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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8-1) - " AC를 준비하며 " / 송종근 목사 (종교개혁주일, 이단경계주일)

관리자 2020-10-23 (금) 09:27 3년전 885  

본문) 출 33:18~23, 롬 11:33~36, 눅 10:21~24

 

  사전적으로 팬데믹은 세계보건기구의 전염병 경보 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인 6단계를 일컫는 말로, 전 세계적인 전염병의 유행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팬데믹은 13~14세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입니다. 이 흑사병으로 당시 유럽 인구의 1/3정도가 죽었다고 하니 당시의 피해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이 팬데믹의 영향으로 유럽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교회가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중세 카톨릭 교회가 흑사병을 단순한 불신앙과 마녀의 소행으로 취급하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식은 흑사병의 와중에 모든 성도들을 성전으로 모이게 했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송함으로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그들의 행동은 더 큰 유행을 가져왔고, 이는 부패하고 타락했던 중세 교회의 붕괴를 가속화 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팬데믹을 계기로 신본주의 사회였던 유럽의 사회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성과 인간에 대해 관심을 두는 르네상스 운동과 종교에 밀려 등한시 되던 과학 기술이 중용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흑사병이라는 최초의 팬데믹은 중세의 사회체제를 무너 뜨리고, 새로운 체제가 세위지는 계기가 되었음을 역사는 증거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때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19의 팬데믹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세 본문의 말씀은 코로나 19의 팬데믹 하에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변화되고, 나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것인가 고민하고, 도전받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살펴 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모세의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의 언약을 받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으로 우상을 만든 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만들어 섬긴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레위인들을 통해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곤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 이상 동행하지 않겠다 선언하시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슬퍼했다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 앞에 중보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이 응답하사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한술 더 떠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약속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마치 그 옛날 처음 하나님께 소명을 받던 그 모습처럼, 오늘 모세는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의 영광을 보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실체,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 달라는 요구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그 모습을 백성들에게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천둥과 번개로, 때로는 안개와 구름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을 뿐 그 얼굴을 직접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과의 대면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모세는 그 불문율을 깨뜨립니다. 마치 그 옛날 하나님의 명령 앞에 ‘증거를 달라’,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항변하던 그 모습처럼 오늘도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실망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걱정하는 마음에 그들과 동행하지 않겠다 선언하셨다가 모세의 기도로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증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런 모세의 무리하고, 무뢰하기까지 한 요구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점입니다. 물론 모세의 요구대로 당신의 영광을 그대로 드러내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흔적을, 하나님 영광의 잔상은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 오늘 말씀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찮은 인간의 요구에 친히 그 뜻을 바꾸어 응답하셨다는 자체가 참 놀랍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고 있는 모세를 아끼사 그를 친히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사 모세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왜 하나님은 모세의 이 무리한 요구까지 수용해 주셨을까요? 오늘 모세의 이 요구가 모세의 개인적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모세가 이처럼 무리한 요구를 한 배경에는 아직도 믿음이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배려가 깔려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경험을 한 이스라엘이었지만 아직도 연약한 믿음 가운데 살다 보니 모세가 자리를 비우자 금방 그 신앙이 흔들리고, 헛된 우상을 섬기는 과거의 버릇이 튀어나왔음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굳건한 믿음의 반석에 서게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라 모세는 판단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모세는 철저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과 관점에서 하나님 앞에 무뢰하고,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은혜와 자비를 베푸사 모세의 요구를 받아주셨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모세의 중보와 무리한 요구는 믿음이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 하셨던 그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어리석은 백성들을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그 마음이 곧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께 민족을 위해 중보하고 보증을 요구하는 모세의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는 코라나 팬데믹 이후 위기의 한국교회가 기억해야할 대목입니다.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가 오늘 모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것은 오늘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응답이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의 말씀은 예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이스라엘 각지에 파송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70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전권을 부여받고 이스라엘 곳곳을 돌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곤 돌아와 예수님께 자신들이 경험했던 놀라운 역사에 대해 보고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을 칭찬하시며 그 모든 역사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에 기뻐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성령이 주시는 기쁨에 감격하신 예수님의 감사와 영광의 기도입니다. 주목할 것은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감사하면서 예수는 자신이 파송한 70명이 제자들을 어린 아이들로, 당시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부했던 자들에 대해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4절에서는 이들을 콕 집어 임금과 선지자라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며, 자랑하던 이들이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계시와 영광이 당시로서는 어린 아이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했던 70명의 제자들에게는 나타나고, 지혜롭다 자부하며 그 누구보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다 자부하던 선지자와 임금들에게는 감추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가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드러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앞서 살폈던 구약의 말씀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 있는 지점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굳센 믿음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간구는 간접적으로나마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응답으로 이어졌음을 출애굽기는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오늘 70명의 제자들에게서 다시 증명됩니다. 연약한 믿음의 70명의 제자들, 그러나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했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와 역사는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믿음의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들, 순종하는 자들의 것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반면 자신들의 지식과 지혜를 과신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리스도를 불신하고 부정하던 선지자와 임금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하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아래 나타나고 주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그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만 허락된다는 점을 오늘 복음서는 보여줍니다. 

  이는 코로나 19의 유행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를 향한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생존의 위협을 받을 때 일부 교회들은 방역에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음모론을 주장하고, 방역 당국에 대해 불신을 조장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들의 현실이 오늘 예수님의 지적과 같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존재요, 흑사병이 유행하던 때 질병에 대해 무지하여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기도와 찬송을 강요했던 타락한 중세교회와 같은 모습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는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부침을 겪는 이 때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를 오늘 성경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 시기 우리가 집중할 것은 종교권력자들의 주장이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며, 기업처럼 대형화하고 구조화된 교회들의 구호화 되고, 상품화된 이론이나 체계가 아닌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전한 마음으로 응답했던 제자들의 정신이요, 초대교회의 정신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의 말씀은 교회들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찬양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섭리는 이해하고자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의 사건임을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의 얕은 지식과 지혜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와 뜻을 헤아릴 수 없다 고백한 바울은 지혜와 능력이 부족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이끄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거룩하신 말씀을 통해 증거된 하나님의 계획대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사 구원의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은 고백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사도 바울의 찬양의 이면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이 세상을 위한 구원의 도구로 선택한 존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제사장 나라로 삼아 온 세계를 구원하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잘못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살아가자, 하나님은 그 자리에 이방인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증거케 하셨습니다. 그러자 새로운 믿음의 씨앗으로 선택받은 일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폄하하고, 비난하며, 무시하는 일들이 발생하자 바울은 접붙임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방인들도 거룩한 영광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동안 구원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잊지 않았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들을 우선 순위에서 잠시 뒤로 미루었을 뿐 그들도 구원의 분명한 대상이라는 것이죠. 때문에 연약한 인간된 우리들의 본분은 거룩하신 구원의 섭리에 대한 찬양과 감사이지, 교만하여 잘난 체 하거나 다른 이들을 정죄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오늘 말씀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비롭고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섭리는 이렇다 저렇다 예측할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주의 뜻을 헤아려 그 뜻을 드러내는 도구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중보자 모세를 통하여, 감사와 영광을 올린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놀라운 섭리로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바울을 통하여 팬데믹 이후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팬데믹의 위기 교회가 할 일은 불필요한 불안을 조장하거나, 전염병 확산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아닌 보다 명확한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보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더 많이 헌신하고, 더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최근 일부 교회들이나 지도자들이 보인 행태가 결코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부르신 종들을 통하여 이 세상 모두를 거룩한 구원의 영광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부름 받은 우리들의 본분은 그 거룩한 구원 사역의 조력자로서, 주인공으로서 살아가는 것이지, 방해꾼이나, 훼방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죠. 1차 팬데믹의 결과 권력에 안주하고, 타락한 교회는 종교개혁이라는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옥석을 가르고, 교회의 갱신으로 인도하여,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이끌었음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코로나 19의 팬데믹 앞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경험하는 천국의 주인공으로 살 것인가? 선택을 요구합니다. 세속적인 이익과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이용하고, 선택적으로 말씀을 이용하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할 일은 이 세상을 위해 중보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실 때 ‘아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소서 듣겠나이다’ 응답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며, 성도의 본질입니다. 우리에게 원하시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들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그 뜻대로 증거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입니다. BC(before corona)에는 비록 많은 부분 부족했을지라도, AC(after corona)에는 더 적극적으로, 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교회로 거듭날 때, 이 위기는 변하여 새로운 부흥의 기회가 될 것이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거룩한 주의 도구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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