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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창조절(4-1) - "지혜의 소리를 들으라" / 김진철목사

관리자 2018-09-20 (목) 21:45 5년전 4759  

본문) 대하 1:7~12, 살전 5:12~28, 7:1~12

 

얼마 전 제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열두발자국(정재승지음, 어크로스)이라는 책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이 책에서 정재승교수는 창의성에 대해 논의하면서 지능과 창의성을 구분 했습니다. 그는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이고, 창의성은 지식과 절차를 모를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김용운 교수도 한 적이 있습니다.(엄마의 산수1,2) 그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어릴 때는 산수와 수학에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세계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진보하지 못하는 이유를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면서 설명했습니다. 지식은 정보나 공식을 익혀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그 지식을 적용하고 응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혜의 그릇이 작은데 지식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지혜의 그릇은 어릴 때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 성경을 많이 암송하므로 지혜의 그릇이 커서 뛰어난 응용과학자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정보의 홍수시대요, 숱한 지식을 쌓아가면서도 삶의 작은 문제 앞에 쩔쩔매고, 인간관계를 풀지 못하고, 통찰력과 분별력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에 지혜의 보고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들려오는 지혜의 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세 본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지혜의 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솔로몬을 통해서 왜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지를, 바울의 권면을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되는 교회를 든든하고 평안하게 세우는 지혜의 소리를, 그리고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예수님이 들려주는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은 왜 지혜를 구했는가? - 하나님의 주권과 청지기의식

 

역대하 1:7-12의 말씀과 병행되는 말씀인 열왕기상 3장에는 지혜와 지식”(대하1:10) 대신에 듣는 마음”(왕상 3:9)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지혜는 듣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듣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는가?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과 솔로몬의 대화를 통해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확실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1)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대하1:8)

2) 왕의 직무를 행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대하1:8-9)

3)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사람들이다.(대하1:9)

4) 하나님이 맡겨주신 백성들을 올바로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할 수 있다.

다스리는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대하1:10)

 

솔로몬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신()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인식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청지기로서 백성들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속에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잠언 1: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고백과 우리의 청지기됨을 창조절기에 다시 한 번 확인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구하도록 힘씁시다.

그러면 교회와 세상의 청지기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무엇인가? 바울의 권면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듣고,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든든하고 평안하게 세우는 지혜를 듣자(살전 5:12-28)

 

교회는 종말론적인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세상의 다른 모임들과 구분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깨어있게 하고, 늘 우리를 새롭게 변모시켜 나가게 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주님의 나라를 세상에 선포하는 교회가 든든하고 평안하게 서서 그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지혜를 바울은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살전 5:27).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보내는 이 편지는 모든 믿음의 형제들이 읽고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 교회가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성도들이 바른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의 힘은 말씀과 성도들의 변화된 삶, 그 위에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울은 아주 단순한 말로 명쾌하게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십시오.

지체 가운데,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하십시오.

공동체를 힘들게 하거나 시험 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훈계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표지를 확실히 가지십시오.

기쁨, 감사, 기도의 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그리스도인 되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성령의 은사들이 소멸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바울이 들려주는 지혜로 우리 교회를 세워갑시다.

성령께서 우리 교회를 든든하고 평안하게 하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황금률을 넘어서는 이웃 사랑(7:1-12)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드는 예수님의 지혜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7:12)

 

우리는 이 말씀이 너무 귀하여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황금률에 따라 산다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황금률을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마태 7,12)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유사한 종교적인 가르침들을 읽거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랍비였던 힐렐(Hillel)"너에게 증오스러운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도 "너에게 행해지기를 원치 않는 것은 타인에게도 하지 말라."고 교훈을 했습니다. 공자도 '너 자신에게 행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타인에게도 행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동서양의 종교나 철학자들이 인간관계의 좋은 덕목으로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다르다는 것을 애써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교훈들은 나쁜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가르침이고, 예수님은 그들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고 가르친 것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다른 종교나 도덕적인 가르침은 문제를 부정적으로 접근하였지만, 예수님은 이와는 달리 긍정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황금률이 당시 사회에 지배적이던 황금률 보다 수준이 높은 가르침이라 했습니다.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의 말씀과 예수님의 다른 가르침에 비추어보면, 예수님의 말씀과 그런 교훈들의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교의 황금률인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를 인용하신 후 "너희들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마태 5,43-44)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단순히 황금률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가르침이었던 황금률을 부정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넘어선 가르침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황금률 다음에 예수님이 반어적으로 물어보는 말씀이 있습니다.(6:31-34)

첫째,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둘째, 너희가 만일 자기한데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셋째,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 준다면 칭찬 받을 일이 무엇이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 해 주는 사람에게 잘해주며, 갚을 능력 있는 사람에게 꾸어주는 일은 황금률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일들은 '죄인들도 할 수 있는 일'(루가 6,32) 이라고 말하셨습니다. 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에게 잘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질문들은 뒤집어 보면 황금률대로만 행동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이어 네 가지를 말합니다.(6:35-36) 첫째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 둘째 남에게 좋은 일을 해 주라는 것, 셋째 되받을 생각을 말고 주어 주라는 것, 넷째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6:35) 라고 약속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이보다 더 명예로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황금률을 넘어서 이웃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을 담대히 선포하고, 우리가 청지기임을 고백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시다. 교회를 든든하고 평안하게 세우는 지혜를 따라 교회를 멋지게 세웁시다. 약육강식과 경쟁의 논리 속에 거칠어지는 사회를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약한 자를 품어 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갑시다. 원수까지도 사랑으로 감싸 안아 막힌 담을 허물고 평화를 이루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지극 높으신 하나님의 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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