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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8-1) - " 열린 자유의 세계로 " / 이단경계주일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22-10-21 (금) 11:07 2년전 838  

  

본문) 삼상 8:1-22, 롬 7:5-13, 마 11:16-24

1) 굳어지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야 산다

사람이 늙어지면 신체의 활동력이 떨어지고 점점 굳어져가며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신체의 활동력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고의 유연성도 떨어지고 그러면서 고집스럽게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라떼’라는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과거 경험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것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의 틀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모조리 이단시 하는 오류에 빠집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 화를 잘 내고 다른 사람들과 다투기를 잘합니다.

사회도 그렇습니다. 사회가 노화(老化)되어 가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인색하고 고집스럽게 낡은 이념이나 가치관을 강요하게 되는 경직된 사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진영을 나누어 싸우되 더욱 치열하게 싸우게 됩니다. 싸우면서 서로의 소리를 듣고 타협하는 것이 없이 서로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생각만을 강요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적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양극단 세력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서로 타협이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화해와 통합을 말하면 이단자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제3의 새로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공간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갈수록 거칠어집니다. 갈수록 치열한 싸움만이 계속돼 난장판이 되어갑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심히 우려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늙어지면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합니다. 제가하는 ‘늙어진다’는 말은 시간이 오래되어서 늙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경직되어서 고집스럽게 옛 것에 집착하는 심리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굳어진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오늘 세 본문 모두는 이런 점에서 우리들에게 귀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2) 백성들의 완고함과 하나님의 유연성

구약본문 사무엘상 8장은 지파동맹체제를 벗어나 왕정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사시대는 정치권력을 장악한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지파공동체 형태로 지파들의 원로(장로)들의 ‘느슨한 협의체’(?) 형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쟁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원활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조직 내부에서 갈등도 노출되었습니다. 사사기에는 이런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 주변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중앙집권적 권력체계를 갖추고 왕이 의사결정을 하면 조직 자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효율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라들과 맞서서 전쟁을 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의 나라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불안해하면서 이스라엘도 다른 나라들과 같이 왕이 다스리는 왕정체제를 가져야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사무엘 상 8장은 사무엘 선지자가 늙어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로 활동할 때 백성들의 원로들이 사무엘을 찾아와서 이스라엘에도 왕을 세워서 왕이 자신들을 다스리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무엘은 그들의 요구를 기뻐하지 않고 대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실 그 때까지는 신정지배체제(神政支配體制)로 사실상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신 것인데 이를 거부하고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서 다른 나라들처럼 다스리게 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저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왕정(王政)이 시행되면 생겨날 폐해에 대해 일러주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왕이 들어서게 되면 세금을 바쳐야 하고,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게 되고, 노역을 시킬 것이며, 딸들은 왕궁의 시녀들과 궁중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들이 될 것 그리고 왕궁과 신하들의 쓸 것을 위해 많은 재산들을 바치게 될 것 그리고 왕의 종이 될 것 등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듣기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하나님께 그 사실을 알렸더니 놀랍게도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허락해주셨습니다. 한사코 왕을 세워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더 다른 길을 거부한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보시고 하나님이 오히려 태도를 바꾸어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의 강퍅한 마음을 보시고도 하나님은 오히려 당신의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시어 새로운 왕정시대를 열어주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들의 굳어진 마음과 대비되는 하나님의 열린 마음 앞에 놀라게 됩니다. 마음이 이스라엘은 닫혀있었고 하나님은 열려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고집불통이었고, 하나님은 열려 있어서 소통이 가능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큰 이적을 보고도 감동이 없는 닫힌 마음들

복음서 마태복음 11장 말씀은 예수님 당시의 율법주의에 찌들어 형식만 남은 유대교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많은 기적을 보고서도 공감력(共感力)을 갖지 못했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화석화(化石化)되어 돌처럼 굳어버린 강퍅해진 마음들을 향해 던지시는 안타까움을 표출하시는 말씀들입니다. 감동이 사라진 세대에 대한 예수님의 탄식입니다.

좋은 것을 보고도 좋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놀라움을 느끼지 못하는 닫힌 마을을 두드리시는 안타까운 호소입니다.

세례요한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며 금욕생활을 해도 저를 향해 귀신들렸다고 비난해대고, 예수님이 오셔서 세리와 죄인으로 낙인찍힌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먹고 마신 것을 보고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후기 유대교의 감동과 헌신이 사라진 형식만 남은 종교인들에 대한 질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권능과 기적을 행하신 고라신, 벳세다보다 이방지역인 두로와 시돈에서 그런 기적을 행했더라면 저들이 훨씬 더 빨리 회개했을 것이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 날에 이방의 두로와 시돈이 기적을 많이 본 지역들이 더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감동이 사라진 그리고 마음이 닫혀 강퍅해진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저들보다 나은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더 굳어져 마음이 닫힌 심판받을 사람들입니까?

4)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라

서신서 로마서 7장도 같은 맥락에서 읽혀지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읽은 본문 앞 7장 서두 부분에서 남녀의 혼인을 예로 들어서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런 문제를 깊이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율법에 얽매어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통해서 얻는 자유에 대해서 말해도 여전히 유대교의 틀 안에 갇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했습니다.(6절) 그리고 율법의 역할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율법이 아니고 새로운 영을 따라 살 것을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초기 교회 안에서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여전히 율법의 굴레를 벋지 못하고 발목 잡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자유를 알지 못하는 율법적 신자가 많았습니다.

과거 2차 대전 당시 필리핀의 루방섬이라는 곳에서 전쟁을 하던 일본의 오노다 히로라는 일본군 정보장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1945년 여름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었음에도 절대 일본군이 패망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30년이나 섬에 숨어 지냈습니다. 미군이 일본이 패망했다는 전단지를 비행기로 살포하고 또 일본에서 구조대를 보내 일본이 패망했으니 귀국하자고 설득했어도 모두 거짓 공작이라고 하면서 원주민들을 살해하는 등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며 지냈습니다. 1974년 일본정부가 그 소식을 알고 나서서 그의 과거 상관을 루방섬에 보내 설득해서 30년 만에 그를 겨우 섬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그의 상관을 그 섬에 보낸 것은 절대로 그의 상관이 철수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의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발견되었을 때 그의 나이가 52세였는데 일본군 장교복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일본 99소총을 깔끔하게 손질한 채로 가지고 있었고 실탄 500여발과 수류탄 대여섯 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되었는데도 과거의 신념에 사로 잡혀서 새 시대의 정신에 대해 마음 문을 닫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넓고 넓은 자유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주님 주신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5) 맺음

신앙은 우리를 아집에 서로 잡혀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참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집스럽게 살며 스스로 굳어지지 맙시다. 미래에 대해 열린 자세로 새 세계를 향해 나아갑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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