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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창조절(3-2) - " 새 사람은 거룩해야 합니다.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18-09-14 (금) 14:06 5년전 4681  

본문)  사 55:6-13, 마6:5-15, 벧전1:13-21

 

5시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4시10경에 집을 나섭니다. 새벽에 만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승강기 안에서 벌써 꼭대기 층에서부터 내려오는 우유배달하시는 아주머니를 만나거나 아니면 아파트 앞에서 짐을 챙기시는 아저씨를 만납니다. 목사보다 열심히 새벽을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인지 모릅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돌아옵니다.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소망하는지 모릅니다. 새벽기도를 쉬지 않는 나이든 권사님보다 더 많이 새벽을 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삶의 목적과 이유가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들이 당면한 과제는 교회가 이 악한 어둠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목적과 이유를 갖는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가 세상을 너무도 닮아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과 동일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소망과 목적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존재의 이유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헌신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하여 헌신하느냐 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소망하느냐 입니다.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느냐 입니다. 

 

교회의 세습과 하나님의 거룩

 

거룩(카도쉬/ 하기오스)은 타락한 세상과의 구별됨입니다. 세상과의 분리요 다름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 “…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 20:26)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의 땅 갈데아 우르에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법을 주셔서 타락한 가나안 주민들과는 다르게 구별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의 목적은 “거룩”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의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빛처럼, 소금처럼 살아가는 것,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며 사는 것입니다. 맛 잃은 소금은 쓸모가 없습니다. 꺼져가는 불은 자욱한 연기만 내뿜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한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가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 교회는 교회성장의 대표적인 본보기로 칭송을 받아왔고 한국교계와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쳐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정년퇴임을 한 담임목사의 후임을 정하면서 가족 간 세습을 금하는 교단의 ‘세습금지법’의 본질과 정신을 부정하고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었습니다. 지금 그 교회가 소속된 총회는 이 문제를 바르게 처리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에 있고 그동안 교회에 별 관심이 없었던 이 세상 사람들이 그 교단 총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아직 도상에 있는 교회요 주님이 머리되신 거룩한 교회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실수도 있고 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자신의 죄가 드러날 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자신이 죄를 죄로 인정하고 그 불의에서 회개하고 돌이킬 때 바른 교회입니다. 만일 교회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고 덮어버리는 순간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 어둠의 세상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불법을 저지르고, 죄를 범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순진한 것입니다. 오히려 편법을 동원하고 억지로 법해석을 하고 아예 법을 바꿔서라도 자신의 죄악을 합법화합니다. 모든 방법과 힘을 사용해서 자신이 법을 다스리는 자가 되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세상 사람들이 그동안 해왔던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불행한 것은 많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처럼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느새 악한 어둠의 세상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버리고 정치적인 힘으로 다수의 힘을 빌어 불법을 합법화하거나 혹시라도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한 또 다른 편법과 방법을 찾는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교회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드는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제 세습의 문제를 야기한 한 대형교회의 문제는 더 이상 그 한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온 세상의 이목이 집중하는 한국교회의 전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와 그 교회가 속한 교단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 세상이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하여 잘못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덮고, 합법화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불법을 가리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공의롭게 이 세상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의 세 본문은 교회가 걸어가야 할 거룩한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거룩한 뜻(사55:6-13)

 

이 땅에서 교회가 걸어가야 할 첫 번째 길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즉 땅에 속한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11절)을 이루며 사는 것이지요. ‘악인’, ‘불의한 자’는 드러난 악한 행위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없이 사는 자, 하나님을 떠난 자를 의미합니다. 악과 불의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맺히는 열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는 자,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가 거룩한 자입니다.(6-7절)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자만이 자신의 뜻과 다르고 높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뜻에 순종하며 살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뜻과는 다른 하나님의 뜻입니까? “우리생각과는 다른 뜻”이 하나님의 뜻입니다.(8절) 한 선배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남들이 다 가고 싶지 않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그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이지요! 힘들고 손해 보는 일이지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원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는 반하는 일일 때가 많습니다. 죄에는 언제나 “낙”(樂)이 있습니다. 저절로 되고 쉽고 즐겁습니다. 지옥은 애써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지옥 갑니다. 죄는 애써서 수고해서 짓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말은 그냥 술술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처럼 “높은 뜻”(9절)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너무 높아서 하늘처럼 높습니다.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수고나 노력으로는 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애써서 할 만한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만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싸워야 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이룰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낼 수 있습니까? 어떻게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교회를 세워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손으로 수고로도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뜻과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뿐이요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11-12절)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열매가 있고 성취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만이 결실하고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열매가 없습니다. 도중에 무너지고 사라집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이야기(His Story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만큼 손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만큼 돌아가는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만큼 소중한 기회를 상실합니다.

 

인간의 욕망과 거룩한 소망(벧전1:13-21)

 

이 땅에서 교회가 걸어가야 할 두 번째 길은 “거룩한 소망”을 바라보며 걷는 길입니다.(13, 21절) 이 세상의 소망은 “사욕”(14절)이요 눈에 보이는 “외모”(17절)이며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18절)이요 “은, 금처럼 없어질”(18절) 세상의 부귀영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라야 할 참 소망은 우리를 사랑하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20절),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19절,) 그리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21절), 무엇보다 심판 주로 임하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13절)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영생의 소망이시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믿고 바라는 것이 참 소망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예수님 아닌 다른 소망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저 세상을 소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은 이 세상 같으나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아니라 진주 문이 있고 황금 길이 있는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 소망은 보석천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천국이 예수님이 계신 곳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 곁에 오신 분입니다. 항상 이 땅에 사는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마침내 심판의 주로 다시 우리 곁으로 오실 분이십니다. 우리는 저 천국을 사모하나 예수님은 항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사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를 고백하며 이 땅에 예수님과 함께 임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3:16) 하나님은 창조하신 이 자연 만물과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버리지 않고 다시 새롭게 거듭나게 하시고 새 피조물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이 모든 만물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활의 몸으로 새롭게 하시고 이 세상을 새 하늘 새 땅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십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가 계신 곳, 그가 통치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인간의 소원과 거룩한 기도(마6:5-15)

 

주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위한 기도, 주의 백성들의 기도입니다. 이 세상의 욕망과 우리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와는 그 근본이 다른 기도입니다. 열심 있는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도의 목적과 이유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올바른 기도, 거룩한 기도, 이 세상 백성들과는 다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기도를 알려 주셨습니다. 

 

주기도는 사람에게 보이는 위선적인 기도가 아니라 골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의 기도입니다.(5-6절) 

주기도는 이방인처럼 오래 기도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중언부언 기도가 아니라 진실한 기도입니다.(7-8절) 

주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9절) 

주기도는 우리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기도입니다.(9절) 

주기도는 이 세상나라나 저 세상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구하는 기도입니다.(10절) 

주기도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입니다.(10절) 

주기도는 쓰고 먹고 남아 쌓아놓을 만큼 많은 양식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주기도는 내 죄가 사실은 하나님께 사함 받은 만큼 이웃을 용서하며, 이웃의 죄를 용서한 만큼 용서받으며, 용서받는 것과 용서하는 것이 하나임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주기도는 사람이나 환경을 통해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게 넘어지지 않도록, 그 모든 것을 이기도록 구하는 기도입니다. 

주기도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아버지께 영원히 있도록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기도가 “내 기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기도가 “저 세상을 소망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의 문을 열고 주기도문을 따라 기도하며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마쳐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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