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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6-1) - " 이 썩을 놈의 돈에서 해방되는 " / 김진철 목사

관리자 2022-10-07 (금) 10:20 2년전 916  

본문) 신명기 26:1-11, 고후 9:6-15, 12:13-21


1. 얽매이고 싶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돈입니다.

돈은 힘이 참 막강합니다. 삶을 편하게 해주고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돈의 이런 힘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추구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돈을 모으고 모인 돈은 더 큰 욕망을 만듭니다.

오늘은 주어진 세 본문을 통해서 돈(재물, 소유)의 속박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되는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돈이 잘 못 쓰이면 인간에게 많은 고통을 줍니다. 돈은 인간의 주요한 발명품입니다. 그런데 이 돈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연을 아름답게 하는가? 오히려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황현산 교수가 그의 고향의 나무와 돌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잎은 동백나무 잎과 비슷한데 그보다 초라하고 초여름에 쌀알처럼 작고 하얀 어린 시절 늘 볼품없다고만 생각했던 꽃이 핀다. 돌 틈에 자리를 잡고 옹색하게 살며 태어날 때부터 줄기가 뒤틀려 있는 이 상록관목을 섬사람들은 구렁뿌리라고 부른다. 풀과 나무에 정통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나무의 표준어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내 설명이 어쭙잖아 번번이 대답을 듣지 못했다. 몇 년 전 고향에 들렀는데 이 나무의 사진이라도 찍어가려고 했더니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가 이제는 찾기 어려울 곳이라며 산행을 말린다. 7년 가뭄에도 살아남을 것 같은 그 생명력 강한 나무가 어떻게 없어질 수 있단 말인가. “분재한다는 사람들이 다 파갔어. 한 지게 지고 가면 몇 천 원씩 줬지.” 절골산 골짜기를 덮고 있던 이상한 풀들은 씨도 남지 않았다 한다. “석란이라든가 뭐라든가 그것도 한 지게에 몇 천 원씩 줬지소도 안 뜯어먹던 그 풀이 풍란 같은 난초였다. “그뿐인 줄 아는가. 솔구지의 까만 돌들도 수석 한다는 사람들이 돈 몇 푼주고 다 파갔다네왜 그 귀한 것들을 헐값에 팔았느냐고 물었더니, “돌덩이가 금덩이인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되묻는다.

그 말을 듣자 나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였다는 최영 장군이 떠올랐다.

달리 말해야 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돌을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고 말해야 진정한 교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무슨 큰 깨달음이나 얻은 것처럼 으쓱해졌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도 나는 그 생각을 깨달음으로 여긴다. 제값을 받을 수 있을 때가지 나무와 풀과 돌을 그 자리에 놔두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제 값을 한다. 그것들이 없으면 이 나라 땅이 없고 이 나라 땅이 없으면 이 나라의 삶이 없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것들은 황금 알을 낳는 닭과 같다. 황금은 한때의 황금이고 자연은 수수만년 세월의 황금이다. 그래서 사는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 바위를 깨드리지 말라. 내 고향의 순박한 농부와 어부들이 내내 후회하고 있는 일을 지금 당신들은 어마어마한 명분을 내걸고 저지려 하고 있다. 천년 세월을 팔아 한 시절을 살려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생각하라.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라. 나라를 사막으로 만들고 무엇을 지키려는가(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중 황금과 돌)

2. 누가복음 1213-21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재산 분배에 대해 판단해달라는 사람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있지 아니하니라“(12:15)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후의 삶을 위한 충분한 재산을 모았지만 영혼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재물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십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돈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투기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100을 가지면 1000을 가지고 싶은 마음을 생기게 합니다. 돈의 굴레와 탐심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재물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진리의 말씀에 생명이 있음을 알고 살 때에 탐심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이유입니다. 재물을 얻고 부자가 되기 위해 예수를 믿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을 따르며 생명을 풍요로움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3. 신명기 261절에서 11절 말씀은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을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은 그 해 추수한 농작물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이 신앙고백의 자리로 돌아가고 그 고백을 하고 살아갈 때 돈의 굴레와 탐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드릴 신앙고백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3, 9)

보잘 것 없는 떠돌이였던 사람들을 크고 강하며 번성한 민족이 되게 하셨다는 고백입니다.(4-5)

또한 애굽의 압제하에서 고통당했던 과거의 비참한 생활을 회상하며 크신 능력으로 자신들을 구원하고 인도하여 내신 구원에 대한 고백입니다(6-8)

토지와 그 소산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10-11)

 

이 고백은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지 만물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이나 재물에 대한 생각을 이 신앙고백에 둔다면 적어도 우리는 지금 같은 돈의 굴레와 탐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4. 고린도후서 96-15절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재물(헌금)이 어떻게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지를 일깨워 줍니다. 그러나 재물과 탐심에 눈이 먼 우리들은 사도 바울의 헌금에 대한 말씀조차 축복의 도구로 설교하고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최형묵목사님의 다음 지적은 그 오용의 정곡을 찌르는 말입니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라는 첫머리 말씀,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말씀으로 넉넉하게 될 것이다.” 하는 말씀 때문일까요? 헌금을 일종의 투자행위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있습니다. 당연히 많이 투자하면 많은 배당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이 헌금하면 역시 많은 보상, 그것도 물질적인 보상을 충분히 받는 것으로 여기는 풍토가 한국교회 안에는 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들려지는 배경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열성을 다하였지만, 각각의 지체가 어울려 하나의 몸을 이루는 교회의 정신에 철저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유대 지역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알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적극적으로 관여한 교회들에 헌금을 독려했습니다. 이미 빌립보교회는 그 모범을 보여줬습니다. 이제 고린도교회가 그 선한 일에 동참하기를 사도 바울은 바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함에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하기를 원했습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강압적으로 하지 말고 형편과 처지에 맞게 하되 기쁜 마음으로 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기쁜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어려운 교회를 돕고자 헌금하고 그 일이 힘든 교회에 전달되면 거기에 기쁨이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 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 봉사의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또 그들과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보고, 여러분을 그리워하면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9:11~15)

 

누군가가 기쁨으로 베푼다면 수혜를 누리는 사람은 베푼 사람에게 감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하며 감사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베푸는 일, 헌금을 하는 일은 누군가의 물질적 궁핍을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기쁨과 정성으로 드린 물질이 물질적 차원의 어떤 효과를 넘어 인간들 사이의 상호신뢰와 연대를 이루어내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전망입니다. 이것은 값없이 받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누린다는 인의론의 정신과 그대로 통합니다. 물질적 삶의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온전한 인간관계의 실상입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교회간의 연대 차원을 넘어 인간과 사회의 변화에 대한 전망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6-15절의 말씀은 최형묵목사님의 나눔 가운데 있는 삶의 신비를 참조했음을 밝혀둡니다.)

 

우리는 오늘 세 분문을 통해서

돈의 노예된 삶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삶의 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재물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임을 알 때 우리는 탐심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지만 심고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만물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믿을 때 우리는 돈의 노예로 끌려 다니는 삶의 사슬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금과 올바른 나눔의 삶을 실천할 때 돈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신뢰가 넘치는 공동체를 세워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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