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40:1-11, 빌 4:4-7, 눅 1:57-66
1. 성탄이 다가오면 오래전 읽었던 한 이야기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도시의 유명한 미용사에게 마음 속 깊이 새겨있는 한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어느 평범하게 생긴 출산을 앞두고 있는 임산부였습니다. 배가 남산만 하게 해서 왔는데,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머리는 제대로 다듬지 못해서 자연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임산부가 와서 말하기를 머리를 예쁘게 다듬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출산을 앞둔 임산부들은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머리를 다듬을 생각을 하지 않는데, 이분은 오히려 더 예쁘게 해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2. 그 임산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곧 아기가 출산하는데, 세상에 나와서 처음 만나는 엄마의 얼굴과 모습이 예쁜 얼굴과 모습이었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작은 책에서 읽었을 때 웃으며 넘어갔는데, 시간이 가면서 그 엄마의 마음이 제 마음에 계속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3. 성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마음이 바로 그 마음이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10년 전, 5년 전, 아니 작년과 같은 익숙한 성탄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맑은 마음으로 준비하여 우리 가운데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감사하고, 이 기쁨을 이웃들과 세상에 나누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 우리 한국교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 교회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성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대림절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화려한 성탄 트리의 불들이 반짝이며, 신나는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던 도시의 거리에는 방역지침에 따라 상가 윈도우에 일찍 불들이 꺼지고, 찬바람이 불면서 고요하기는 한데 우울한 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5.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생산되고 주사가 시작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있지만, 하루 1000명의 확진자가 늘고, 앞으로 어떻게 진전될지 모르며, 이런 마스크 쓰고 제대로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방역당국의 말을 들으면 우리 마음은 우울하기만 합니다.
6. 무엇보다도 이 땅에 참 기쁨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온 세상과 나누며 감사하면서 기뻐하며 경배해야 하는 성탄예배를,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온전한 성탄예배를 드리지 못할 것 같아 아쉽고 마음이 불편하며 우울합니다.
7.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 아니어도 요즘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특히 젊은층 가운데 우울증 환자가 많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희망이 무너진 곳, 끝에는 절망이 있고, 절망이 계속되면 우울증이 됩니다.
8. 단테의 신곡은 천국과 지옥을 자세히 표현하고 있는데, 지옥으로 가는 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이 문을 들어가는 자는 희망을 버려라. Abandon all hope, who enter her” 지옥을 다른 말로 하면 희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지금 우리의 세상이 희망의 빛이 흔들리고 있고, 희망이 희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과 몸이 아프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9. 대림절 넷째주일에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낙심과 절망 그리고 우울함을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서신서는 절망과 우울함을 가질 수 있는 감옥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복음서 말씀은 강력한 세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로마의 식민지배 속에서 낙심과 절망의 삶을 살고 있었던 유대 땅에 참 희망과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준비했던 세례 요한의 탄생에 대한 말씀입니다.
10.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하고,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힘들고 어려운 역사를 보내게 됩니다. 587-538년, 거의 50여년을 바벨론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바닥일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이민 2세대에 가서는 바벨론의 지도자들이 나오고, 이스라엘에 파견되는 지도자들도 나오게 됩니다.
11. 그런데 그들은 고향을 떠나 바벨론에 살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절망이 아니라, 입을 것이 없어 낙심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아픔과 낙심이 있었습니다. 자기 민족의 땅 예루살렘의 성이 허물어지고 성벽으로, 불타버린 성문으로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마음 아픔이었습니다.
12. 이런 바벨론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절망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무기력에 빠져 있는 주님의 백성들을 위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13. 주님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14. 아무리 바벨론에 있어 힘들고 어려워도, 무기력하게 지낸다고 하더라도, 바벨론 민족에게 멸시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아라. 왜? 세상의 힘은 풀과 같이 마르고, 꽃과 같이 시들게 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는 영원하기 때문에 절망하지 말아라, 희망을 가져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5. 그 주님의 말씀, 그 주님의 희망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참다운 위로였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거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힘껏 높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라” 말씀합니다.
16. 이 위로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 좋은 소식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들은 세상의 힘과 영향력 앞에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야 하는 거룩한 책임이 있습니다.
17. 사도 바울은 평생 주님을 위해 일하는 동안 고난을 당했습니다. 서른 살까지는 승승장구, 전도 유망한 청년 사울이었습니다. 좋은 가문에, 좋은 학벌에, 좋은 배경에,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지금 말하면 국회에서 인정받고 있던 차세대 지도자입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이 청년을 통해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그 일을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18. 그가 교회를 무너뜨리러 다메섹에 가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역사적인 만남이 그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는데, 그 이후에는 남은 여생을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19. 유대교지도자들이 볼 때 사울은 변절자요, 배신자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죽이려 하고, 방해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힘듦, 고통이 있었겠습니까?
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모든 절망 가운데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이때 그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위로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진정한 위로가 있었는데, 사람의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였습니다.
21. 고후1:3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며,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22. 사도 바울이 절망 가운데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위로의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위로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3. 그런 존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절망과 낙심이 가득한 지하 감옥에서 그는 오히려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라고 말합니다.
24.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과 마음을 지키신다고 말씀합니다.
25. 그런 사도 바울의 고백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환난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으니, 그 받은 주님의 위로의 은혜를, 주위의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 슬픔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6. 이 위로가 고난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역사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는 내 자신의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게 해주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는 다른 고난당하는 사람들,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 낙심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고난을 이겨나게해 주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27. 왜, 우리의 하나님이 위로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환난 가운데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28. 많은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끼친 헨리 나우엔이라고 하는 교수는 예일대학교 교직을 내려 놓고, 정신박약아 공동체에 들어가서 그들을 섬기다가, 1996년 9월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말했습니다.
29.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뭇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제자들의 배신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살이 찢겨지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과 같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30. 그러나 그는 심한 상처를 받았으나 당신이 받았던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학하지 않았으며, 상처받은 사람들을 가슴에 끌어앉고, 치유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상처를 체험하신 분이, 온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는 위대한 치유자가 되신 것입니다.
31. 이 위대한 상처받은 치유자 wounded healer는 상처받은 인생을 이해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의 낙심과 절망 가운데 위로해 주실 수 있습니다.
32. 우리는 우리는 대림절 넷째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슬픔과 아픔과 절망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 위로를 주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참 위로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주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3. 주님의 몸된 교회는 이 희망의 위로를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능력의 위로를 전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이미 위로의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기에, 이제 우리가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말이나, 세상의 교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함,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그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34.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 속에서 우울해하고, 낙심하고 있는 믿음의 가족들과 우리 이웃 모두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교회, 목회자, 교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5. 그 위로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성탄을 세상에 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