라 나와 도무지 맞지 않고 내가 희생해야만 하며 아무런 보상도 요구할 수 없더라도 그래도 섬기는 헌신의 결단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기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하나님은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오시는 하나님을 향해 마중 나가는 도상(途上)의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느 시대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기뻐합시다. 이사야가 전하는 말씀대로 오시는 하나님을 향해 가는 길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꽃길이 될 것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께 구속받는 자만이 걷는 길이니, 주의 인자하심을 맛 본 우리들은 하나님의 속량하심을 입은 사람답게 이 길을 의연(依然)하게 걸어갑시다. 사람의 악에서 비롯된 허탄한 말을 버리고 세세토록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진심으로, 전심으로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며 삽시다. 서로의 모남으로 아프고, 서로의 부족함으로 지칠지라도 그러니까 더욱 서로를 섬기며 삽시다. 그 길을 걷는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요, 그 길을 걸으며 보게 될 하나님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우리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비록 나그네 길이나, 향방(向方)없는 길이 아니라, 이 길은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길이며, 이 길 끝에서 사모하던 주님을 만나 뵐 것이니 힘들어도 아름다운 그 꽃길을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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