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 뿐 아니라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와 기어다는 생명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만족스러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형상’의 히브리어는 ‘환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사람을 보고 하나님인 듯 착각을 일으킬 만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근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일서에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정작 사람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창조주와 자신이 닮았다는 것을 압니다.
비록 자신이 하나님과 닮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씨는 그 사람의 속에 거하면서 의를 행하며 형제와 함께 사는 방법을 깨우쳐 주십니다.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창조주와 닮아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요일 3:8)라고 하였는데, 마귀는 어떤 존재일까요? 헬라어 ‘마귀’는 ‘쪼개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의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신념체계, 나아가 하나님의 의로움과는 단절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론과 신념과 경험 등으로 사람을 하나님의 의로움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이 마귀입니다.
옛적 국민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반공포스터를 그리라고 하면 공산당을 어떻게 그렸습니까? 공산당은 총을 들고 상대를 위협하고, 뿔이 났거나, 덧니가 불쑥 튀어나오고, 피를 묻히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정도가 강해지면 빨갱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익숙해 있어서 그 모든 것에 더해 온 몸을 빨갛게 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북한공산당을 빨갱이라고 부르니 직접 보지 못한 아이들은 사람의 몸이 빨갛겠거니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마귀입니다. 분명한 실체가 없으나 사람을 지배하는 어떤 것. 그 지배하는 것에 인격이 흡수되어서 사람의 인격은 가려지고 인격을 지배하는 그것만이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상태를 마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구분하는 조건은 ‘의를 행하는가? 형제를 사랑 하는가’라는 두 가지입니다.
‘형제’나 ‘자매’는 피를 나눈 혈족이라는 내용을 묶은 대표 단어입니다. ‘대한민국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고 할 때에도 남의 사람과 북의 사람이 형제자매라는 것을 기본 값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말입니다.
한 부모에게 태어난 형제자매 사이가 평화로워야 할 것은 따로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아버지이신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어야 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분열과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많은 경우에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고 그 안에서 사적인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나, 한 국가 안에서나, 직장과 마을 공동체,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마귀가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꾐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온 땅을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이념과 신념에 따라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마귀의 일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생명에게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사랑하심을 알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이 지금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습니다. 그 함께 숨쉬는 것들이 우리의 식량이 됩니다.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만 아니라 다른 동물과 생물들에게도 먹을거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온 지구는 어느 것 하나 따로 떨어져 있지 못합니다. 어느 것이 사라지면 그것을 먹이로 하는 생명이 사라집니다. 먹을거리로 이어지는 연결은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지구와 그 모든 생태계와 유기체로 살아가고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빛과 물과 땅과 생명. 그 어느 것도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공기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바람의 덕으로 벼, 보리, 밀 등은 열매가 맺힙니다.
온갖 피조물들 사이에 바람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서 연결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 사이에 권력다툼을 하고 서로 경쟁하게 하며 형제가 형제를 죽이도록 허락하는 전쟁을 일으킵니다. 마귀의 꾐에 넘어간 사람들의 행태입니다.
예수님은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내 친구야 들어봐”라며 제자들에게 따로 말씀하십니다. ‘아주 작은 생명에도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너희도 보호받고 있다. 그러니 권력을 앞세우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욕구가 있고, 욕심이 있습니다. 경쟁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를 인정하지 않고 업신여기는 탐욕은 죄가 됩니다.
모든 숨 쉬며 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마귀의 꾐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신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경쟁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선한사람이라고 하기 보다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정복하라’고 하신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로는 ‘멸시하다’라는 의미가 있으나, 긍정적인 의미로 ‘아래에 두다’라는 내용으로 읽힙니다.
아래에 둔다는 것은 ‘살펴보아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가정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가부장적 관념으로 서열을 따지면 아랫사람입니다. 아래에 있다는 것은 무언가 압박을 받을 가능성과 연약하다는 것을 추정하게 합니다.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느라 어른들이 수고를 하면서도 아이가 기뻐하는 것을 보며 어른이 행복해 합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을 멸시하고 멋대로 파헤치라는 의미보다는 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살펴봐주라는 뜻으로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새겨보는 절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이 어찌 변하게 될지, 어떻게 멸망하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우리들입니다.
마귀의 꾐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세상에서 요구하는 맘몬과 이념을 따라 나서지 말아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복을 받은 우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유기적으로 살아가게 하신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며 살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기쁨으로 맞이하며 영생에 이르는 복까지 누리는 우리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