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상 8:12~30, 고전 3:10~17, 마태 12:1~8
1) 노틀담성당 화재
지난 4월 프랑스의 파리에 있는 노틀담성당이 큰 화재로 건물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노틀담은 우리 역사이며, 문화이며, 상상력입니다. 전쟁으로부터 전염병, 해방까지 우리의 가장 위대한 순간에 우리가 사는 곳입니다. 이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그것이 타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프랑스 국민들의 슬픔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프랑스 국민들의 기부로 다시 복원할 것이라는 것도 밝혔습니다. 프랑스 국민들이 노틀담 성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보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단순한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 프랑스의 역사요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교회당도 그처럼 사랑받는 예배당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 솔로몬 성전 낙성식 연설
구약 본문 열왕기상 8장의 말씀은 솔로몬이 심혈을 기울여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 앞에 봉헌을 하며 이스라엘 회중들 앞에서 한 연설과 이에 이어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다윗이 여러차례 전쟁을 통해 피를 많이 흘린 이유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고 그 아들 솔로몬 때에 성전을 건축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은 하지 못했지만 성전을 건축할 준비를 했고 아들 솔로몬이 건축을 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성전을 갖지 못했습니다. 저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떠난 이후 가는 곳곳에서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예배했고 출애굽하고 난 뒤 광야에서 회막(The Tent of Meeting)을 만들어 그곳에서 제사함으로 예배했습니다. 그 회막에는 법궤가 있었는데 훗날 엘리 제사장 시절 이 법궤를 실로성소에 안치했었으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가 싸우다가 빼앗겨버렸습니다. 그 뒤 다윗은 법궤를 다시 모셔 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여 다윗성으로 옮겨왔고 성전을 건축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았지만 다윗은 성전을 지을 준비까지 해주면서 성전을 솔로몬이 건축하도록 했습니다. 이 솔로몬 성전은 단순한 예배처소 이전에 국가 성소로서의 기능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적 고향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성전 낙성식 연설을 통해서 성전을 지은 이유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라고 여러 번 강조합니다. 또 이어지는 기도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이전에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29절)고 하셨다는 점을 말합니다. 이름이 있는 곳이라는 말은 단순히 명찰을 붙이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가히 하나님께서 그 좁은 공간에 머물러 계실 수 는 없으나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시라고 또 하나님의 눈길을 이곳으로 향해서 저들을 보살펴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본문 28-30절에서 이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는 곳으로 솔로몬은 그렇게 의미부여를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전은 단순한 하나님께 제사하는 건물 이상의 큰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를 통합하는 구심점이요,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의 신앙의 고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명절이 돌아오면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이 예배를 통해서 사회통합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성전보다 큰 분 예수 그리스도 -마태 12장
복음서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성전보다 큰 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밀 이삭을 잘라먹은 일로 촉발된 안식일 논쟁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기본 뜻은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한 법이라는 점을 강조하시며 예수님 자신을 “성전보다 큰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건물로서의 성전의 의미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공동체라는 의미로 확대해석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구심체라는 의미였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중심적 신앙을 탈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이 46년 동안 건축한 예루살렘성전을 바라보시며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성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변화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 마태복음 12장 6절의 “성전 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는 말씀도 바로 교회의 머리시요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전보다 더 큰이라는 점을 확연하게 드러내 줍니다. 집보다 집주인이 당연히 더 크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또 이미 예수님은 성전의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본질적인 면을 중요시하셨음을 요한복음 4장에 있는 수가선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밝혀 주셨습니다. 물 길러 나온 수가성 여인이 자신들의 조상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했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디서 예배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이 산(그리심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1-24)라고 대답하시므로 공간적인 성전 개념을 뛰어넘어 참다운 예배를 드려야 하는 성전의 본래적 기능을 분명하게 제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성전은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에 묶여 있을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의미로 변화되었습니다.
4) 우리가 성전이다 - 고전 3장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성전에 대한 이해를 받아서 성전의 기본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고린도전서 3장11절에서 교회를 설명하며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구약의 성전 개념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한 교회공동체라는 점으로 의미를 발전시킵니다. 이어서 바울은 16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반문하며 바로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의 일원이 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계시면 그 사람이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또 이어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해서 성전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가르쳐줍니다.
5) 맺음
아브라함의 제단, 모세의 회막, 솔로몬의 성전에서 비롯된 공간적 의미에서의 성전은 예수님을 통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그리고 바울 사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바로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존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높이는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다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살피고 생활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성령의 전 곧 성전이 되도록 합시다. 절제된 생활과 헌신의 삶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시다. 우리가 거룩한 성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