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 6:5-22/ 롬 1:18-25/ 막 7:1-13
요즈음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피크 저팬”, “피크 차이나” 그랬는데 지금은 “피크 코리아”라고 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올해 일본 경제성장 예상전망치가 2.0%인데 우리나라는 1.4%입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앞으로 그 전망이 더 어두울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 출산으로 인한 노동력감소가 갈수록 우리 경제를 곤경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수출산업구조가 미국의 강력한 제제가운데 있는 대 중국 의존도가 높아서 당분간 그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수출하고 있는 주력상품이 반도체인데 지금은 반도체수출규모나 가격 면에서 불황국면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수출 1위를 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의 비중은 갈수록 줄고 시스템반도체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어 우리 경제의 시름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 전망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다 “미드나잇 선”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햇빛에 노출되면 생명을 잃게 되는 희귀병, 색소성 건피증(Xerderma Pigmentosum)을 앓고 있는 ‘케이티’ 이야기입니다. 케이티는 낮에는 햇빛 차단용 특수 유리창이 있는 방에서 지냅니다. 그러다 매일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소년 찰리를 보면서 마음으로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 날 밤, 마을 역 플랫폼에 나가 기타 치며 노래하다 그곳에 있던 찰리와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밤에만 만났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조금 멀리 여행을 나갔다 시계 고장으로 동트기 직전에서야 집으로 돌아오다 현관 문 앞에서 막 떠오르는 햇살에 노출됩니다. 의사는 “뇌 수축”이 시작되었고 신경연결통로가 손상되어 언제 죽음에 이를지 모른다고 합니다. 병은 악화되어가지만 햇빛 노출이 두려워 아무데도 못가고, 찰리에게 누가 될까봐 전화도 안 받고, 방안에서 죽음만 기다리며 삽니다.
가득한 죄악, 항상 악함(창6:5-12)
오늘은 창조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구약본문 창6:5-22은 고대의 노아시대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참혹한 멸망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성경만이 아닙니다. 세계의 많은 곳에서 거대한 홍수가 온 땅을 덮었다는 “홍수이야기들”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제 서랍에는 남아공의 해발 3,000m 높이의 산 정상에서 발견한 다양한 조개화석들이 들어있습니다. 3천 미터의 산 정상이 과거에 바다 속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일어난 전 지구적인 엄청난 지각변동으로 인해 높이 솟아올라서 이루어진 화석입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미국의 그랜드캐니언(대협곡) 정상에 가면 한순간에 흙에 매몰된 고기 화석들이 널려있습니다. 10달러만 주면 손바닥만 한 생생한 물고기화석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거대한 홍수의 잔해들이 세계의 여러 고산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왜 노아시대에 홍수심판이 있었습니까? 성경은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고, 사람의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으며 또한 온 땅이 부패하고 폭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창6:5, 11-12).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이 온통 악하게 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하나님의 아들들(에녹후손)이 타락한 사람의 딸들의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 되고 동화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십니다.(창6:1-2)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까지 타락하면 이 세상은 폭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네피림’이 일어납니다. 기도해야 할 의인이 타락하면 순식간에 폭력적인 세계가 됩니다. 빛과 소금 같아야 할 교회가 그 빛을 잃고 맛을 잃으면 온 땅이 어둠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인간이 자초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완전 때문도 아니고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치명적인 더러움(막7:1-13)
오늘 복음서 막7:1-13의 말씀은 아담이래로 타락한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지를 말씀해 줍니다. 죄가 인간을 포로로 삼고 주인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먹고 조심하고 애쓴다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매우 경건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안에 있는 죄악이 얼마나 강력한 세력인지를 몰랐고, 아무리 애써도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 내 안에 있는 죄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몰라서, 무지해서 우리는 늘 죄의 지배를 받고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입니다(막7:1-4)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바리새인들은 죄를 이기기 위해 밖에서 들어오는 죄를 조심했습니다(막7:2-4). 죄는 더럽고 속된 세상, 밖에서 들어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집에 들어오면 먼저 손을 씻어 더러운 것을 제거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더럽고 속된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한 음식도 반드시 손을 씻고 먹습니다. 여러 물건을 만지거나 접촉해서 불결한 것이 묻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식사 후에는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깨끗하게 잘 씻어 놓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입니다. 그 때는 반드시 물을 뿌리거나 손을 깨끗하게 잘 씻어야 합니다. 시장은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곳이고 인간의 속되고 타락한 욕망으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그 더러운 것들을 반드시 씻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사람들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십니다.(15-16절) “보라 우리 안에 있는 죄가 밖으로 나와서 온 세상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냐?”고 하십니다. 모든 죄는 우리 마음에 있는 욕망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막7:6)” 이 세상은 인간 안에서부터 나오는 죄악으로 인해 더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마음에 욕심과 욕망이 있으면 그 욕망이 모든 것을 더럽히게 됩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가도 그 욕망을 이루려고 가고, 예배를 드리고 그 욕심을 이루려는 마음으로 드리고, 기도를 해도, 주님께 헌신을 하고 봉사를 해도 그 욕심을 이루려고 하게 됩니다. 그 욕망이 모든 것을 속되게 하고 악하게 만들고 더럽게 합니다. 아 참으로 더러운 것은 우리 마음입니다. 죄는 우리 안에, 우리 온 내면에 마침 암세포처럼 퍼져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롬1:18-25)
서신서 말씀은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진노뿐임을 말씀해 주십니다(롬1:18-25). 타락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경건치 않음) 선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1절)”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만물에 다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더 미룰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못했으며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스리라고 주신 자연을 섬겼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 외에는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꿈, 노아와 방주공동체(창6:13-22)
그런데 이 세상의 심판 앞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꿈을 꾸셨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새 존재가 되게 하시는 ‘방주공동체’를 만들려고 하신 것입니다(창6:15-19).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라”
하나님이 만드시고자 하신 방주는 예배공동체였습니다.(창6:2-3) 정결한 짐승은 일곱씩 들임으로 1년 10일 동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위기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 급한 일을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의 원인을 알고 본질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의 불행의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이기적이며 인간중심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고 그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하나님의 창조질서 아래서 살아야 합니다. 저 드려지는 제물과 함께 우리의 이기심이 죽고 우리의 교만이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자 하신 방주는 은혜의 공동체입니다.(창6:8) 방주는 어느 누구나, 어느 동물이나 차별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자는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불행의 원인은 차별입니다. 인종과 민족과 계층, 성(性)을 차별하고 피아(彼我)를 구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공동체는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방주공동체는 믿음과 순종의 공동체입니다.(15-16절) 상, 중, 하의 구조로 된 네모난 방주 안에서 사방을 볼 수 없고 오직 위를 행해 난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며 돛대도 엔진도 키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공동체,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고 깨뜨리지 않고 그 질서와 원칙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순응하며 이웃과 함께 이 자연과 함께 사는 동체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자 하신 방주는 진리의 공동체입니다.(22절) 하나님은 120년 동안 큰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120년 동안 온갖 비난과 모욕을 참아가며 방주를 지었듯이 오직 주의 진리를 따라 당장 눈앞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의와 평화, 사랑과 섬김으로 살아야 합니다.
미국국가과학제단(NSF)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가별 “연구투자 성공률”에서 한국은 98%의 성공률을 보였고, 미국은 29%의 성공률을 보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최고지요! 그런데 사실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성공하기 쉽고, 성공률이 높은 데만, 당장 눈앞에 빨리 성공할 수 있는 곳에 연구투자를 하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데는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위험부담은 있지만 혁신적인 곳, 돈은 많이 들어도 꼭 필요한 곳, 시간은 걸려도 장기적인 희망을 가져야 할 곳에 투자를 한다는 것입니다. 핀란드의 휴대폰산업 1위 노키아가 무너지면서, 핀란드는 큰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핀란드는 임시방편이 아닌 혁신을 택했습니다. 큰 대기업이 위기에 빠졌을 때, 정부는 그동안의 대기업구도에서 오히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스타트업 산업을 일으켰습니다. 노키아는 퇴직자들에게 창업프로그램에 보조금을 주어 스타트업창업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지금 핀란드는 인구수 대비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시작한 미드나잇 선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그녀를 찾아온 찰리의 격려로 마지막 용기를 냅니다. 햇빛을 피해, 어둠 속에서 사는 삶이 아니라, 잠시라도 햇빛을 바라보고, 그 눈부신 광채 아래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적극적으로 살기 시작합니다. 먼저, 대학진학을 위한 수영경기를 부상으로 포기한 찰리를 격려하여 시합에 참가하게 합니다. 케이트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한 찰리는 트럭을 사려고 모은 돈으로 방송국 녹음실에서 케이티의 노래를 녹음합니다. 평생 기타 치며 케이티가 작곡한 곡을 녹음을 하고, 방송국의 도움으로 전파를 타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찰리와 케이티는 마지막 남은 시간을 눈부신 태양아래 드넓은 바다를 향해 보트여행을 시작합니다.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배에 오른 케이티가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햇살아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얼마나 꿈꿔왔는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