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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2-2) - " 징조 앞에 선 우리는 " / 이훈삼 목사

관리자 2019-09-06 (금) 15:01 5년전 2746  

본문) 창세기 11:1~9/ 고린도후서 4:1~6/ 마가복음 13:14~27

 

1. 심판의 징조들

 

1) 바벨탑 사건 : 교만에 대한 심판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는 역사 이전의 역사 마지막 이야기는 바벨탑 사건이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는 인간이 온 지면으로 흩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바벨탑 이야기의 동기는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11:4) 하자는 것이다. 인간이 도시를 만들고 하늘까지 닿을 정도의 탑을 건설하는 것은 자연을 넘어서는 인간의 능력이다. 다른 피조물이 지니고 있지 않은 인간의 특별한 능력으로 하늘까지 이르고자 했던 인간의 원대한 계획은 그러나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면에 흩으시니 건축은 중단되고 인간은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인간의 능력이란 초라한 것임을 직시하고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바른 운명이어야 한다. 이 길을 벗어날 때 인간이 마주해야 할 결과는 비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기후 변화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공업화의 방향은 이전에 없었던 환경 오염문제를 촉발시켰다. 지속가능한 인류 문명을 준비하는 세계의 양심적인 사람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지구는 인간이 마구 짓밟아도 되는 무생물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임을 깨닫고 환경 파괴를 중단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교만과 그를 통해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탐욕은 환경 파괴를 가속화시켰다. 이제 그 무절제한 파괴의 현장을 인류 전체가 바라보고 있다.

지구의 냉장고 역할을 하는 북극의 거대한 얼음(빙산과 빙벽)이 녹아내리고 있다. 아이슬란드 오크 빙하는 50년 만에 1/20 이상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올라가고 바닷가 지역은 바닷물에 잠기게 된다.

지구촌 곳곳에서 가뭄과 폭우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간에는 북아메리카 카리브 해에 허리케인 도리안이 강타하여 바하마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우리도 어제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관통하였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산불로 8월에만 축구장 420만개의 숲이 사라졌다. 남미 대륙 곳곳을 태우는 산불은 숲을 목장으로 만들려는 인간의 욕심으로 방화가 주원인이다. 올해만 벌써 거의 8만 건의 화재가 발생하여 작년 대비 80%가 늘었다. 숲을 없애고 소를 키워 돈을 벌려는 욕심이 지구의 허파를 빠르게 없애고 있다.

 

3) 해와 달이 빛을 잃다

이미 우리는 잊어버렸지만 작년 한반도에 닥친 미세먼지 공포는 우리를 아찔하게 했다. 앞이 보이지 않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낮에도 해가 뿌옇게 보였다. 정말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마가 13:24)라는 마가의 묵시록을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와 달이 흐릿해지는 날들이 횟수가 늘어난다면 마가의 무서운 예언이 우리들에게서 현실화되는 것과 같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에너지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미세 먼지는 기대 수명을 단축시키는 가장 무서운 요소다.

해와 달이 빛을 잃는 현상이 안개처럼 자연 현상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다. 자연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고 있는 해와 달의 흐림 현상은 인간이 만든 공장이나 자동차 매연 등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고 이런 것들은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해와 달을 차단한다. 또 이런 현상이 앞으로 반복해서 일어날 것이며 더욱 심화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 두렵다. 해와 달이 빛을 잃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그렇게 변한다. 이것이 무섭다. 피부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변하는데 어느 정도 지나서 보면 굉장히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되고 그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2. 교회의 대응

 

1) 낙관론에 대한 경고

이제 더 이상 교회가 수수방관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성경에 기록된 지구 공멸의 위험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는데도 성경을 믿는 교회가 아무 소리 안하고 있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부 낙관론자들은 이 모든 현상이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거나 위험하다 해도 곧 과학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칠 것이다. 500년 전 갈릴레이 때와는 반대로 지금은 종교가 과학의 기세에 눌려 제 말을 못하고 지내고 있다. 잘못 말하면 무식한 광신주의자로 몰릴까봐 점잔을 빼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종말의 시계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시대의 예언자이어야 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예언자는 당장 눈앞의 것에만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 눈에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대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삶이 마땅하나 기독교는 때로 시대를 거스른다. 그래서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가혹한 핍박을 당하기도 한다. 맑고 청명한 날이 이어지는 때에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만든 노아는 얼마나 비웃음을 받았겠는가? 노아의 가족들은 얼마나 창피하고 힘들었겠는가?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는 상황이 닥쳐야 알 수 있다. 그 때는 이미 늦으니 우리는 목소리 높여 우리의 현실과 그 속에 두신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비판하며 진정 이 세상의 미래를 위해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2) 오늘만 사는 단견을 넘어서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으로

누군가 진지하게 우리의 현실과 다가올 미래의 공포를 이야기하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괜찮아, 우리 때까지는 안 망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제일 속없는 사람이다. 농담에 죽기 살기로 대드는 것이 좀 웃기지만 농담 속에 뼈가 있고, 진지함을 한 순간에 무시해버리는 나쁜 대응법이다. 사람이 당장 눈앞의 현실만 보고 산다면 그는 미래가 없다. 내일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참기도 하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기도 하고, 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준비하기도 해야 한다. 그저 당장 오늘만 보고 사는 사람은 내일에 닥칠 위기를 대비하지 않는다. 정말 안쓰럽고 어리석은 삶의 자세다. 지구가 우리 살아있는 동안에야 망하겠는가? 사실은 그럴 수도 있다. 세계 곳곳에는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고,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데 이것들이 언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도시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우리 세대에만 괜찮으면 문제가 없는 것인가? 지금 이대로의 생활 습관과 정책을 고집하면 아주 멀지 않은 세대에, 우리 자식들의 자식 세대인 50년 후 쯤에는 지구 전체가 어떤 위험에 이르게 될지 예상도 안하고 관심도 없이 산다면 그게 참 인간인가? 오늘 우리가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누리는 것은 70~80년대 목숨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 덕분이다. 또 그 이전에 우리가 이만큼의 자유와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비참함속에서도 허리띠 졸라매며 악착같이 살아냈던 우리 선대들의 헌신적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 시대마다 자신의 안녕과 이익만을 위해 살았다면 역사의 발전은 없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선대들로부터 빚진 자들이기에 우리 다음세대의 지속에 오늘 우리 삶의 초점을 맞춰야 할 책임이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낙심하기도 한다. 바울은 우리에게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 살다가 낙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서 이 직분을 맡았으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후 4:1, 표준새번역)

 

중요하고 거룩한 사명일수록 감당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낙심하기 쉬운데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의 직분과 사명에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3. 생명을 향한 우리의 실천

 

1) 세계교회(WCC)의 관심

세계교회는 오래전부터 과학기술문명 시대에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환경문제에 깊이 관심하고 기도해왔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태계를 창조하셨고 인간을 자연의 관리자로 세우셨다는 믿음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과 우주는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자연과 환경을 잘 사용할 수 있는 권한만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관리가 아니라 파괴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면 갈수록 심화되어 이제는 지구 전체의 공멸을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이미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도 여러 가지 분야가 있다. 공기 오염, 수질과 토양의 오염, 에너지 문제,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의 문제, 해양 쓰레기와 오염, 오존층 파괴, 북극 빙하의 붕괴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가 있는데 이 모든 환경 문제를 아우르는 가장 넓은 범위가 기후변화다. 크고 작은 환경 문제는 지구의 기후변화 문제에 모두 수렴된다. 그래서 세계교회는 기후변화에 관심하며 지구 생태계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UN이나 각국의 정부들을 상대로 협의하고 있다.

 

2) 실천 : 죄 짓지 말라

세계 각국의 교회를 대표하는 세계 교회는 이렇게 큰 틀에서 세계 나라들의 정책을 개선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면, 우리 각 교회와 개인은 구체적인 삶에서 생명을 지향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불과 얼마 가지 않아서 지구는 심각한 위기나 공멸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 앞에서 우리는 정말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마가 13:23)

 

결국 오늘 지구 생태계 위기의 근본 원인 인간의 욕망, 탐욕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생명 가득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 주님은 오늘 한 마디로 삼가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 지구의 위험 앞에서 무엇을 삼가야 할까?

 

1.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

웬만 모든 음식에 고기가 들어간다. 이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아마존에서는 지구의 허파인 거대한 숲을 일부러 태우고, 축산산업에서는 소, 돼지, 닭들을 마치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생산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잔인한 폭력이다. 고기를 안 먹을 수는 없지만 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이 지구를 살리는 일이다.

 

2.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 한다.

, 그릇, 수저, 물휴지 등 한번 쓰고 버리는 물건의 사용을 줄이고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3. 플라스틱과 비닐류 사용을 줄여야 한다.

플라스틱과 비닐이 자연에서 해소되려면 아주 오랜 기간이 걸린다. 싸다고 편리하다고 우리가 마구 사용하는 플라스틱과 비닐이 동식물과 인간에 축적되어 치명적인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

 

4.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

교회 식사 당번은 어렵더라도 메뉴 선정에서부터 잔반이 적게 나오는 메뉴, 설거지를 조금만 해도 되는 메뉴, 음식을 배분할 때도 이 과제를 늘 생각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5. 그 밖에도 가능하면 생수를 사먹지 말고, 고지서는 전자고지서를 신청하고,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며, 휴지는 한 번에 한 장씩 사용하는 훈련과 운동을 벌여야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생명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은 대범하지 말아야 한다. 종이 한 장 버리는 일에도 망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생명 살리기를 실천하는 사람을 쩨쩨하다거나 큰 일 하지 못할 인물이라고 폄하하지 말고 격려해야 한다. 이 일이 시급하다. 우리 앞에 멸망의 징조는 나날이 늘어나고 강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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