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60:15-22, 눅 1:5-25, 갈 3:15-22
이사야 60장부터 마지막 66장까지는 포로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합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로 방치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잊으셨다고 포기하고 절망하였으나, 신실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버리거나 잊지 않으셨습니다.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4-15)
자기 태에서 난 젖먹는 자식을 잊지 못하는 것이 모성이지만, 그래도 행여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기 자식을 잊어버리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을 진데, 하나님만큼은 이 백성을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모성애보다 더 강한 사랑과 긍휼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의 현실을 잊지 아니할 것이며, 그 잊지 아니할 기억으로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이끌어 내시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이 60장 이후의 말씀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지난날의 뼈아픈 기억을 소환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백성이었습니까? 버림을 당하고 미움을 당하고 그들에게 가는 자들이 없는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60:15)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구원자, 구속자, 전능자가 되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60:16)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버림을 당하고 미움을 당한 이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셨는데 그 중심에는 화평과 공의가 있었습니다. 화평을 관원으로 삼고 공의를 감독으로 세워 다스리는 나라로 회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히 옛 모습의 이스라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화평과 공의로 다스리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화평이 관원이 되고 공의가 감독이 되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첫째, 그 나라는 강하고 부요한 나라입니다.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사 60:17)
놋과 철과 나무를 금과 은과 놋으로 대신한다는 것은 풍요롭고 든든한 세상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화평과 공의로 다스리는 나라이니 버림받고 미움당하는 자가 없는, 나눔에 있어 소외가 없는 다시말해 모두가 복을 누리며 사는 공평의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연약함이 강건함으로 변하고,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고 그리고 궁핍이 부요로 변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불의에 의한 아픔이 없는 나라입니다.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사 60:18)
‘강포’는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름. 불의한 방법에 의하여 자행되는 압제. 육체적인 폭행이나 탄압은 물론 정신적인 압박까지를 포함한 말”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폭력이나 탄압이 아니라 불의에 의하여 자행되는 무지비하고 잔인한 폭력입니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도 포합니다. 여기서 화평의 관원과 공의의 감독은 일체의 강포를 물리치고 다시는 황폐와 파멸의 아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화평과 공의로 다스리시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성벽이 되고, 백성은 찬송을 부르면서 그들을 구원으로 지키신 성문을 출입할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빛이 되고 영광이 되는 나라입니다.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사 60:19-20)
화평과 공의가 사라진 세상, 다시말해 18절에서 보았던 강포가 지배하는 세상은 낮에 해가 있어도 어두운 세상입니다. 해와 달이 주야로 빛을 발한다 할지라도 그 빛은 어둠을 이기지 못하는 무용한 빛에 불과합니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참된 빛은 화평과 공의의 빛입니다. 화평과 공의가 충만한 세상이 광명의 세상인 것입니다. 마치 선지자 아모스가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고 외쳤던 것처럼, 해와 달이 없어서 세상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화평과 공의가 실종되었기에 세상이 흑암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화평과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니 다시는 해가 지지 아니하고 달이 물러가지 않는 영원한 빛을 발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밝은 세상은 바로 이스라엘의 슬픔이 끝나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라를 잃고 포로된 백성에게 하나님이 구속자로 임하시니 그 백성은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인데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사 60:22a)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b)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림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여호와가 속히 이루실 그 나라의 때”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화평과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하시고,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고 하셨으니,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누가복음의 본문은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낸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나타나 자식이 없었던 제사장 사가랴에게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눅 1:17)고 하였는데, 이는 말라기의 예언에 근거하여(말 4:5-6)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은 화평과 공의의 세상을 살아갈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흑암에 앉은 자요,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인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큰 빛, 곧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빛이 되셨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 4:16)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에서, 사도바울은 예언자를 통하여 주신 희망과 구원의 말씀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으로써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사도 바울이 말하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약속’이기에 후에 생긴 율법이 이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갈 3:17) 그리고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구원임을 말합니다. 따라서 죄 아래 있는 자들은 율법의 정죄를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갈 3:22)
서두의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버림과 미움을 당하여 버려진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이끌어 내시어 화평의 관원과 공의의 감독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에 살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화평의 관원으로, 공의의 감독으로 누구를 보내셨습니까? 그는 곧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평과 공의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강포가 지배하는 두려운 세상이 아니라, 생명의 빛이 충만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림절 첫째주일, 인간의 탐욕으로 다시 어두워진 세상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둠 속에서 영원히 빛나는 빛, 하나님의 빛, 구원의 빛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림절, ‘애드밴트’(advent)는 인간의 시간, 다시말해 물리적 미래(future)를 향해 달려가는 육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미래요, 인간에게로 다가오는 기다림의 미래입니다. 평화와 공의의 삶으로 대림절 절기를 지키며, 다시 오실 주의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