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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창조절(6-1) - " 온전한 감사를 통해 받는 복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1-10-08 (금) 08:46 2년전 634  

본문) 창 8:13-22, 골 3:12-17, 눅 17:11-19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인지요? 들녘엔 무르익은 곡식이, 나무 가지에는 풍성한 열매들이, 산등성이에는 화려한 채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아름답게 보이는 계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온 우주 안에 충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을은 하나님이 베푸신 풍성한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계절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대한 ‘보답의 행동’, 혹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의 행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커서 감히 갚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우리의 선한 행위나 보답의 행동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하고 받아 누리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참 감사는 바로 하나님의 크고도 좋은 은혜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사라는 말, 유카리스티아는 좋다(유)와, 은혜의 선물(카리스)이 더하여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의 풍성함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 그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높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의 감사(창8:13-22)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홍수로 망했으나 오직 하나님을 경외했던 노아의 가족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땅위의 물이 마르자(13-14절) 노아의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에서 나왔습니다(15-18절). 눈앞에 펼쳐진 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리고 난 공허의 세상이었고 온 땅은 거대한 홍수가 핥고 지나간 상처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화마가 자신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잿더미 앞에서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파괴된 이 땅 너머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첫 창조의 시대에도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으로 가득한 땅을 빛과 아름다움과 풍성함으로 창조하셨던 그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심판의 흔적으로 가득한 땅에 내려와 먼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새를 취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20절) 그는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다 소멸되고 공허한 그 절망의 땅에서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며, 그의 능력과 은혜를 소망하며 그에게 감사하고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유카리스티아)입니다. 


무엇인가 감사할 것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 다 상실한 폐허 위에서도 오직 새롭고 아름답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이 참 감사를 낳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았습니다. 그 은혜 안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은혜를 먹고 은혜로 살고 은혜로 일하고 은혜로 섬겼습니다. 


한 나병환자의 구원의 감사(눅17:11-19) 


복음서 눅 17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샛길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다가(11절) 한 마을에서 삶의 소망을 상실하고 살았던 열 명의 나병환자를 만났습니다. 열 명이나 되는 많은 수의 문둥병자들이 한 무리를 지어있는 것을 보면 그 마을이 나병환자 촌이었거나 사람들이 사는 그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무리지어 산 것 같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향해 큰 소리로 “예수선생이여 우리를 구원해 주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메시야인줄은 아직 모르고 다만 병을 잘 고치는 훌륭한 분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는 도중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11-14절)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께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15-16절) 그는 이 놀라운 기적과 은혜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지금 자신 앞에 계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 친히 보내신 분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분을 통해 흘러오고 그의 찬양이 이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올려지며 이분에게 드리는 감사가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감사임을 알았습니다. 지금 내 앞에 계신 분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동일하신 분이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주님은 “아홉은 어디 있느냐?”(17절) 물으십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었을까요? 제사장에게 가다가 나음 받았으니 너무 기쁘고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빨리 제사장에게 가서, 치유 받았다는 확인을 받아 가족에게로 속히!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건강해진 몸을 보이고 자신이 이제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보라 나는 나병환자가 아니다! 다 나았다!” 야 내가 성공했다! 내가 좋은 곳에 취직되었다! 병 나았다! 이게 그들의 본심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죽을병에서 구원해주신 분, 다만 나병뿐 아니라 그들에게 영생까지도 주실 그분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은 오직 자신의 건강, 자신의 성공과 자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한 사람, 유대인들이 이방인처럼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은 그에게 그 치유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내게 구원과 은혜를 값없이 베풀어 주신 그 분, 사람의 몸을 입으셨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분, 구원의 주가 되시는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사마리아 사람은 이제야 주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 그 사랑 안에 머뭅니다. 그 은혜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엎드립니다.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며 그에게 자기를 드립니다. 주여 저를 받으소서! 이게 진짜 절입니다. 뭘 받으려고 머리 조아리는 것은 절이 아닙니다. 자기전부를 드리는 게 진짜 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참 감사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돌려보내시며 축복하십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절) 아! 주님께 온전히 돌아온 이 사람, 감격과 감사로 주님께 영광을 돌린 이 사람은 이제부터 주님에게 파송 받은 사람, 주님을 위해 자신의 가정으로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참 감사입니다.


사랑받은 성도들의 감사(골3:12-17) 


서신서 본문 골3장은 감사의 출발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먼저 성도가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왜 성도입니까? 우리 스스로가 거룩해서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는 스스로 거룩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12절상)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12절하) 우리는 사랑 못합니다.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받을 때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용서 못합니다. 감히 스스로 애써서 용서해보려고 해보세요! 죽어도 안 됩니다. 자기가 용서해보겠다고 하는 사람은 뭘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조건 없는 용서를 거저 받을 때만 우리의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13-15절) 우리는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해보세요! 다 도망갑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아무 제제 없이, 대학 가야한다는 전제 없이 그냥 우러나서 스스로 자원해서 학교에 나와 선생님에게 하루 종일 배워보라고 해보세요! 안 나옵니다. 주님의 말씀이 친히 우리에게 임해야 가르칠 수 있습니다.(16절)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야 스스로 감동이 되고 흥분이 되어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가르치고 또 그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자원해서 기쁨으로 그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 수 없습니다. 어쩌다 한 번은 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긍휼과 자비를 베풀 수 없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긍휼과 자비와 겸손으로 옷 입을 때만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엄청난 사람의 감격을 누린 사람만이 긍휼과 사랑의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아! 먼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십시오! 풍성한 은혜를 먼저 받으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은 결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만큼 감사한 만큼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언제나 주님의 은혜 안에 머문 여인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녀의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붓습니다. 마르다는 주님께 선을 행하다 불평합니다. 마리아처럼 은혜에 감사한 만큼 전도하고, 봉사하며, 헌신하고, 사랑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은혜를 받으십시오! 기도의 자리로 나와서 충만하도록, 가슴에 감격과 감사가 넘치도록 받으십시오! 그래야 예배가 됩니다. 그래야 신령한 하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창세기 8장에서 노아가 드린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감사의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의 인간을 향해 주신 ‘새로운 약속’에 대한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모든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인간을 보시며 한탄하시고(창6:5) 인간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창6:7). 죄악을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홍수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감사의 번제를 받으시고, “새 약속” 하나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부패한 악인들”로 인해 땅을 저주하거나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고(창8:20-21)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한 사람”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홍수 심판 후, 다 무너지고 파괴된 땅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고 새로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것을 신뢰하며 감사의 번제를 드린 노아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 어둠의 세상에 온전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온전히 믿고 예배하며 사는 이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노아의 믿음의 감사가 가져온 측량할 수 없는 복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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