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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4-1) - " 왜 돌아서지 못하는가?" / 김진철 목사

관리자 2019-09-19 (목) 20:51 4년전 2022  

본문) 30:1-5, 1:3-14, 12:22-34


창조절 넷째주일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가? 두 가지 신문기사를 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는 불타는 아마존이라는 기사입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은 1960년대 후반 기후변화로 남측 초원지대인 사헬지역으로 100남진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헬지역에서 60만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사하라 사막은 1980년대에도 남진하면서 인종청소로 악명 높은 다르푸르 분쟁을 촉발했습니다. 수단 다르푸르의 강우량이 급감하면서 흑인 부족이 북쪽 유목민의 접근을 막은 것이 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하라 사막은 기후변화로 1920년에 비해 10%나 늘어나 미국 면적(980)에 육박합니다. 반면 지구의 허파아마존 열대우림은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550로 남한 면적의 55배에 달하는 아마존 열대우림은 지구 산소의 20%를 생산해 왔으나 기후변화와 인간에 의한 훼손으로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아마존 파괴는 500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부터 유럽 정복자들이 아마존에 무차별로 난입해 삼림을 파괴하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렸습니다. 이후 아마존은 19세기 고무 생산으로 시달리더니, 20세기 들어서는 목초지 개간을 위해 파괴되었습니다. 그린피스는 파괴된 삼림의 65% 이상이 소 사육용 목초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소 사료용 콩을 재배하기 위해서도 타들어갑니다. “1965년에서 2005년 사이 세계 콩 생산량은 7배나 늘었는데, 더 싼 사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콩 생산을 위해 개간한 경작지 다수는 아마존 삼림 파괴의 대가로 얻은 것이다.”(로버트 앨브리턴 <푸드쇼크>) 브라질에서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반년 만에 아마존 면적은 무려 3440나 감소했다. 환경훼손을 조장하는 규제완화 정책에 고무된 업자들이 개간을 위해 삼림에 불을 놓은 결과였습니다. 아마존은 지난달 말부터 3주 넘게 불타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지난해 164t의 쇠고기를 수출해 세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인간들의 식탁에 오른 쇠고기의 상당수가 아마존을 불태워 생산된 셈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아마존에 있는 3만종의 식물과 2500여종의 어류, 1500여종의 조류, 500여종의 포유류가 날마다 학살당하고 있습니다.(불타는 아마존 서의동 경향신문 2019.08.26)

 

또 하나의 기사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로 말미암은 기후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이산화탄소는 배출되면 수백년동안 대기 중에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어린 세대는 이전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위험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아무 조치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서 우리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기에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 그리고 그다음 세대들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격랑을 뚫고 위험한 길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헤쳐 나가는 것도 한계에 부딪혀 파국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산화탄소 저감을 제대로 하지 않아 뜨거움이 증폭되는 세상으로 하루하루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이전 세대가 부린 사치미래세대에 이렇게 큰 짐 될 줄이야 조천호 2019.08.29 경향신문)

 

미래세대의 자원들까지 끌어다가 우리의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욕심을 채우는 것뿐 아니라 다음세대의 삶의 터전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을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공멸하느냐 공존하느냐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 있다는 경고를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기억하고 돌아와 말씀을 따르라 (신명기30:1-5)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며(30:1-2)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에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표면적인 주장은 사무엘이 나이가 많고 그의 아들들이 부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마음은 주변 나라들처럼 강한 군대와 경제적 부흥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속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등과 정의보다 이웃나라들의 왕의 통치가 더 강력해보였던 것입니다.(삼상8:3-9)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너희들이 요구하는 왕은 너희들을 노예로 삼을 것이고, 무거운 짐들을 지우고 폭력과 억압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암중의 경고했습니다.”(삼상8:10-18)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왕을 세우고 말씀을 떠난 이스라엘은 부국강병은커녕 나라를 잃어버리고 떠도는 비참함에 떨어졌습니다. 그 일을 예견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길을 마련해놓으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 그들이 살아날 길을 담아두셨습니다.

 

기억이 나거든(1):

방향을 돌리다, 회복하다, 새롭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단지 기억을 되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무엇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2.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 왜 돌아서지 못하는가?(12:22-34)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입으로 줄줄 외우고 삽니다. 노래까지 부릅니다. 그런데 왜 그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대중소비사회의 얄팍한 세속철학이 말씀을 대신해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얄팍한 세속철학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인생을 마음껏 즐기라고 권합니다. 즐기자면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아야 한다고 권합니다. 달리 말하면 소비를 많이 하면 그만큼 욕망이 충족되니까 행복해진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생각에 바탕을 둔 세속철학은 열심히 돈을 벌어 신나게 소비하면서 인생을 즐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만들기만 하면 팔렸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이 되고, 대량생산체제가 정착되면 시장에 상품이 넘쳐나게 됩니다. 과거에는 생산만 하면 팔리던 것이 이제는 잘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점차 시장은 질이 좋은 상품으로 넘쳐나게 됩니다. 이때는 잘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작전이 필요합니다. 인위적으로 시장수요를 창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소비를 증가시키는 단계가 됩니다. 인위적으로 시장수요를 늘리는 효과적인 방법은 상품구매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부풀려야 합니다. 다행히도 부풀리기에 안성맞춤인 욕망이 있습니다. 비교해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바로 이 욕구에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상품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된 기업체들의 무수한 광고들의 기발한 상술들은 우리의 이런 욕망을 부채질 하는 것입니다....이것은 기업들의 이익은 되지만 국민의 행복을 높이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성장이 되고 소비가 크게 늘어나지만 이 상대적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기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와 다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하는 것은 팽배한 욕구과 익숙해진 편리함과 풍요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고자 하면 생계유지도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작은 행복에 만족함을 누리는 삶이 마치 실패한 삶이고, 축복받지 못한 인생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라고 하십니다. 들의 꽃도 하늘의 새도 돌보시는 하나님이 말씀을 따라 살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너희들의 삶을 당연히 책임져 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믿음이 없어서 세속철학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언제까지 머뭇거리고만 있을 것인가?(1:3-14)

 

믿음이 없는 우리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하는 생각과 행동은 이방의 삶을 쫓아간 것처럼,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우리가 흑암의 권세에 지배받던 삶을 살고 헛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추구하기보다는 세속적인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며 마치 그것이 행복인양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미래세대의 자원들을 다 끌어다 쓰고 그들에게 오염된 세계를 풀려주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바르게 알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답게 살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선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다음세대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줍시다. 머뭇거리지 말고 욕망과 파국의 삶에서 돌이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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