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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대림절(3-2) - " 기다림은 믿음입니다. " / 김영봉목사

관리자 2018-12-14 (금) 09:11 5년전 2547  


본문) 3:19~33 1:68~79 6:9~20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은 무거워지고, 귀는 들을 것만 듣고, 눈은 멀리 두고 큰 것만 추구하며, 내면은 드넓은 바다처럼 다 받아들이되 그저 진중하게 유유히 흘러가는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점점 성숙해지고, 진지해 져서 거목처럼 강풍을 홀로 맞으면서 주변에는 바람을 막아주고, 땡볕을 홀로 받으면서도 더위를 가려주는 그늘 같은 삶이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은 굉장히 독특한데 어쩌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방법을 오히려 즐겨 쓰십니다. 우리 같으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필요할 때 즉시 공급해 주시거나, 속전속결로 응답하셔서 처리해주시거나 하면 속이 시원하고,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하고 감탄을 하면서 보다 잘 믿게 될 텐데 하나님이 잘 쓰시는 방법은 어쩌면 속터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즐겨 쓰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천천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급하고 빨리 판가름이 나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의 방법은 천천히 섭리하시는데 너무나도 천천히 역사해 가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없으면 전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나중에 가서야,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6:14)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 약속이 당장에 이루어지지는 않아서 아브라함은 편법을 써서 이스마엘을 얻었지만 갈등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이었고 조급함으로 인한 실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시대보다 훨씬 속도에 집착하는 속도 중독증에 걸려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아브라함 시대보다 더 천천히 역사하시는 걸로 체감될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빨리, 즉각 이루어지지 않으면 못 견디는 우리가 진정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다는 사실입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이나 역사 앞에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다림은 곧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한 때 실수는 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러기에 기다렸고 마침내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고 웃었습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면 웃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약속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6:15)

 

만약 우리가 전쟁의 참화 속에 있다면 속히 전쟁이 끝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를 보아도 전쟁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것이 당사자가 겪는 절망일 것입니다. 내가 고난 중에 있을 때 이 고난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어디를 보아도 끝날 것 같지 아니하기에 낙망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유다 민족은 바벨론과 전쟁을 겪었고 나라가 망하는 비운을 맞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으며 성전이 파괴되었고 삶이 극도로 피폐해 졌을 때 이 고난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어디를 보아도 구원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다행인 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고 믿고 기다린 것처럼 예언자를 통해서 받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3:22)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이 확신은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역사 속에서 검증된 소망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3:25)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이제는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3:26) 이제는 마지못해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찬송하며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으며 주께서 지금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을 믿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는 것(3:31-33)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기다립니다. 자신들의 참상과 고난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습니다. 조급함이나 원망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즐거움으로 내다보면서 기다립니다. 그들의 믿음이 너무나도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린다면 이것보다 허망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노벨문학상 작품인 고도를 기다리며는 오지 않는, 오지 않을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이야기입니다. 고도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구원일수도 희망일수도 해방구일수도 고통의 끝일수도 있습니다. 고도가 오지 않으면 유일한 구원책은 자살입니다. 그러나 자살은 택하고 싶지 않아서 고도를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고도는 오지 않습니다. 결코 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다림은 계속됩니다. 우리 인생이 이처럼 부조리하고 허망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제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반드시 다가오는 구원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예로부터 선지자의 입을 통해 약속된 구원을 기다렸습니다.(1:70)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1:73) 이들의 기다림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이 드디어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습니다.(1:69) 확실한 증거로 세례 요한을 먼저 준비시키셔서 구원의 길을 앞서 닦도록 하셨습니다. 원님이 행차할 때 먼저 나팔을 불도록 세례 요한에게 임무를 주셨습니다. 요한은 원님이 행차할 때 물렀거라하듯이 나팔을 불고 길을 내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렇게 길이 닦여지고 뚫렸을 때, 그 길을 통해 오셔야 할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행차하시면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이루어집니다.(1:77)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 평강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됩니다.(1:79) 세례 요한의 길닦는 작업은 그 뒤에 주님이 곧 반드시 오신다는 증거입니다.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스라엘은 오지 않을 허망한 분을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기다림은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기다릴 줄만 안다면 언젠가는 실제가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다리는 사람은 총명하고 복있는 사람입니다.

 

대림절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기다림의 자세와 기술입니다. 조급하면 하나님의 천천히이루어가시는 시간에 적응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원망이 앞서지만 믿음으로 기다리면 즐거움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적입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약속을 내 것으로 삼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복을 베풀어 주실 적절한 때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진정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우리의 기다림이 마주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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