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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3-2) - " 아담, 돕는 배필, 어린이 " / 남신도회주일 / 한가위감사주일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6-09-17 (목) 21:46 5시간전 3  

본문) 2:18~25, 5:21~6:4, 10:1~16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혼돈과 공허가 질서를 갖추고, 생명력이 충만하게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매우 좋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피조세계 전체가 이루는 조화로움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생명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해지는 상태를 보시고 만족하셨습니다.

1장에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맨 처음 복을 주셨습니다. “복을 주시며(1:28)”, 복을 주는 주체는 복을 받는 상대를 존중하며 사랑합니다. 강제로 복을 주는 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복을 주는 주체와 받는 상대, 즉 하나님과 사람은 복만 아니라 생명을 주고, 받은 사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할 때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난 처음 상태, 즉 당신의 소망을 두고 만드신 사람의 코에 숨을 불어넣어주고, 살아있는 영이 되며, 복을 주고받은 그 때로 돌이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다는 1장에서 끝나지 않고, 창세기 2장에서 사람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됩니다.

남자에게서 갈빗대를 취하여서 여자를 만드셨다. 그러니 둘이 한 몸을 이루어라. 그리고 이어서 뱀에게 유혹당하는 여자와 남자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개는 둘이 한 몸을 이루지 못했던 과정을 설명이든, 해명이든, 질책을 하는 것이든, 아무튼 창조 질서가 깨졌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지만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신 창조가 비틀리고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같은 동류가 없이 홀로 있는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시는 안타까워하시던 그 마음을 받아 한 몸이 된 사람들과 그들이 확장되고 가족을 이룹니다.

 

오늘은 창조절 기간이며 남신도회주일이고, 한가위주일입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이유는 흩어져 있던 시간을 말로 하지 않아도 만남으로써 그간의 시간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통신이 발달되어서 세계 곳곳 어디에서나 화상으로도 볼 수 있으나 직접 만나고 손을 잡고 한 상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 말하지 않아도 많은 정보와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절이면 먼 길이거나 긴 시간을 감당하면서 만납니다.

가족들이 만나는 중심에 어른들이 계십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집안의 어른이 계신 곳이 가족이 만나는 중심입니다. 장소가 아닌 사람이 중심입니다. 그 어른으로부터 생명을 나누어 받았은 사람들이 가족입니다.

 

요즘에는 할머니가 가족의 중심일 수 있으나,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여성이 아닌 남성 중 가장 항렬이 높은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었습니다. 남성이 지니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책임의 무게감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남성들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책임을 함께 질 수 있는 돕는 자로서의 여성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돕는 배필이라고 할 때의 돕다원조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굳이 수직적으로 구분하자면, 원조를 받는 자보다 원조하는 자가 높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돕다는 역대상 128절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신다고 할 때와 같은 단어를 씁니다.

아담을 돕는 배필이 하나님처럼 돕는다고 하여도, 아내가 남편의 원조자라고 하여도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 되었고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은 수많은 세월동안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들어올 수 없는 존재, 부정한 존재, 남성에게 딸려있는 부속물처럼 여겼습니다. 여성은 어린이와 노인과 함께 인구수에도 들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 됨이다.”(5:23)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24). 이 부분을 끊어 읽어서는 율법시대의 사고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3절과 24절의 문장은 의미적으로 32절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에서 끝을 맺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무엇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주름이나 갈라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남편과 아내 사이가 그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다는 것 역시 남편과 아내 사이가 갈라지거나 나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 몸이 된 남편과 아내가 낳은 자녀는 부모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교회와 그리스도 중 어느 하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선물을 주십니다.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6:2~3) 이 말씀의 원본인 신명기 516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에베소서에서는 약속 있는 계명에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6:4)

십계명에 이어 여호와의 모든 도를 행하는 자에게와 후대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가르치도록 명령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똑같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인이 어머니가 되고, 어린이가 어른이 됩니다. 어머니 없는 남자가 없고, 어린 시절 없는 어른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존중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여기서 버리다의 헬라어 뜻에는 완전히 자유롭게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즘 의미로 듣자면 꽤 그럴 듯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외에 해고하다, 이혼하다, 떠나게 하다, 보내버리다등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를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로 좋게 해석해도 원래 있던 자리에 머물지 않도록하는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묻는 말입니다.

예수님께 묻는 사람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근거로 든 모세오경의 내용은 신명기 241절의 말씀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내에게 수치 되는 일, 즉 음란한 행위가 있었음을 발견한 남편이 아내를 기뻐하지 않으면 이혼 증서를 써내보낼 것이요.”

조건이 충족되면 아내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 율법으로 올무를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세오경을 넘어서는 대답을 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모세도 악을 품은 자들의 속내를 알기 때문에 조건을 붙여서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이혼을 명령한 법은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허용하기는 합니다.

 

기독교초기에 이혼의 사유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마가복음신현우)

1. 행실이 나쁨-성적인 부정과 신실하지 못함(샴마이)

2. 요리를 망치는 것 - 빵을 태움(힐렐, 필로)

3. 남편을 불쾌하게 함(힐렐)

4. 율법을 잘지키지 않음(샴마이)

5. 아내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한 때(아키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남편을 돕는 배필을 떼어 내보내는 조건이라기에는 이유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아내를 남편을 돕는 배필이 아니라 인격 없는 사물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께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을 제자들이 야단치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예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서열이나 우열을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모두 마치신 후 하신 말씀 심히 좋다, 매우 좋다하셨던 뜻은 피조물 중 그 어느 것도 종속되지 않고 각각의 생명을 피워내면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이번 주는 한가위를 앞 둔 주일이며, 남신도회주일입니다.

며칠간 이어서 쉬는 동안 가족을 만나고 어려서 살 던 곳을 찾아가는 것은 일상에서 만나는 건강한 일탈을 경험하게 합니다. 긴 역사와 세대에 걸쳐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나눴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문자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남성과 여성만 아니라 어른과 어린이, 종과 주인, 백성과 왕, 이방인과 선민 등 사람을 한 무리로 동등하게 여기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받았으니 남성이기 때문에 지고 있는 가부장적 책임감은 내려놓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듯이 돕는 배필과 한 몸을 이루어, 평등하고 평화로운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어린이가 누리는 복을 새롭게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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