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11:33-36 눅 10:21-24 출 33:18-23
1.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우리는 509년 전,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논제를 제시하며 시작된 종교개혁을 기억과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성당이나 오래된 교회당은 웅장한 높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묵직한 오르간 소리가 예배당을 가득 채웁니다. 500여 년 전 유럽의 교회도 그러했습니다. 건물의 화려함은 하늘을 찌를 듯했고, 교회의 권위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었습니다.
2. 하지만 그 화려한 성전 문 뒤에서, 정작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경외함과 복음의 빛은 점점 시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와 돈으로 구원을 사야 한다고 믿어야 했고, 말씀의 본질은 인간의 교리와 번지르르한 수사에 가려져 버렸습니다. 외형은 그 어느 때보다 거대했지만, 속은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3.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한 젊은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95개 조 반박문을 걸었을 때, 그가 원했던 것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 하나,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자"는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내걸었던 유명한 라틴어 슬로건이 있습니다. "Coram Deo" (코람 데오) — 하나님 앞에서. 오늘 종교개혁주일이자 교회개혁주일을 맞아, 우리는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고 나 자신은 지금 진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4.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회의 제도를 바꾸자는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건물을 새롭게 짓거나, 예배의 순서를 바꾸거나, 교회의 조직을 개편하자는 운동만도 아니었습니다.
5.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습니다. “교회는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는 지금 누구 앞에 서 있는가?” 당시 교회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화려한 건물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상의 왕들까지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6. 509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정말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까? 오늘 종교개혁주일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단순히 과거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던졌던 질문 앞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 앞에 서 있는가?”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7.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18절) 이 말씀은 모세의 생애 가운데 가장 간절하고 놀라운 기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8. 모세는 이미 수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광야에서 하늘의 만나를 먹었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하나님께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영광을 제게 보여주십시오.”
9. 왜 그랬을까요? 이 기도가 드려진 상황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지만, 백성은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자신들의 신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가 편했습니다. 기다려야 하는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금송아지가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편했습니다.
10. 여러분! 이것이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우상숭배는 단순히 나무나 돌로 만든 신상 앞에 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나의 욕망을 이루어 주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을 바꾸시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11. 금송아지 사건 이후 이스라엘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죄를 책망하셨고, 모세는 그 백성을 위해 간절히 중보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을 이곳에서 올려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어서 모세가 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2. 모세는 더 많은 재물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더 강한 군사력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더 넓은 영토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백성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13. 여러분! 종교개혁의 핵심 정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교회 자체의 영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며,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나는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됩니다.
14. 두 번째로 누가복음 10장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21절)
15. 이 말씀은 매우 흥미로운 상황에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파송하셨던 칠십 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기쁨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놀라운 능력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신앙의 중심은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가졌는가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이루었는가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17. 그리고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신 아버지께 감사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종교적 지식이 많고, 율법을 잘 알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역설입니다.
18. 하나님은 인간의 자랑과 교만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복음의 단순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병든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0. 그렇다면 복음으로 돌아가는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교회의 문턱이 낮아지는 교회입니다.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교회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위로받는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복음으로 돌아가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21. 로마서 11장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찬양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33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36절) 이 말씀은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깊이 묵상한 후에 드리는 찬양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야기합니다.
22. 이스라엘의 불순종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하심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방인에게 은혜의 문을 여셨고, 누구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도록 하나님의 긍휼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바라보면서 바울은 마침내 고백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많이 알면 알수록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면 할수록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2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겸손이 아닐까요?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의 뜻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죄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다투면서도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모든 지혜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겸손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개혁의 중요한 정신이 있습니다.
24. 종교개혁 전통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말이 있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이 표현은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후대에 정착된 말입니다. 이 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항상 개혁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5. 윤동주의 「서시」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는 자신의 삶을 하늘 앞에 세우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양심을 비추어 보고, 작은 부끄러움에도 괴로워하며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있습니다.
26.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정당화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잘못은 작게 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크게 봅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우러러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다릅니다. 자신을 변명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을 살핍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교회도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는 무엇을 결단해야 하겠습니까?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습니까? 교회가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28. 그것은 교회 안에서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돌봄이 필요한 이웃이 있습니다.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일터를 잃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별과 소외 속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교회라면 이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29. 사랑하는 여러분! 509년 전 루터가 시작했던 종교개혁은 단지 역사의 한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 안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다시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다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다시 세상의 아픔에 응답해야 합니다.
30. 교회개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그 개혁은 멀리 있는 누군가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목회자인 저부터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회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회를 통해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31. 오늘 종교개혁주일에 우리 모두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아가며, 세상의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