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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1-1) - " '하나님과 같이' vs '어린아이들과 같이' "/ 재일동포선교주일 / 개척선교주일 / 한가위감사주일 / 오정석 목사

관리자 2022-08-31 (수) 17:39 2년전 1029  

본문) 창 3:1~13, 22~24, 마 18:1~14, 롬 5:12~21


9월의 아침입니다. 여름에서 결실을 맺는 가을로 들어가는 문턱을 이제 막 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부터 창조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은 재일동포선교주일과 개척선교주일로 지킵니다. 여전히 일본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을 위한 기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다시는 침략 전쟁으로 인한 절규가 없어야 함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인 평화가 하늘에서 이뤄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가는 교회들이 개척되어,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 개척 뿐만 아니라, 이미 세워진 우리 교회들의 정체성을 더불어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오늘 창조절 첫째주일에 주시는 말씀은, 교회가 더욱더 교회다워야 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먼저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게 만드신 피조 세계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변질된 피조 세계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울을 통해서 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이 땅에서 이룰 하나님 나라로써의 교회 공동체가 어때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세 본문 말씀을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새겨듣고, 교회다운 교회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의 말씀은,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이 등장해서 여자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했고, 이로 말미암아 사람이 타락하고 죄가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5절 말씀을 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세상에는 온갖 죄의 형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죄의 근저에 깔린 죄의 속성은 뱀이 여자를 유혹하는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뱀은 여자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말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시는 마음, 모든 죄인을 조건없이 용서하시며, 이해하시며, 받아주시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그런 마음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죠. 그러면 죄의 화신으로서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마귀의 속성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는 속임수입니다.

마귀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으뜸은 거짓과 속임수입니다. 본문에서도 마귀는 그럴듯한 거짓과 속임수로 여자를 속입니다. 이 속임수는 대단히 위험한데, 항상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교만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자기를 높여서 지배하고 다스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는 마귀의 속성을 말하는데, 이는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교만은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공통된 속성입니다.

셋째는 위법입니다.

하나님은 법입니다. 하나님이 법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만든 모든 피조물에는 법이 주어져 있고, 그 법대로 살아갑니다. 따라서 동식물은 물론 우주의 천체들, 계절 등 어느 하나도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법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마귀가 여자에게 선악과를 먹으라는 것도 결국 법을 지키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법은 준법이요, 마귀의 법은 위법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법에 순응하여 심은대로 거두려 합니다. 하지만 악령이 임하면 심고 가꿔서 거두려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기적의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합니다.

마귀의 이런 속성은 곧 죄의 속성인데, 오늘 창세기 본문에서는 이를 ‘하나님과 같이 되어’, 즉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마음이 인간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죄를 지은 후 죄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숨어서 두려워 떨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법을 어긴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각자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합니다. 이런 모습은 죄를 범한 자의 마음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이들에게 돌아온 결과는 무엇입니까?

선악과를 인간이 지켜야 할 법으로 보고, 선악과를 먹은 것을 법을 어긴 것으로 본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어야 하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법을 어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법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쫒겨 났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즉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대로 되고 말았죠. 

그런데,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를 먹은 이야기는 과거 에덴동산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지금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더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선악과가 단순한 과일 이야기가 아닌 법이라고 해석을 하면 그 법은 지금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도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법을 다 지켜 행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악과 이야기는 모든 인간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담’은 ‘사람’을 뜻하는데, 아담이 죄를 지었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다는 뜻입니다. 즉 아담의 타락은 곧 ‘인간성의 타락’이 되는 셈입니다. 나의 인간성이 타락했는지 아닌지 의문이 들면, 자기 자신의 본심을 성찰해보면 답이 쉽게 나옵니다. 속임수와 교만과 위법이라는 죄의 속성이 지금 내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가요? “하나님은 왜 하필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만드셨나?” “하나님은 왜 하필 여자를 만드셨나?” “하나님은 왜 하필 뱀을 만드셨나”하면서 여자와 뱀, 그리고 하나님까지 원망했던 창세기의 이야기는, 사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스스로 교만과 속임수에 빠진 인간의 한계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시는 율법 책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도 율법서 중에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서 말씀에서 이렇게 정리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죄를 지었고, 그 결과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담만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죄를 짓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법은 엄존하기에,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죄의 속성으로 인해 인류는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바울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는 실패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아담, 그리고 여전히 죄의 속성 가운데 있는 인류에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와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되고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18절과 19절에서 확인합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로마서 8장 2절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새로운 법입니다.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은, 자력(自力)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하여 죄와 사망에 놓인 아담을 비롯한 온 인류의 한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타력(他力)으로 구원하시겠다는 법입니다.


이 법에 따라서 하나님은 본격적으로 죄와 사망에 놓인 인류를 구원하실 공동체를 만드십니다. 이 공동체가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성령님께서 임재하셔서 하나님께서 법으로 인류의 역사에 만든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법이 바로 세워지는 공동체요,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구원의 문이 열린 타력 공동체이지만,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일에는 자력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법이 바로 세워지는 교회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교회 공동체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 공동체를 향해서 천국에 대한 말씀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즉, 제자 공동체가 천국이어야 함을, 제자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이어야 함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몇 가지 짚어봅시다.

먼저,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큰 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하나님과 같이’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자기를 낮춰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천국은 스스로를 가장 작게 여기는 사람에게만 해당될까요?

천국은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가장 작음, 가장 낮음, 섬김, 비움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관문은 이런 낮춤입니다. 천국에는 오직 가장 낮은 자, 작은 자만 있을 뿐입니다. 천국에는 ‘나같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어?’하는 사람들 뿐입니다. 스스로 자격 있다는 자는 천국의 주인공이 결코 아닙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할 바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수장되는 게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족하게 한다는 말은 죄를 짓게 한다는 말인데, 지금 제자 공동체 상황에서 어떤 죄를 말할까요?

같은 상황을 기록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지금 서로 누가 큰지 세력 다툼하며 말씨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지배할 제자 공동체 안에서 이간질과 거짓 소문과 확대 과장으로 서로 갈등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서로가 자기의 공로가 더 크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손이나 발이 범죄하거든 찍어내고, 빼버리란 말씀 속에서 제자 공동체의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엄격한지, 그 무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제자 공동체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봅시다.

주님은 다시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는다고 말씀하시며,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 아버지의 뜻이 결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특별 관심의 대상이라는 뜻이요, 하나님께서는 가장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성령이 법을 지켜야 하는 제자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같은 법이 적용될 교회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자연에 대해 자기 낮춤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모든 분열과 갈등을 멈추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구원의 법에 의해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등록하는 절차만으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 법은 자기 낮춤의 법이요, 그 어떤 작은 자를 죄짓지 않게 하는 법이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어떤 작은 중의 하나라도 잃지 않는 법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 법을 지키면서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며 구원의 시작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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