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 1:1-5
요즘 코로나 환난 장기화 속에 생긴 신조어입니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 우울증이라는 뜻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 위축되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우울증, 무기력 등 통칭하는 말입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요! 비상구도 안보여요 절규합니다. 피조물의 신음과 ‘소리 없는 아우성’도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코로나 블루, 단순히 의학적인 문제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집을 나간 아이, 길을 잃고 울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What shall I do? 그 질문에 대한 성경적인 답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라’입니다. 창조절입니다. 창조신앙은 본질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재발견하고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을 잃었습니다, 바벨론 유배생활 환난, 강제노역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나라의 패망은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위기였고 존재 기반이 무너져 내린 사건이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 혼돈과 공허와 깊은 어둠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집단적으로 앓았던 병, ‘바벨론 블루’였습니다. 우울증. 절망감, 무기력 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깊은 어둠 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재발견입니다. 출애굽 해방과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발견하고 만났습니다. 바벨론 블루, 혼돈과 공허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재발견하는 사건을 체험합니다. 그 만남의 감격, 그 믿음의 고백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입니다. 오늘 코로나 블루 환난 속에서 우리도 창조주 하나님을 재발견하고 다시 만나는 은혜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유배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바벨론 블루’ 집단 무기력증, 집단 우울증, 집단 절망감,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재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해방과 구원의 하나님이시면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한마디 말씀 속에 숱한 소쩍새 우는 사연이 있고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겪었던 하나님의 백성의 탄식과 신음이 있습니다.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논쟁, 과학이냐 신앙이냐 논쟁할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을 문자주의가 아니라 영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문자주의 창조론에 빠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잘못된 기계주의 진화론적 신화에 빠지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의 자리를 잃습니다. 창세기는 창조신앙 신앙고백 선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바벨론 유배생활을 하면서 매일 듣는 바벨론의 창조 신화가 있었습니다. 마르둑이라는 신의 이야기입니다. 마르둑이 바다의 신, 티아맛과 전쟁을 해서 티아맛을 죽여, 그 시체를 반으로 갈라 하나로 하늘을 만들고 나머지 반쪽을 땅을 만들었다는 신화였습니다. 잔인한 전쟁의 신, 마르둑을 창조주로 믿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듯이 바벨론도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고백했던 것입니다. 지금우리는 전혀 다른 바벨론 유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벨론 유배 생활입니다. ‘코로나 블루’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본문 창1:2 말씀, 옛 이야기 아닙니다. 오늘 우리 이야기이고 오늘 이 시대. 우리가 사는 지구촌 당면 위기의 이야기입니다. 지난여름, 폭우, 장마, 연이은 태풍, 기상 재앙이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기상과 자연 재해, 해마다 반복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듣고 우울하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할 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재발견하고 창조질서의 청지기로 다시 설 때입니다. 여러분, 구름이 아무리 짙어도 그 구름 위에 태양이 빛나고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12:1)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 말씀입니다. 청년의 때, 언제입니까? 더 ‘늦기 전에’입니다. 전도서의 저자, 전도자도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1:2-3) 탄식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창조주 하나님 재발견합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 코로나 블루 시대의 답입니다.
참 빛을 영접하라
본문 창1:2-4a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바벨론 유배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바벨론 블루를 체감하며 죽음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이 오늘 우리도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중요한 것은 그 빛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빛을 등지고 아무리 ‘왜 이리 어둡냐’고 한탄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창1:3 “빛이 있으라”할 때 ‘빛’, 어떤 빛일까요? 해와 달과 별 같은 자연의 빛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오르’라는 단어입니다. 창1:15 해와 달과 별 빛에는 ‘메오르’라는 단어를 씁니다. 다릅니다. 사도 요한은 그 빛을 참 빛(요1:9)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9-12) 사도 요한의 창조신앙 고백입니다. 요한의 별명은 ‘우레의 아들’이었습니다. 성질이 번개 치듯 한 사람이었습니다. ‘버럭 요한’이었습니다. 그가 참 빛 예수를 영접하고 다시 태어납니다. 세상은 참 빛 예수를 외면하고 가짜 빛에 더 현혹됩니다. 오늘날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이 인체 유해한 빛으로 세상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진광불휘(眞光不輝), ‘진짜 빛은 번쩍거리지 않는다’ 논어의 말입니다. 세상은 참빛 예수를 외면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참 빛 예수를 영접한 빛의 자녀 되길 축원합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네덜란드가 낳은 대 화가였습니다. 그는 빛의 화가로 불립니다. 그는 젊은 시절, 인기 있는 초상화 작가로서 큰 부와 명성을 얻습니다. 그러나 불행이 닥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자녀들도 죽는 불행을 겪습니다. 방황합니다. 교회 위원회에 간음죄로 소환되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파산합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날아갑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어둠” 상황에서 렘브란트는 참 빛을 경험합니다. 그 때 그린 대표작이 ‘돌아온 탕자’입니다. 자기 이야기입니다. 렘브란트 말기 그림의 빛, 영혼을 비추는 빛이라고 합니다. 렘브란트는 그 참빛을 그린 화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 블루 시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