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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창조절(4-2) - " 어둠의 시대를 이기는 지혜 " / 김진수목사

관리자 2018-09-21 (금) 19:15 5년전 4843  

본문) 대하1:7-12/ 마7:1-12/ 살전5:12-28

 

요즈음 아이들의 체격이 커졌습니다. 키도 크고 몸집도 커졌습니다. 그런데 체력은 약해졌습니다. 턱걸이를 못하고 오래 달리기하면 크고 무거운 몸집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체력만 약해진 것이 아닙니다. 잘 참지 못하고 어려운 일을 잘 견뎌내는 정신력이 약합니다. 힘든 일에 도전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의지가 약해보입니다. 

현대는 지식사회입니다. 얼마나 풍요한 지식이 많은지 모릅니다.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흘러나오는 지식들이 홍수를 이룹니다. 자판만 두드리면 우리가 원하는 기본 정보나 지식을 당장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이 많은 시대에 정작 참 지혜는 고갈되고 메말라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지적과 분석은 넘쳐나는데 그것을 해결할 지혜는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지식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정작 아이를 바르고 온전하게 키우는 지혜로운 엄마는 많지 않습니다.

 

아는 지식과 구하는 지혜(대하1:7-12)

 

지식은 어디에나 많습니다. 언제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단 하나입니다. 많은 아이를 잘 키우는 지식은 산처럼 많습니다. 그러나 내 아이에게 딱 맞는 지혜는 단 하나입니다. 아이들을 잘 양육하는 지식은 언제나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아이가 오늘 당면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는 단 한 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땅에서 얻지만 지혜는 하늘에서 얻습니다. 지식은 사람에게서 받지만 지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 지식은 한 번 받으면 평생가지만 한 번 받은 지혜는 더 이상 지혜가 아닙니다. 오늘 각 사람에게 필요한 지혜는 오늘 새롭게 받아야 합니다. 어제 받은 지혜는 어느새 낡은 지식이 됩니다. 은혜만 매일 받는 게 아닙니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지혜는 매일 매 순간 매 사건마다 그 일에 필요한 지혜를 하나님께 받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먼저 기드온 산당(번제단이 있는 곳)에 가서 일천번제(一阡燔祭)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대하1:7-10) 솔로몬은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공의롭게 재판하기 위해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11절) 그러나 솔로몬은 이방의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면서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졌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과거에 그 많던 지혜는 이미 굳어진 지식이 되었고 매 순간 빛나야 할 지혜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분별의 지혜 - 무엇이 옳은가?(마7:1-12)

 

지식(마다)은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말합니다. 지식은 무엇이 사실인가를 묻습니다. 그러나 지혜(호크마)는 사물에 대한 올바른 관찰 뿐 아니라 사건에 대한 정확한 판단, 도덕적, 신앙적 분별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지혜는 무엇이 옳은가를 묻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물감이나 붓, 캔버스가 있어야 는데 그 재료가 지식입니다. 그 재료를 가지고 어설픈 그림이나 사람을 충동질하는 선동적인 그림도 그릴 수 있으며 동일한 재료를 가지고 사람에게 큰 영감을 주는 가장 탁월한 작품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지식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악하고 파괴적이며 불의한데 쓰이는 나쁜 지식이 있고 사람을 건지고 행복하게 만드는 복된 지식이 있습니다. 동일한 지식으로 인간을 살리고 위로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지혜입니다. 

 

복음서 본문은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마7:1-2) 여기에서의 비판(크리노)은 “최종적 판단, 심판, 정죄”를 의미합니다. 자신이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한 사람에 관해 최종적으로 심판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 대한 최종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의 권한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과 사람을 비판(최종적 판단)하도록 지식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을 함께 정탐한 12정탐꾼들은 매우 상반된 보고를 합니다.(민13:25-33) 어떻게 동일한 땅을 정탐했으면서도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10정탐꾼들은 자신들이 본 땅을 악평하여(32절) 보고합니다. 그곳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 신장이 장대한 자손, 네피림의 후손 거인들이 있는 땅이라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땅 거민을 “크고 장대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넘어 자신들을 “메뚜기”로 판단(크리노)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갈렙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동일한 “크고 장대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 그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크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우리가 먹이(메뚜기)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밥)먹이라”(9절) 그래서 그 땅을 정복했습니다. 우리는 자꾸 힘들고 어려운 현실 앞에 선 연약한 우리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크리노)하여 절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어려운 현실을 넘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약속을 바라봅니다. “나쁘고”, “어렵고”, “불가능한” 현실을 보고 “안 된다”, “망한다”는 ‘크리노’ 대신 모든 역경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보며 소망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이 역사의 어둠을 넘어 환한 빛으로 다가오시는 분을 보아야 합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소망의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불행입니다.

 

깨닫는 지혜 – 무엇이 중요한가?(살전5:16-18)

 

지식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기와 환난 앞에서 그 위기를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지식은 어떻게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가? 손을 씻고, 영양을 공급하고, 편히 쉬고, 어떻게 면역력을 높여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어떻게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 어떻게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가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 고난과 위기 속에서 그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그 어둠과 절망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항상 기뻐할 때”(16절) 옵니다. 고난을 거부하고 원망하고 도망가고 회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할 때 뿐 아니라 고난까지도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는 이 육체의 가시가 자신에게서 떠나가도록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시는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바울은 그 가시를 인하여 교만에 빠지지 않고 겸손하게 되었으며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라는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고후12:7) 할렐루야! 그 고통을 통해 교만을 이기는 힘과 지혜를 얻었습니다.

지혜는 “쉬지 말고 기도할 때”(17절) 얻습니다. 지식은 고난을 피하고 고난을 이기는 방법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고난 속에서 복을 받습니다. 고난을 통해 기도함으로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는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 내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까지 십자가 앞에서도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 마침내 그 십자가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를 이루기까지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

지혜는 “범사에 감사할 때”(18절) 옵니다. 지식은 선악을 구별합니다. 내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합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좋은 것에서 나쁜 것을,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장점에서 단점을 발견하여 항상 겸손하고 자신의 단점에서 장점을 발견하여 낙심하지 않습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여 감사하고 평안 속에서 위기를 발견하여 경성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여 감사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적용의 지혜 – 무엇이 알맞은가?(살전5:14-15)

 

지혜는 때와 장소를 가리고 사람에 따라 분별할 줄 압니다. 좋은 것이지만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같은 말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약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독이 됩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14상) 

 

마땅한 의무에서 벗어나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게으른 자에게는 ‘따끔한 권계’가 필요합니다. 이미 하나님 품에 안기신 전경연 교수님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강의도 조그만 소리로 하셨지만 리포트나 과제물을 내주실 때도 강의 계획표대로 제출해 줄 것을 ‘조용히’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짜를 어긴 과제물은 ‘조용한 어조’와는 달리 어떤 핑계도 용납하지 않고 엄격하게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게으를 수 없었고 단 하루도 감히 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자들은 격려해야 합니다. 이들은 오히려 그 엄격함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경연 교수님께 제출날짜를 어긴 과제물을 거부당한 쓰라린 경험도 있지만 동시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격려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매월 지급해 주는 외부지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추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많은 어려움과 유혹이 있었지만 그 일이 얼마나 큰 격려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또한 힘이 없는 자들은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찾아가 주고, 이끌어주고, 스스로 일어 설 때까지 곁에서 어린 아이처럼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는 것과 누구에게든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14하-15절) 

 

종말의 지혜 – 무엇이 우선적인 것인가?(살전5:12-13)

 

참 지혜는 우리 역사의 마지막 종말의 때를 알고 사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 서보아야 참으로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이 우리의 목전에 와있음을 알아야 선한 것, 옳은 것, 참 좋은 것이 보입니다. 무엇보다 종말의 때가 가까운 것을 알고 사는 사람은 무엇이 우선적인 일인지를 알고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운 줄 모르면 당장 급한 일을 따라갑니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힘든 일은 뒤로 미루며 삽니다. 그러나 종말이 가까움을 아는 사람은 아무 일이나 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일, 우선적적인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삽니다.

 

우리 시대에 무엇이 보다 더 우선적인 일일까요? 사도바울은 성도들을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살전5:12-13) 선한 영적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세속화된 시대일수록 거룩한 믿음의 지도자들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다 곁길로 걸어가도 하나님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거룩한 선지자들을 남겨두셨습니다. 온 땅에 어둠이 짙어도 눈을 들어 보면 선한 목자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친한 사람, 내게 잘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성도들을 사랑하며 의의 길로 인도하는 지도자들의 손을 잡아야 할 시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게으른 자, 약한 자, 힘없는 자들을 돌아보며 붙들어 주며 격려하고 오래 참아 선을 행해야 합니다.(14-15)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23절)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존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 살아야 합니다.(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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