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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12-1) - " 벌레 먹은 콩이라도 " / 추수감사절 / 이혜숙 목사 > 창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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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12-1) - " 벌레 먹은 콩이라도 " / 추수감사절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3-11-18 (토) 16:13 11개월전 601  

본문 : 신 11:8~17, 고후 9:6~15, 막 4:1~9


 


추수감사주일이면 농촌과 도시의 예배당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도시의 교회에서는 보기에도 좋고 먹음직도 해 보이는 여러 농산물이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보기에는 그럴싸하지 않더라도 직접 농사를 짓고 거둔 농작물을 감사의 예물로 드립니다.


 


성도들이 농사지은 농산물을 예물로 강단에 올려놓고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린 후 정리를 하는 데 검정콩 자루가 몇 개보입니다. 어느 콩 자루에는 반짝반짝 윤이 나고 크기도 고른 콩이 있습니다. 어느 자루는 찌그러지고 벌레 먹은 콩들이 제법 섞여 있습니다. 벌레 먹은 콩이 예물로 드려진 것을 보면서 당황스러운 마음이 살짝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가 어떤 콩을 드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각자 형편과 상황에 따라 정성을 담아 드렸을 것입니다. 벌레가 먹었다거나 찌그러졌다는 핑계로 드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핑계도 없이, 추수한 곡식을 예물로 드리는 성도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수확물 중에는 흔쾌히 기쁨을 선사하는 것도 있으나 찜찜하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모두 골라내고 버릴 수는 없습니다. 농부가 벌레 먹고 찌그러진 콩이라고 모두 다 골라서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생활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농사를 지은 맏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고백해야 합니다.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신명기 26:6~9의 내용입니다.


 


삶이 언제나 순조롭고 평화롭고 정의로울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수확의 첫 것을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함께 고백합니다.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물로 드리는 맏물에는, 하나님께서 이곳까지 인도하셨다는 기쁨과 즐거움만 아니라 슬픔과 고통과 깊은 한숨까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의 추수 예물을 받으시는 주님께서는 추수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잊지 않도록 합니다.(신 26:11) 수확물을 거둬들인 것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주님의 은혜인 것을 고백하며 추수하지 못한 이들에게 수확물을 나누는 것이 추수감사의 예배의 중요한 과정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1)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후 9:13)라고 격려와 감사를 전합니다. 레위인과 객이 함께 즐거워할 때에, 나만 아니라 그들도 함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믿고 복종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똑같이 모든 사람을 섬기는 후한 연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제가 어려서 교회에 갈 때는 ‘연봇돈’을 받아 가지고 갔습니다. 요즘에는 ‘헌금’을 드립니다.


고린도후서에 쓰인 <연보>란 단어가 요즘에는 생소하게 들립니다.


본문을 보면서 ‘연보와 헌금의 차이가 뭘까?’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연보는 사람을 돕기 위해 쓰는 것이고, 헌금은 종교나 신념에 따라 쓰인다는 것이 차이점으로 보입니다.


우리들이 예배 때에 드리는 헌금에는 두 가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용어가 변화되면서 우리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돌아보고, 요즘 우리가 드리는 헌금 가운데 얼마만큼이나 연보의 성격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받은 은혜가 넉넉하니, 앞으로 더 큰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소망하니 기꺼이 예물을 드립니다. 종교적 헌금을 하는 마음입니다. 반면 주께 드린 헌금을 사람을 돕는데 쓰려면 고려되어야 할 조건들이 많아집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헌금이 연보로 쓰이기 전에 교회의 이런저런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남은 것이 있다면 연보로 쓰여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연보의 의미가 약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씨앗과 농부와 땅을 따로 떼어놓고 각각을 봅시다.


먼저, 씨앗입니다. 돌짝밭이나 가시밭이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이 싹을 냈다는 것으로 보아 씨앗은 나무랄 떼 없어 보입니다. 더구나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은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7~15배가 당시 수확량의 평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좋은 씨앗입니다.


다음은 땅입니다. 길가는 예외로 하고, 돌짝밭이나 가시밭이란 농부의 손길이 닿지 못한 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땅은 씨앗을 받아서 싹을 틔웠습니다. 물이 부족하거나 햇빛이 부족하다 해도 스스로 조건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이제 농부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농사법이 다릅니다. 농부는 바람이 부는 날을 선택해서 씨앗을 휘휘 날립니다. 그러다 보면 씨앗은 길가에도 돌짝밭에도 가시덤불에도 좋은 땅에도 흩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땅을 갈아엎고 이런저런 조건을 만들어 놓은 후에 씨앗을 뿌리는데, 고대 중동에서는 씨앗을 먼저 뿌리고 밭을 갈았다고 합니다.


농부는 농사를 짓지 않고 묵혀두는 동안 가시밭이나 돌짝밭으로 변한 땅을 햇빛이 고루 비치고 빗물을 적당히 머금고 있도록 수고를 해야 합니다.


 


좋은 밭은 농부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경작된 곳입니다. 좋은 씨앗이 좋은 땅에 뿌려지고 햇빛과 비와 바람이 30, 60,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함께 나누어 쓰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후하고 넉넉한 사랑 아니겠습니까?


 


농촌지역에서는 직접 추수한 것을 고이 간직하였다가 정성스럽게 드리지만 그 예물 안에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만 들어있지는 않습니다. 도시인이 드리는 예물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한 해 지나면서 겪었던 모든 감정과 사건과 후회와 회개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수확한 콩이 고르고 알차게 결실되어서 반들반들 윤이 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벌레가 먹고 가끔은 썩은 것이 섞여 있어도, 그것이 주님께 드려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은 우리의 모든 날들이 주님을 의지하고 살았다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고난과 슬픔에 빠져들게 하는 사건을 내게서 없앨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고통스런 과정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고통을 겪는 이웃이 보이는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 돕고 살게 되고, 그 돕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후하고 넉넉한 연보가 됩니다.


살아온 시간의 결과물을 예물로 드리는 성도들에게 여호와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히 내려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들이 드리는 추수감사의 예물이 오직 주께만 아니라 이웃과도 넉넉하고 후하게 나누는 예배를 드립시다. 너그럽게 드려진 연보는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게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의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실 것이라”(고후 9:10)는 말씀이 여러분의 삶으로 증거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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