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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8-1) - " 하나님을 본 사람들 / 이단경계주일 / 이훈삼 목사

관리자 2023-10-18 (수) 11:31 1년전 727  

본문) 눅 10:21~24(출 33:18~23, 롬 11:33~36)


1. 계시-드러내심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다. 기독교는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진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인간은 본질상 죄인이기에 인간과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받는다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 입장이다. 인간의 주체성과 자부심이 가득한 현대인은 이런 기독교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점이 현대 기독교 위기의 핵심 중 하나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자연과 생명을 깊이 관찰하면 할수록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믿음이 옳다고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깊이 성찰하며 죄인임을 고백하는 삶이 중요하다. 


계시(revelation)는 가려져 있던 막(커튼)을 걷어내는 것이다. 전에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커튼이 있어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안 보일수록 인간은 계속해서 보고 싶어 한다. 하나님을 보고 싶은 욕망은 가장 오래된 인간의 근원적인 바람이어서 하나님과 가장 가까웠다고 할 수 있는 모세도 하나님을 보고 싶어 했다.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 33:18,20,23)


그토록 위대한 신앙의 인물 모세까지도 하나님을 직접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에 일부만 들어주신다. 얼굴은 못 보고 등만 보여주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누군지 가장 식별하기 좋은 부분이 얼굴이다. 등만 보고 누군지 알아맞힐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공개하시는데 등만 보여주신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극히 일부이며 흐릿한 정도뿐이라는 것이다. 보여달라는 모세의 요청과 그 요청에 응답은 하셨지만 완벽하게 드러내시지 않는 하나님의 이 줄다리기가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완벽하게 보고 파악하게 되면 인간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이 완전하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손바닥 안에 놓고 이해(파악)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렇게 간절히 요청하니 일부만 보여주신다. 이것은 선명한 거울이 아니라 구리거울을 보는 것과 같고, 암막 커튼을 벗기긴 벗겨냈는데, 또 그 안에 하얀 레이스 같은 커튼이 가리고 있는 것과 같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이런 모습이다.


기독교 역사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늘려 왔다. 3천 년 전에는 모세 같은 특출난 사람만 볼 수 있었고, 예수님 시대에는 당대의 제자와 사람들만 볼 수 있었고, 지금은 성령을 통해 성령이 함께하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보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오늘 주님 말씀처럼 믿음만 있다면 오히려 지금이 행복한 시대다. 평생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죽기 전에 꼭 메시아를 보고 싶다는 열망을 지닌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안아보고는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소리치는 감격을 오늘 우리는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2. 계시의 위험성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계시는 예수님이 완성하셨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많은 신앙의 선각자들이 예언하고 기다리던 하나님-메시아였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완벽한 계시다. 그분의 말씀과 기적, 가르침과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셨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설교를 통해 듣고자 하는 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하셨고 어떤 일을 하셨는가다.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다.


2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지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회에서 하나님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온전히 알 수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인 예수님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오로지 성경뿐이고 그중에서도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삶을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문서를 남긴다 해도 꽤 분량이 될 것이고 아무리 많이 글로 쓴다 해도 한 사람의 삶을 온전하게 그려낼 수는 없는데, 예수님에 관한 자료는 딸랑 4 복음서뿐이다. 그래서 복음서의 예수님 모습을 잘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우 어려운 신학 공부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계시인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누가 10: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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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바조, 마태를 부르심, 1600년,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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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바조, 마태를 부르심(부분), 1600년, 로마 



예수님 그림은 셀 수 없이 많다. 19세기까지도 기독교가 지배적이었던 서양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흠모하고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나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그리스도 이콘과 카라바조의 이 예수님 얼굴이 가장 좋다. 서양미술사에서 찬란한 바로크 미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빛의 화가답게 카라바조는 예수님 얼굴에 쏟아져 들어 오는 빛의 양과 굴곡을 통해 메시아적 삶의 밝음과 어둠,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슬픔, 그 시대의 아들‧딸이 겪어야 했던 희망과 절망을 표현했다.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를 받아들이는 통로인 주님의 눈이 그늘 속에 있어서 깊다. 삶이 날아갈 듯 가볍고 신나면 좋겠지만 실제 삶의 현실은 슬픔과 고통이 더 짙지 않은가. 그 현실을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 공감하시는 것 같아 위로받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따뜻함을 잘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용기가 생긴다. 그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한 화가가 놀랍고!


인생을 깊게 들여다보시는 하나님의 눈길이 우리를 부른다. 더는 자기 폐쇄의 공간에 갇혀있지 말고 과감하게 하늘을 향해 나오라고 부르신다. 옛날 마태는 즉시 부르심에 따랐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과 세계를 열어주셨다. 그리고 길은 여전히 우리 앞에도 놓여있다. 그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기독교 역사와 요즘 한국 교회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이단‧사이비다. 차라리 기독교와 관련 없으면 덜한데, 성경도 형식도 모두 기독교와 비슷하다. 이름도 다 교회라고 한다. 그런데 속을 보면 사실 기독교와 무관하다. 기독교가 아닌데 기독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자신이 진짜 기독교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담고 있는 성경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 성경은 천 년 이상의 긴 시간에 여러 사람이 말하고 전승하고 기록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을 찾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심지어 살인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최소 6년 이상 동안 신학을 배우고 다음에 수련 과정을 거치고 또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만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다. 성경 해석이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성경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내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하지만, 계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진중하고 거룩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단‧사이비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로 성경을 이용한다. 예수님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사칭한다. 이단‧사이비가 한국교회에 끼치는 폐해가 너무 심각하기에 우리 교단도 몇 년 전부터 10월 넷째 주일을 이단 경계주일로 지키고 있다. 



3. 이단‧사이비로부터 교회 지키기 


한국의 정통 교회들은 대부분 교회 일치(에큐메니컬)를 지향한다. 개신교는 태생적으로 개체의 자율성을 존중하기에 개인‧개교회를 인정하다 보니 수많은 교파가 난립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서양 중세 천 년 동안 가톨릭의 획일성과 횡포에 진저리를 친 개신교는 종교개혁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교회는 모두 주님의 교회다. 그러니 장로교‧감리교‧침례교‧성결교‧순복음 등 여러 교파가 있지만 모두 하나의 교회로 인정하고 서로 교류한다. 그럼 이단‧사이비는 왜 안 되는가?


모든 교회는 하나라고 할 때의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신앙인의 모임을 뜻한다. 교리‧전통‧예식이 좀 달라도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 같은 교회라고 본다. 침례교는 세례를 침례로 하고, 루터교는 예배 중 성만찬을 하고, 순복음교회는 방언 등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여 교파마다 강조점이 다르지만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믿기에 모두 한 교회다. 그래서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을 주장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장로교‧감리교‧성공회‧정교회‧루터교 등 여러 나라의 다양한 교파가 회원이고, 로마 가톨릭과도 교류한다. 


단 아무리 이름을 교회라고 지어도 통일교‧신천지‧하나님의교회‧정명석‧돌나라 등은 같은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딱 하나다. 그들은 성경을 사용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증언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교주를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데 이용하기 때문이다. 성경과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시는지 밝혀야 하는데,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성경의 다양한 내용 중에서 자기 마음대로 구절을 뽑아서 자기네 교주가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단‧사이비다. 여기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단‧사이비 집단은 흔들리는 기독교인들을 현혹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통해 끌어들이기도 하고, 성경 구절 중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만 골라서 물어보면서 공격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기존 교회는 무너지고 있고, 이단‧사이비는 번창하고 있다. 우리가 이들에게서 배울 점도 있다. 굉장히 열심이다. 모임과 예배와 전도에 무척 열심이다. 기존 교회 교인들은 신앙생활에 활력이 다 사라지고 생동감을 많이 잃어버렸는데 사이비기독교는 활기차다. 또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굉장히 단정하다. 집회에 참석하는 모습이나 복장이나 태도가 건들거리지 않고 단정하다. 우리가 이단‧사이비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나? 


우리가 2천 년 동안 전해 받은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유일하게 메시아이고 예수님이 우리가 볼 수 없는 창조주‧구원주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 만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언젠가 주님께서 역사의 완성을 위해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그리스도인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앙 생활하면서 궁금한 것은 목회자에게 물어보라. 내가 다니는 교회의 예배와 교육과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하면서 그것으로도 신앙적 열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목회자와 상의하면서 더 필요한 것들을 만들면 된다. 자기 교회의 예배‧교육‧행사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이단‧사이비 주장에 괜히 관심갖고 기웃거리다가 그릇된 길로 빠진다.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하여 보여주신 야훼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길은 그것밖에 없다. 어떤 이유로도 예수를 빼거나 아니면 다른 인간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하나님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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