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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4-2) - "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일 " / 한가위감사주일 / 김진수 목사 > 창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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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4-2) - "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일 " / 한가위감사주일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3-09-22 (금) 19:14 7개월전 359  

본문) 37:14-24/ 9:14-26/ 14:22-33

 

어제 밤, 야당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로 인해 야당의 원내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의 일치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래 정부와 야당, 여당과 야당 간의 대화와 협치가 사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경제, 교육,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전임정부가 지향해온 모든 흔적들을 지우고 독선적으로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길을 걸어간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야당이 큰 위기에 빠지면서 국내의 정치적 상황은 당분간 큰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창조절 넷째주일입니다. 오늘 세 본문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시고 한이 없으셔서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소련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과의 대립, 중국과 대만과의 긴장관계는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 경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 교회는 어떻게 될까? 불안하고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에게는 숨겨져 있지만 분명합니다. 아무리 세상은 혼란스럽고 불안해도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은 오히려 확실하고 확고하십니다.

 

불합리한(absurd) 일을 통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37:14-24)

 

오늘 구약의 말씀 욥37:14-24에서 욥의 친구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오묘하신 일들을 우리 인간은 잘 알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번개가 먹구름 속에서 언제 어느 쪽으로 번쩍이는지(15), 구름이 어떻게 하늘위에 매달려 있는지(16), 왜 남풍이 불면 우리 옷을 따뜻하게 하는지(17), 아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현대 첨단과학도 태풍이 지나가는 경로를 정확하게는 잘 모릅니다. 이 방향 같은데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갑자기 중국 대륙의 강한 고기압이 팽창해서 태풍의 방향을 일본 쪽으로 밀어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갑자기 중국 대륙에서 고기압이 팽창할 줄 어떻게 압니까? 모르지요! 뿐만 아닙니다. 하늘이 맑아질 때 우리는 빛나는 태양을 마주 볼 수 없듯(21)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을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23) 그러므로 인생은 신비입니다. 넘어져 끝난 것 같은데 다시 일어서고, 무너졌다가도 세우며, 망했다가 살아나고 하늘 높이 솟았다가도 하루아침에 내려앉습니다. 그런데 다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실 뿐 아니라, 그는 정녕 선하신 분이라는 것,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23),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불확실한 길을 걸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는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다시 살고 일어서며 존귀하게 되는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사람들은 번개를 다 무서워합니다. 번개는 한 순간 거대한 혼돈의 세상을 만듭니다. 흑암 속에서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섬광과 거대한 굉음이 세상을 덮습니다. 산불을 일으키며, 전선을 끊어 놓으며, 여러 건축물들을 파괴시키기도 하고 큰 나무를 부러뜨리고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온 세상을 혼돈으로 만드는 번개를 통해 온 땅의 식물들에게 풍성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번개가 칠 때 생기는 뜨거운 열로 인하여 공기의 80%를 차지하는 질소가 녹아버립니다. 그리고 큰 비 속에 용해되어 지상의 모든 나무와 식물들에게 뿌려줍니다. 폭풍우 후에 공기에서 신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그 시큼한 냄새는 바로 하나님께서 식물에게 공짜로 내려주신 질소비료 냄새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비입니까? 하나님은 천둥번개와 같은 혼돈과 무질서를 통해 그의 놀라운 일을 행하시며 우리를 살리시고 세우시며 거룩하게 하십니다.

 

한국사회는 해방이후 가장 큰 두 번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한번은 군부세력에 의해 맞이하게 된 위기입니다. 군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세운 국민의 공복입니다. 그런데 해방과 6.25한국전쟁을 통해 세력을 확장한 군대가 한국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틈타 국민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지배세력의 자리에 올라 한국사회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혼돈과 어둠이 가장 깊었을 때 그 세력을 꺾으시고 국민을 섬기는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또 한 번의 위기는 검찰 권력에 의해 맞이하게 된 위기입니다. 민주화 이후에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한 것은 검찰 권력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장악한 검찰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정권까지 좌지우지합니다. 더구나 검사출신 대통령이 모든 요직에 검사출신들을 배치하고 사실상 검찰까지 그 휘하에 둔다면 거의 못할 일이 없는 힘을 갖게 됩니다. 검찰이 정권을 탐해서도, 정권의 수하가 되서도 안 됩니다. 검찰은 다만 국민의 공복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사실은 검찰이 모든 권력을 탐하고 소유할 그 때가 하나님의 심판의 때라는 사실입니다.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9:14-26)

 

서신서 본문 롬9:14-26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합니다. 모든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격 없으며 능력이 없고 죄인인 사람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 힘 있는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버리시고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사랑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하나님을 대항함으로 망하게 하셨으나(14-17) 노예로 살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받고 홍해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은혜로 선택받았던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참 구원자 예수님을 버렸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은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전혀 몰랐던 이방인들에게 들어갔습니다.(9:1-13) 하나님이 교만한 그의 백성들은 버리시고 전혀 구원받은 이유가 없고 허물 많은 이방인들을 택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19-26) 어떤 사람은 착한 것 같은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가 있고 어떤 사람은 참 무능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복되게 사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감사입니다. 내 힘으로 내 지혜로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유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 하나님을 전적으로 자기의 도움으로 삼는 자,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지금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시절 교회 주일학교 여선생님 두 분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외모가 매우 남성적이고 성격이 소탈한 분이었는데 늘 침을 튀기며 뜨겁게 기도하고 큰 소리로 찬송하고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던 분이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분은 웅변도 잘하고 고전무용도 잘하던 예쁘고 똑똑한 분이었습니다. 두 분이 결혼했습니다. 평범하고 소탈하신 선생님은 키 작은 초등학교 교사와, 똑똑하고 예쁜 선생님은 중학교 합창부 지휘를 하고 잘생긴 음악선생님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의 처지가 너무 대조적으로 갈렸습니다. 평범한 선생님 남편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공부를 쉬지 않았고 얼마 후 대학교 교수님, 학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망의 대상이었던 예쁘고 똑똑했던 선생님 남편은 가는 곳 마다 성적 추문을 일으키다 결국 학교에서 물러났고 어느 날 두 분은 소문도 없이 고향을 떠난 후 지금까지 소식조차 모르는 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바도 사실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 속사정과 진실을 어찌 다 알겠습니까?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또 어떻게 압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사람들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준에 합당하게 사는 일입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어떤 상황에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르고 온전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들이 마침내 형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놀라우신 하나님(14:22-33)

 

14:22-33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심을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큰 시련과 절망 앞에서 나타납니다. 고난이 없게, 고난을 피해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 앞에서 그 고난을 이기게 하시고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십니다. 고난을 겪는 것이 불행이 아닙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타고 강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자신은 기도하러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22-23) 예수님 없이 항해하던 배가 한밤중에(밤 사경)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습니다.(24이하)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배타고 갔는데 큰 풍랑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고난 없는 것 아닙니다. 잘 믿어도 병에 걸리고 신앙생활 잘해도 고난이 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의 고난의 현장 한가운데로 마치 유령처럼 걸어오십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의 자리에 찾아오시고 함께해주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파도를 잔잔하게 해주시지 않고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나다!” 그러십니다.(25-17) 고난 속에 있어야 진짜 믿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파도 위를 걸어오신 예수, 파도보다 크고 강하신 예수, 파도를 다스리시는 주께 말합니다. 주님 저를 명하여 파도 위를 걷게 하소서! 그 때 베드로도 예수님과 함께 파도 위를 걸었습니다.(28-29)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더 이상 파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손 안에 있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습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에워싸도 온 세상보다 더 크고 강하신 분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고난의 파도를 넘어 그 파도 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베드로에게는 인간적인 두려움이 스며옵니다. 다시 파도가 두려워집니다. 그게 인간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때 주님이 파도에 빠져가는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끌어 올리십니다.(28-31) 우리가 어떻게 신입니까? 믿음이 있다가도 금방 두려워지고 용기를 가졌다가도 다시 절망합니다. 그때 주님은 다가오셔서 이번에는 주님이 내손 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친히 제자들이 탄 배 위에 오르십니다. 그제야 파도는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큰 승리는 큰 위기가운데 찾아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큰 절망의 순간에 우리는 큰 소망의 은총을 입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속에서 감사하고 절망 속에서 소망하며 아픔 속에서 기뻐하고 어떤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믿으며 여전히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실망치 않고 하나님이 명하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자가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사실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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